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부모는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신의진 지음 / 걷는나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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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루미나리에 공원을 갔다가 아장아장 걷는 아기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강아지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키가 커보이긴 했지만, 아기 얼굴이 앳되어 개월 수를 물어보니 28개월이란다. 우리 아기와 불과 6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걷긴 걸어도 주로 안겨있으려고 하는 울 아기가 여전히 할아버지에게 안긴채로 있자, 그 아이는 아기 사진 찍어준다며 (아마 우리 아기를 한참 어린 아기로 봤나보다.) 디카를 들이밀었고, 낯가림이 심한 우리 아이는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였다.

 

그 일 이후로 외할머니는 또 걱정을 하신다. 초등학교에 같이 들어갈 또래의 아이는 저렇게 키도 크고, 직접 카메라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한데 우리 아들은 너무 어린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사실 엄마 생각에 똑똑하게 느껴진다고 해도 유난히 다른 아이들보다 늦게 기었고, 걷기는 훨씬 늦게 걸었다. 말이나 다른 무엇보다도 걷기 발달이 느려서 유유자적하던 나도 나중에는 좀 걱정을 할 정도였다. 내가 늦게 걷지는 않았지만, 나나 신랑이나 워낙에 운동신경이 둔한 편이어서 아기가 늦게 걷는 것쯤 큰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 생각했는데, 주위에서들 걱정하시니 인터넷으로검색을 해봤다. 그랬더니 같은 걱정을 하는 다른 엄마에게 병원에 가봐라 어찌해라 하는 답변들이 많았다. 이렇게 어린 아기를 데려간다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어 아이의 뜻에 맡겨두고 지켜봤는데 다행히 지금은 걷자마자 뛸 정도로 아주 잘 걷는다.

 

단지, 아이마다 발달의 차이가 있다는 것에는 나도 크게 공감한다. 우리 아이가 뭐든 빨리 하면 좋겠지만 다소 느릴 수도 있다. 그것을 엄마들이 큰 병이나 되는 양 지레 겁을 먹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우리 아이도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지는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몇 단어만 말을 하곤 하지만. 적어도 말귀는 다 알아듣고, 말을 하지 않아도 그게 무엇인지는 다 짚어내고 표현한다. 이 책의 작가 신의진님 말씀대로 아이의 발달이라는게 지속적인 발달인 사선 형태가 아니라 계속된 기다림과 자극 속에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변하는 계단 형태의 발전을 보이기 때문에 일정 기간 동안 똑같이 보이다가 어느 순간에 '탁' 하고 발전하는 것이다.

 

다른 아이보다 조금 늦다고 걱정하지 말고,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면 될 것 같다. 아직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어리지 않은가? 게다가 저자 말대로 행복한 표정, 웃는 얼굴을 전반적으로 많이 유지하고 있으면 그 아이는 문제가 없는 뜻이라 한다. 가족을 향해 정말 살인미소라고 할 정도로 너무너무 예쁘게 웃어주는 아기, 그리고 자신도 그 웃음을 즐기는 아이. 우리는 아기를 보며 행복함에 빠져들 정도이니 아들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사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엄마들의 열성이 말로 듣고, 머리로 생각했던 그 이상으로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엄마가 그러지 않을 수도 있지만, 블로그, 카페 등에서 보이는 열성엄마들의 노력은 정말 무서울 정도로 대단하였다. 아이들에게 단계별 전집, 학습지를 들여주고 비싼 육아서적 교사가 집에 와서 아이들 수업을 한다. 아기때부터 그 수업이 이어지고, 그리고 문화센터는 몇군데씩 다니는게 기본이고 어려서부터 엄마가 따라다니며 이런 저런 교육을 시킨다. 아이는 재미있게 즐길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옆에서 보는 나 조차도 힘에 겨울 정도다.

 

아직 우리 아기에게는 그 정도의 열성을 들이지를 못했다. 그저 책이 좋다고 하면 읽어주고, 나가 놀고 싶다고 하면 걸려주고 한게 전부였다. 사실 어쩌면 저자가 말하는대로 현명한 엄마가 아니라 게으른 엄마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첫 아이라 열성은 있어도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고, 그렇다고 돈이 많아서 다 돈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그럴 자신도 없었다. 아이에게 지나친 조기 교육은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문턱까지는 엄마가 질질 끌어서 합격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이후의 인생이 화려하게 꽃피지 않은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에 너무 앞서 나가는데 겁이 나기도 하였다.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느리게 키운다라는 의미를 잘못 해석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조기교육이 무조건 잘못되었다는게 아니라 너무 앞서서 나가려고 하면 아이가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그렇다고 시기를 지나치게 놓쳐 되돌리기 힘들게 하는 것도 게으른 부모의 무지한 소치라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

시행착오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아이의 입장에 서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실천 가능한 일이라 한다.

