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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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을 포기하는 일은 어리석으며, 어떤 면에서 가식으로 느껴지는 무의미한 일이다. 그것은 참된 필요에 부응하는 방식이 아니다. 예컨대 ‘이 나무판자는 테이블 톱으로 한 시간 안에 자를 수 있지만, 두 사람이 작은 톱으로 이틀 동안 자르자. 그래야 상호의존적 관계를 만들 수 있으니까.’ 라고 말하는 것은 기만적이다. 인위적 상호의존은 지금 우리가 겪는 인위적 분리의 해결책이 아니다. 해결책은 채워진 필요를 덜 효과적으로 채우면서 억지로 서로 돕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채워지지 못하고 있는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455쪽)


인류가 망쳐놓은 자연 생태계를 복원하려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것이다. 뭔가 수단을 동원해 인위를 보태면 보탤수록 일은 어그러진다.


분리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본래의 전체성과 분리되지 않고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을 놀라운 기술적·문화적 수단을 발전시켜왔다. 이제는 그 수단을 통해 전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470쪽)


이 말은 반만 맞다. 수단이 더는 통하지 않는 지점이 있는 법이다. 지금 인류가 봉착한 위기 속에서는 한결 더 그렇다. 수단을 내려놓고 고난을 각오한 결단을 해야 할 일이 차고도 넘친다.


고난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반대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 실은 더 중요하다. (더 중요한 까닭은 많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이다.) 구원은 그 경계에서 온다. (경계는 중간이 아니다.) ‘적실히’ 아플 때 깨닫는다. 공동체적無我 순환無常(의 회복)이란 태아는 아픔痛의 산도를 통과해 탄생한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긍정과 낙관은 나이브함이라기보다 미국이라는 거대조건이 떠받쳐주는 프리미엄 아닐까 싶다. 그것은 과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느낌의 문제이기도 하다. ‘신식민지’ 대한민국에서도 변방 사람인 내게는 문제가 훨씬 더 부정과 비관의 느낌을 던져준다. 그가 향수할 수 있는 수단과 내가 향수할 수 있는 수단 중 무엇이 더 위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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