
40대 후반과 50대 전반 10년 동안 나를 사로잡은 텍스트는 『상한론傷寒論』이란 동아시아 의학 고전이다. 『상한론』의 독자적 해석서 한 권을 품고 탐구하면서 나는 비로소 자신을 담은 책 한 권을 지니게 되었다. 한창 이 책을 가지고 강의할 때는 반드시 수강자들에게 이 책 냄새를 맡아보게 했다. 대부분은 그 냄새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내 체취라고 말해주면 감탄하거나 의아해했다. 전자는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로 받아들인 것이고, 후자는 ‘뭐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로 받아들인 것이다. 각자의 길이 있으니 각자 선택한다. 다만, 자신의 삶이 어떠하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비추는 책 한 권에 자신을 담는 예의 정도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