돌, 두돌 밖에 안된 아이들에게 앵무새처럼 한글을 억지로 가르치지 말고, 아이의 사고 수준이 발달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사고력을 요하는 학습은 4~5세가 되어야 제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강요된 조기교육은 학습효과만 떨어뜨리는게 아니라 암기 습관만 길들이는 것이라한다.

 

자신의 두 아들, 경모, 정모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또 많은 아이를 상담한 결과를 바탕으로 내놓은 책, 이 책은 사실 10년전의 동 제목의 책을 다시 개정 증보하여 내놓은 책이다. 이번에는 느림보 학습법이라는 방법까지 덧붙여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천재 둘째 아이와 남들보다 다소 느린 첫째 아이를 키워야했던 엄마로써의 신의진 박사님을 새로이 만날 수 있었고, 그 전 책 신의진의 아이심리백과에서 만났던 그 세심함을 다시 한번 새길 수 있었다.

 

느리게 키운다는 것에 대해 아이를 방임하고 마음대로 키운다는 게으른 부모의 소치로 왜곡 해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정말 제대로 때를 알아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반 발자국 앞서 나가거나 반 발자국 뒤서 따라와주는 그 두가지 방법을 적절히 조율할 수 있는 너무나 어려운 방법이라 한다. 느리게 키우기. 우리 아이를 위해 엄마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육아법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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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기출문제집 2 - 대한민국 이십대는 답하라 인생기출문제집 2
박웅현 외 15인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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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생각했던 20대는 가장 젊음이 아름다운 때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30대가 되어 되돌아보는 20대는 정말 바쁘고도 치열하게 살아온 때였던 것 같다. 대학, 그리고 직장 생활.. 어쩌다보니 대학을 졸업하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30까지 내달린 직장생활의 나의 20대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장을 옮기지 않은 건 아니었는데..그만 두고 다음날 다른 직장에 바로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쉼다운 휴식의 시간을 가져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서른.
서른이 되면 마치 인생이 끝날것처럼 두려웠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였을까? 남자친구가 없던 29살이라 불안해서였을까? 서른이 되자 놀랍게도 불안했던 마음은 싹 가라앉았고, 그리고 내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사실 20과 30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저 주위 사람들의 나를 보는 시선만 달라질 뿐.정작 나는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래, 마치 우리가 지겹게 봤던 문제집을 떠올리게 하는 인생 기출 문제집. 그 1권을 나는 아직 못 읽었지만, 2권부터 읽어도 무리가 없다. 인생 기출 문제집. 20대의 젊음들에게 던지는 선배들의 이야기가 어떠한지 궁금하였다. 그리고 아직 20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생각하는 나도 되돌아보게 하는 그때의 이야기, 그리고 인생에 대한 그 질문이 궁금하였다.
 
그리고 머리말에 나온 대로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여는 순간 책은 놀라운 속도로 내 가슴속으로 파고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티브이를 보면 항상 중복되듯이 나오는 몇몇 인기인들이 있다. 무한도전의 인기멤버이자, 유난히 시끄러운 말발의 소유자 마치 따발총처럼 다다다다 내뱉는 그의 속사포 같은 말투는 정장 슈트가 근사하게 어울리는 그의 멋진 외모를 한창 다운 그레이드 시키는 듯한 저렴한 남자로 그를 만들어 내놓는다. 그는 바로 노홍철이다.
그저 튀는 행동과 돌아이라고 스스로 포장하는 그런 무지함의 소유자라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는 놀라운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플레이 매니저이자 (그 스스로 이 직함을 만들었다. ) 스스로 재미있게 선택한 일의 ceo가 되어 젊어서부터 사업으로도 성공하고 끊임없는 아이템 개발로 뛰어난 그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명함을 만든다면 직함을 뭐라고 쓰고 싶어?
대부분은 ceo나 뭐 전문직의 이름을 쓰고 싶지 않을까 생각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구상하면서 명함 직함을 고민하던 노홍철은 플레이 매니저 노홍철이라는 이름을 적어넣었고, 그에 부합하는 뛰어난 기지를 발휘하였다. 카이스트에 다니던 형 주위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여 엠티 프로그램을 멋지게 짜넣었던 것이다. 재미난 장난감들과 함께 그 만의 재치있는 설명서를 곁들여 말이다. 읽으면서 참 똑똑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자신의 재미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업으로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창의적인 사람, 그가 바로 노홍철이었다.
 
