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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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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기호나 상징은 한 사회가·······해석을 공유하는 정도만큼 사회적 힘을 가진다. 고대 그리스에서 출현한 새로운 종류의 돈은 동전의 표지가 나타내는 사회적 합의에서 그 가치를 이끌어냈다. 그런 합의가 바로 돈의 본질이다.(57쪽)
마음병 숙의 치유 과정에서는 이른바 객관적 사실과 질환의 인과관계가 문제되는 일이 매우 흔하다. 이런 예가 자주 등장한다.
네 살 바기 아기가 둘 있다. 한 아기는 엄마를 생이별로 잃었다. 다른 한 아기는 엄마가 갑자기 가벼운 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치료받고 한 시간 만에 돌아왔다. 두 아기가 자라서 우울장애를 앓는다. 앞 아기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그럴만하다고 말한다. 뒤 아기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그럴 리 없다고 말한다.
마음병은 이른바 객관적 사실 그 자체에서 생기지 않는다. 해석에서 생긴다. 네 살 바기 아기에게 두 사건은 하나의 해석을 낳는다.
해석 인간이 인간이다. 그 너머, 인간은 해석이다. 해석의 공유, 곧 사회적 합의가 이데올로기요 체제요 문명이다. 사회적 합의로서 문명은 내러티브다. 그 내러티브의 고갱이가 돈이다. 돈 이야기, 이야기인 돈을 직면하고서야 인간과 인생, 그리고 공동체를 직면할 수 있다. 이 직면은 바야흐로 종말론적 문제다.
“돈과 관련된 위기 앞에서 현실의 토대가 흔들리고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또한 낙관론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돈은 우리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사회적 구조물이기 때문이다.”(55쪽)
지나간 역사가 그랬듯 다가올 미래도 결국은 어떤 사회적 합의로 돈을 구조화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새롭게 재구조화한, 그러니까 신성의 표지로 삼은 돈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낙관이 아니다. 비관의 반대말은 무관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