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한 경제학의 시대 - 한계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해법은 무엇인가?
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 / 김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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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천 년간 신성하다, 성스럽다는 말은 점점 더 자연, 세계, 육체와 분리된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 돼왔다.·······

  역설적이게도 기spirit라는, 그 추상적이고 분리된 것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신성의 개념과 가장 닮은 한 가지를 지상에서 찾으라면 바로 돈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아이러니하고 의미심장하다. 돈은 만물을 둘러싸고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불멸의 힘이요, 세상을 움직인다고 얘기되는 전지전능한 ‘보이지 않는 손’이다.(6-7쪽)


  우리가 지닌 신성의 개념이 그 개념에 꼭 들어맞는 신을 끌어들여 세상을 지배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육체에서 영혼을, 물질에서 정신을, 자연에서 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우리는 삭막하고soulless 사악하고ungodly 비정상적인unnatural 지배 권력을 키워왔다. 따라서 돈을 신성한 것으로 만들자는 말은 활기 없는 속세의 사물에 초자연적인 매개물로 신성을 불어넣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옛날, 물질과 정신이 분리되기 전, 만물에 신성이 깃들었던 시절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이다.(9쪽)


여기 등장하는 “분리”란 말은 인류 문명사를 관류하는 핵심 인벤토리다. 신학적 관점인 타락, 심리학적 관점인 자아폭발로 표현한 스티브 테일러에 비하여 철학적 본질에 육박하기에 더 적합하다. 사건의 부정적 측면을 즉각 알아차리게 하는 스티브 테일러에 비하여 사건의 비대칭적 대칭성을 함축하기에 더 적합하다. 약점이 없지 않다. 이 말은 매우 낯익어서 평범하게 다가온다. 돋을새김으로 읽지 않으면 문제의식이 밋밋해진다. 분리사건을 생살처럼 감지할 수 있도록 주의를 바짝 기울이며 500쪽을 읽어내야 한다.


분리란 무엇인가? “육체에서 영혼을, 물질에서 정신을, 자연에서 신을” 떼어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열거가 아니고 예시다. 너에게서 나를, 빈자에게서 부자를, 여성에서 남성을, 아이에서 어른을, 흑인에서 백인을, 동성애에서 이성애를, 약소국에서 강대국을, 자연에서 인간을, 시간에서 영원을·······떼어내는 모든 것이다. 다만 떼어내지 않는다. 위로 올라가 지배자가 되게 한다. 지배자가 “추상적”인 그러니까 보편적인 “기spirit”로서 “세상을 움직인다고 여”긴다. 그것을 “불멸의 힘”이며 “전지전능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숭배한다.


분리는 얼마나 교묘한가. “삭막하고soulless 사악하고ungodly 비정상적인unnatural 지배”를 “깨닫지 못”하게 한다. 피지배자는 자발적으로 지배당한다. 지배자를 내면화하여 기꺼이 삭막해지고 사악해지고 비정상적이 된다. 분리는 얼마나 절묘한가. 거대유일신의 허구성을 꿰뚫어본 눈으로 돈의 허구성은 보지 못하게 한다. 피지배자는 헌신적으로 지배당한다. 지배자를 내면화하여 기꺼이 불멸을 꿈꾸며 전지전능을 열망한다. 이 교묘하고 절묘한 분리마법의 성문을 과연 어떻게 해야 열 수 있을까?


활기 없는 속세의 사물에 초자연적인 매개물로 신성을 불어”넣는 것으로는 문을 열 수 없다. “그 옛날, 물질과 정신이 분리되기 전, 만물에 신성이 깃들었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로 돌아간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인가? 무엇보다 과연 그리로 돌아갈 수 있는가? 그리로 돌아가면 분리가 낳은 모든 것의 운명은 어찌 되는가?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한 논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그의 맥락에서 탁월함을 발휘한다. 문제는 우리다.




p.s. 번역 문제를 조금 말하겠다.


spirit을 기[氣]라고 번역한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동아시아에서 기는 추상적이지도 않고 분리된 것도 아니다. 영어 감각으로 보면 영靈이라는 표현이 맞다. 예컨대 the Holy Spirit은 성령이라 번역한다.


soulless를 ‘삭막한’으로, ungodly를 ‘사악한’으로, unnatural을 ‘비정상적인’으로 번역한 것도 의미 맥락을 좇아가지 못한 사전적 번역이다. soulless는 말 그대로 혼, 정신성이 탈각된 상태다. ungodly도 신성, 영성이 결락된 상태다. unnatural 또한 자연이 배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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