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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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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돈은 동전들 간의 물질적 차이와 무관하게 (액면가만 같다면) 돈으로서 동일하다는 점에서 균질적이다.·······돈의 힘은 순도와 무게의 다양성을 지워버리는 표준화된 표지에서 나온다. 질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오직 양이다. 돈은 온갖 다른 것들로 전환 가능하기에, 그 온갖 것들을 상품-일정 기준에만 맞으면 똑같이 여겨지는 물건-으로 바꾸면서 균질적 성격을 전파한다.·······돈으로는 어떤 것도 살 수 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똑같다.(59쪽)
재벌집 사람들이 파렴치 범죄와 ‘갑’질을 저지를 때 보여주는 기탄없음의 근거는 물론 돈 하나다. 돈만이 저들의 ‘근본’이다. 근본 없는 ‘물건’들에게 하는 짓이라면,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든 가죽장갑 끼고 패든 물 컵을 던지든 쌍욕을 하든 아무런 죄의식도 가지지 않는다. 가진 돈에 제곱비례로 안와전두엽이 망가진 때문이다. 사유도 성찰도 사라지고 돈이 이끄는 대로 불안·우둔·탐욕을 적나라하게 과시한다.
사유도 성찰도 사라지고 돈이 이끄는 대로 불안과 우둔, 그리고 탐욕을 적나라하게 과시하는 재벌집 사람들을 욕하는 사람들은 어떤가. 지금은 당장 돈이 없어서 욕할 뿐이다. 그 정도 돈만 있으면 다를 이 누군가. 돈 앞에서는 어떤 다양성도 있을 수 없다. 닥치고 균질이다. 절/교회도 드나드는 신도 숫자와 시주/헌금 액수로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설법/설교의 질적 차이는 무의미하다. 병의원도 드나드는 환자 숫자와 매출 액수로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 진료의 질적 차이는 무의미하다. 누구든 언젠가 재벌집 사람들처럼 파렴치 범죄와 ‘갑’질을 저지를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산다.
누구든 언젠가 재벌집 사람들처럼 파렴치 범죄와 ‘갑’질을 저지를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나는 어떤가. 결 다른 의자라고 자부하다가도 빚 갚느라 허덕이는 가난 앞에서 목이 꺾인다. 똑똑한 딸아이 자랑하다가도 휴일 아침 일찍 알바 뛰러 먼 길 가는 뒷모습 볼 때 콧날이 시큰거린다. 흔들리는 결결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으로 남에게 배어들며 삶을 맡김으로써 나는 돈과 씨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