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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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대를 탄생시키고 인류가 성년이 되기 위한 시련의 시기는 다소 혼란스러울 것이다. 경제적 붕괴와 파시즘, 소요사태, 전쟁까지 수반되는 혼란일지 모르지만, 그런 암흑기는 우리 예상보다 훨씬 짧고 훨씬 가볍게 지나가리라 예상한다.

  그 이유는 내가 만나는 수많은 깨어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인류는 지난 반세기 동안 많은 것을 학습하면서 의식 발전의 임계점에 이르렀다.·······가속화되고 있는 이 전환 국면은·······점점 가속화되고 있는 시대 계승의 마무리 단계인지도 모른다. 특이점이 가까워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심오한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다.(475-476쪽)


강릉 거점 을미의병(1895)의 지도부 일원이었던 강무영은 원산에서 전사했다. 그의 가문은 당연히 쑥대밭이 되었다. 세 아들은 국권상실기 내내 왜경에 쫓겨 다녔다. 해방 이후에도 제대로 사회경제적 안정을 되찾지 못했다. 전쟁과 독재를 거치며 요동치던 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그의 후손은 소외와 빈곤의 심연으로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았다. 침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의 둘째 아들이 바로 나다. 증조부가 순국한 지로부터 60여년 뒤에 태어나 60여년을 살아온 내게, 이 “암흑기”는 과연 얼마나 짧고 가벼운 것일까.


대표적인 매판지식인으로 뜨르르했던 자 가운데 홍진기가 있다. 국권상실기에 법관으로 일제에 부역했다. 해방 후 이승만의 주구로 경향신문 폐간, 조봉암 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4·19혁명 당시 내무장관으로 발포를 명령해 민주시민 200명을 살해했다. 5·16쿠데타 세력에게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이병철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그 뒤 삼성과 인연을 맺어 화려하게 사후까지 복락을 누렸다. 중앙일보가 그의 가문에게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다. 그의 둘째 아들이 바로 CU의 주인 홍석조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 살아온 홍석조의 60여년은 과연 얼마나 길고 무거운 것일까.


찰스 아이젠 스타인이 간과하는 진실을 말하려 한다. 아메리카 프리미엄으로 누리는 저 짧고 가벼운 시련과 혼란과 암흑은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얼마나 길고 무거운 것인지 그가 알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아픔을 실감하고 그보다 나중까지 아픔에 잠겨 있어야 하는 수십억 사람의 살갗에 그의 손이 가 닿을 수 있을까. 그의 통찰과 낙관이 고마우면서도 내가 끝내 아뜩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차이 때문이다.


“CU의 주인이 홍석조인 줄 몰랐을 때, 나는 거기서 막걸리를 여러 통 샀다. 안 뒤, 나는 발길을 끊었다. 이것이 내 실천이다. 그러면 나의 그 시간 동안, 홍석조는 무엇에 깨어 있었으며, 무엇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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