누구나 재미난 삶을 꿈꾼다. 그리고 지루하게 일하지 않고, 재미난 일을 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한다. 취미도 일이 되면 재미가 없다는데, 노홍철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 인생 자체가 버라이어티 쇼같이 느껴져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20대들 뿐 아니라 30대인 나까지 흥분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재미나게 살면서 인생의 꿈을 실천하기. 용기를 내어 찾아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줄 그 무엇인가를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던 곽세라. 그 분의 이야기가 또한 인상적이었다.
잘나가는 광고 카피라이터였던 그녀는 어느 날 집시로 되돌아온다. 비주얼 아티스트이자 여행가로 살아가고 있는 곽세라의 이야기.

 
아픔을 참고 투쟁해서 얻는 것만이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내길이 아닌것같고 쉽지 않은데 참고 견디면 감각만 무뎌질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작전과 맞지 않으면 꿈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나의 삶이 우주의 작전과 맞는지 아닌지 알아보는 진단법이 있다. 그것을 하면서 사는게 쉬운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다. 쉽다면 옳은길이고 힘들고 고달프다면 잘못 가고 있는 길이다. 168p
 
우주의 작전에 부합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열세번째 도넛 (열두개의 도넛을 사면 덤으로 주는 공짜도넛)이 기다리고 있다. 167p

 
사실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이 마냥 부러웠다. 나도 정말 이렇게 마음껏 여행하고, 내 꿈을 펼치고 싶지만, 정작 나는 그럴 용기가 없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내 직장, 내 직업.. 충분히 안정적이지만, 매력은 크게 없는 그런 직장이었다. 남들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재미로 하는 일은 아니었다. 다칠만큼 크게 상처가 되는 일은 아니었어도 그렇다고 이 안에서 최고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도 들지않았다.
 
그저 나를 안정적으로 이끌어 줄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는 직업이라 생각했다. 실제로 내 주위에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고, 일을 하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여행 등은 취미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언제고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 그 일.
다른 일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그 일이 안정적이라는 이유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신랑이 하는 일을 도울 수 있는 보완적인 일이기도 하니 윈윈이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조금더 바꾸어 생각해보면 얼마든지 창조적인 일로 바꿀 수 있는게아닐까 싶다.
 
그것은 나에게 달려있겠다. 노홍철과 곽세라의 일들을 생각해보며, 내 직업의 틀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면.. 그 안에 나만의 색채를 입히는 것이다. 아주 작은 변화일지언정 그것은 분명 내게 큰 기쁨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며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 나만의 특색으로 밋밋한 나의 직업을 기쁨으로 바꿔줄 구상을 하니 갑자기 삶이 즐거워진다.
 
고마워, 인생기출 문제집.
 
그리고 다음에 또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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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김정현 지음 / 역사와사람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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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현님의 아버지라는 소설을 읽고 한참을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년후 나왔던 아버지의 눈물을 읽을때도 그런 눈물을 기대했으나 이상하게도 눈물이 더이상 흐르지 않았다. 다만, 그 책을 같이 읽으신 아버지만 눈물을 한참 흘리셨을뿐..

그리고, 다시 36.5도를 만났다.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고, 역시나 김정현이라는 작가에 푹 빠지신 아버지께서 먼저 읽어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시골 작은 마을 y의 세 남자가 서울에 상경하고서도 그 우정을 이어나간다.

부잣집 아들이었던 인하, 인하네 연탄공장에서 화물차 운전수를 하는 아버지를 둔 수혁, 중국집 아들이었던 대식. 인하와 수혁은 공부를 잘했고, 대식은 둘만큼 공부를 잘하진 못했지만, 체격도 좋고 힘도 세고, 무엇보다도 두 친구에 대해서라면 최고의 의리를 지키는 친구였다.

 

영국에서 연구소 박사로 지내다 갑자기 귀국한 인하의 이야기부터 시작이 된다. 수혁은 세계적인 회사인 한국정보의 부회장까지 올라 있었고, 대식은 삼청동의 맛있는 중국집 황궁의 사장님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연락하면 반가운 이들이었지만, 유난히 수혁은 무뚝뚝하고 까칠하였다. 부잣집 도련님답게 아니 사실은 그 어머니의 인자한 영향인지 권력이나 부를 쫓지 않고, 그저 학업에만 전념해온 인하. 그리고 속까지 시원시원한 대식.

