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에게는 옛것을 뿌리 뽑고 처음부터 완전히 새것을 창조하는 혁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혁명은 이미 시도해 왔지만 구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매번 같은 결과를 낳았다. 신성한 경제는 전적으로 다른 혁명이며,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변모시키는 것이다. 이런 혁명에서 패자는 자지가 패자임을 깨닫지도 못할 것이다.(106쪽)


“승리한 사상이 비판적 요소를 포기하고 수단이 되어 기존 질서에 봉사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자기의지와는 반대로 예전에 선택했던 긍정적인 것을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것으로 변질시키게 된다.”


아도르노의 이 말은 “이미 시도해 왔지만 구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매번 같은 결과를 낳았다”는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귀납 언어를 명징한 연역 언어로 바꾸어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거듭해서 일어났을까? 왜 이런 일은 거듭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을까?


상대를 부정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구축하는 사람은 반드시 상대방을 닮게 되어 있다. 얼핏 들으면 수사rhetoric 정도에 지나지 않아 보이지만 일상의 경험에서도 이 말은 타당성을 인정받는다. 마음 치유에서도 이 말은 주의 깊게 적용된다. 엄밀하게는, 닮는 것이 아니라 본디부터 자기한테도 있는 속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A와 non A로 나뉘어 전선이 형성 되지만, 전선이 붕괴되면 상대의 것으로만 분류되던 속성이 자기 것으로 표면화되기 마련이다. 정치적 혁명 국면에서는 혁명으로 일어선 자가 혁명으로 넘어진 자와 같은 짓을 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러고 보면 “옛것을 뿌리 뽑고 처음부터 완전히 새것을 창조하는 혁명” 자체가 당최 성립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짓을 인간이 되풀이해온 이치를 따져보자.


A를 뿌리 뽑고 non A를 창조하는 일은 두 가지 전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1. A와 non A는 완전히 분리된다. 2. A 없이 non A만으로도 세계가 구성된다.


형식논리에서 이 두 전제는 이의의 여지없이 성립한다. non A가 진리일 때 A는 비 진리다. 비 진리는 비존재다. 아니. 비존재로 만들어야 한다. 형식논리를 만들어 구사해온 역사는 그렇게 만들기 위해 진리를 구사해온 역사다. 진리 구사를 선교라 하든 혁명이라 하든 교육이라 하든, 비 진리를 박멸해 진리만이 충만한 세계로 만들고자 한 분투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분투 결과, 비 진리의 자리에 대신 진리가 가득 채워졌던가. 그럴 리가. S극을 제거한 N극만의 자석이 있나. 파동을 제거한 입자만의 빛이 있나. 관념이 실재를 구축驅逐한 곳에 무성히 자란 진리는 폭력일 뿐이다. 실재로서 진리는 논리 폭력 너머 비대칭의 대칭구조가 자발적으로 부서지는 운동이다. 변화를 추동하는 쪽이 상대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변모시키는 것”이다. 상대는 쫓겨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변화의 흐름에 감응하는 것이다. 감응이 감응을 낳는다. 참된 혁명은 감응이 공명해가는 과정이다.


이 정도면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의중을 깊이 들여다본 셈인데, 뭔가 개운치 않다. 왜 그럴까? 숱한 혁명 이론, 특히 마르크스 사상과 같은 고급담론에 대한 이해·태도 여하와 무관하게 우리가 현실에서 공유하고 있는 ‘혁명 감정’과 간극을 느끼기 때문이다. 당장 이런 의문부터 든다. “변화를 거부하면 제거해야 하지 않나?” 우리 눈앞에서 그런 꼴을 너무도 많이 보아온 터라 이 의문은 내려놓기 쉽지 않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말은 이를테면 범주적이다. 특정 개인·정당·언론·종교·기업·권력기관을 가리켜 하는 말이 아니다. 양승태·자유한국당·조중동·개신교·삼성·떡검 따위를 몰아내는 일은 변모의 반대말이 아니다. 이들을 몰아내는 일은 구세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들을 철저히 처절히 몰아내는 일이야말로 그들이 속한 사회분야를 변모시키는 지름길이다. 이들을 깨알같이 챙겨 몰아내야 우리사회 전체가 변모된다. 변모는 성찰하는 주체에게서만 일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