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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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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돈을 위해 일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부도덕한 것은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토지에 임대료가 붙듯이 돈에는 이자가 붙는다. 돈은 공유자원의 시체다. 한때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순수한 형태의 재산으로 변한 모든 것들의 체현이다.(91쪽)
지하철역에서 내려 한의원으로 오는 길목에 중학교가 하나 있다. 8년째 그 앞을 지나다니면서 느낀 변화 하나. 화장한 여학생들이 처음에는 눈에 띌 정도였으나 지금은 그 반대라는 점이다. 많은 풍조가 일본을 통해 들어오거니와 일본 여학생들은 지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도 화장을 한단다. 이쯤 되면 상황은 엄중하다. 시체가 밉게 보이면 안 된다는 게 이유이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이 화장하는 것 자체가 무슨 윤리적 쟁점 따위를 머금고 있을 리 없다. 문제는 여학생들이 화장으로 자신의 ‘값어치’를 매긴다는 데 있다. 이것은 화폐 포르노money porn 사회의 전형적인 풍경이다. 가능한 모든 것을 돈으로 살 수 있게 만든다. 각기 지닌 고유한 생명을 박탈해서 시체로 만들어 거래한다. 그럴 수 없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한다. 이를테면 시체조차 남기지 않는 은밀한 살해다. 화장에 내몰리는 여학생들은 예쁜 얼굴 이외에 그 어떤 가치로도 존재할 수 없도록 화폐화된 시체다. 더불어 자유롭게 누리던 영성, 미학, 그리고 사회적 네트워킹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오늘 아침, 유난히 성숙해 보이는 여학생 하나가 짙은 화장 향을 풍기며 지나간다. 마치 성인 여성이 교복을 입은 듯 그려내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에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곧 이어 슬픔 같은 무엇이 들이닥쳤다. 어른으로서 느끼는 미안함, 무력감도 질척거리며 뒤따라 왔다. 오늘 이 사회는 화장할 수밖에 없는 여학생에게 무엇일까? 저 여학생이 나 같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사회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돈의 힘은 죽음의 힘”(103쪽)이라는 진실이 자신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을 거라 믿고 우리는 빌라도의 물그릇에 손을 씻는다. 그 깨끗해진 손 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는 사람이 있다. “돈이 당신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자유로운 당신은 누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