 

내뱉는 말은 거칠고 투박했지만 눈자위까지 벌게진 모습을 보니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으로 태어나 살을 섞은 부부도 아니면서 이보다 더 살가울 수 있나 싶었다. 꼭 죽음 앞에서 목숨을 버려가며 지키는 우정만이 우정은 아닐 것이다. 함께하는 동안, 또는 불현듯 생각나는 그 순간 이해타산이나 선입견 없이 기쁘고 그리워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우정 아닐텐가. 144p

 

남자들의 우정이 여자들의 것보다 진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이 책 속의 우정같은 우정이 있을까 싶었다. 특히나 다른 친구들보다도 대식의 마음 씀씀이는 너무나 따뜻하고 세심하였다. 정말 부러울 정도로..

건너건너 아는 어른 중에 친구라는 이름으로 믿고 맡겼다가 전재산을 날린 경우도 보았다. 남자들의 우정이라는게 어느 정도의 깊이일까? 모든걸 믿고 맡기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사리사욕에 눈이 뒤집혀 모든걸 엎어버리는 사람도 있고..

 

강남 재개발 이후 부에 눈이 멀어 이혼까지 하게 된 탐욕스러운 부모님을 보고 결국은 불문에 귀의한 세 친구의 또다른 친구 효명. 그래, 사실 효명까지 하면 네 친구의 우정이야기가 되겠다.

 

36.5도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다면 우린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을 거야. 36.5도에서 조금만 체온이 올라가도 아픔이 찾아들고 의식을 놓치기도 하고, 기어이 목숨까지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그래도 우리는 날마다 서로 36.5도를 더해서 포근한 꿈을 꾸고 싱그러운 아침을 맞았잖아. 175p

 

선비같기만 한 인하의 아름다운 사랑 가경, 갑자기 몇달 여행을 떠난 그녀에게서 영문도 모를 이혼 통보 소식을 듣고 인하는 망연자실하게 되지만, 그녀를 잃고 죽음까지 기다릴 자신이 없다. 죽음이 무섭지 않고, 죽을때까지 힘들어할 시간이 무서울 뿐.. 사실 여자인 나도 가경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이란 그렇게 과묵한 말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정말 사랑한 사람들이었고 부부였다면 제대로 설명을 해야하는게 아닌가.

 

마음으로부터 오는 병으로 심하게 앓고 몹시 힘들어하는 인하와 가경. 그리고 어려서부터의 콤플렉스로 결국은 설자리가 없었던 겉모습만 강했던 수혁, 소탈하게 살았지만 친구들을 위한 버팀목으로 지탱해온 듯한 대식.

그 셋의 이야기는 끝까지 아름답기만 하다.

 

친구들을 있게 하는 건 이런 우정이 아닌가 싶다.

정말 목숨을 버려서만 위대한 우정은 아닐 것이다. 주는것에 행복한 마음, 그리고 친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을 그 마음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들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젊은 이들의 사랑이야기에 치중하는 요즘의 책들과 달리 중년 남자들의 정말 진하고 소중한 우정에 초점을 맞춘 책이었지만, 여자인 내가 읽어도 참 재미난 소설이기도 하였다. 나 또한 소중한 내 친구가 생각나기도 했고..

나도 뭐든 챙겨주고 싶은 친구가 있다. 우리 아들을 보면 친구네 아이가 생각나고. 맛있는 집에 가면 친구에게 소개하고픈 생각이 들곤 한다. 어쩌면 귀찮을 정도로 챙겨주고 싶은 그런 우정..

책속의 우정만큼은 못하겠지만.. 평생을 같이하고픈 친구이다.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책.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을 아프지 않게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주는 책 36.5도와의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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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유, 필립 모리스 - 천재사기꾼, 사랑을 위해 탈옥하다
스티브 맥비커 지음, 조동섭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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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에는 유명한 두 배우인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인 영화 필립 모리스의 원작이라는데 관심이 갔다. 그리고, 이 배우들이 동성애자로 나왔다는데 사실 놀라기도 하였다. 사랑의 여러가지 표현 중 한가지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낯설게 느껴져서였다.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짐 캐리가 분한 스티븐 러셀이라는 인물에 대해 자꾸만 동정심이 일었다.
 
천재 사기꾼 스티븐, 지방 판사로 사칭하여 구치소에서 풀려났었고, 의사로 가장해 다시 탈옥을 하고, 이후에는 죽음으로 가장해 탈옥에 성공한다. 수시로 감옥을 드나들고 있는 그와 면회로 인터뷰를 하고,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저자 스티브 맥비커는 이 책을 완성하였다. 즉, 이 놀라운 이야기는 모두 실화이다.
 
스티븐의 말에 따르면, 데이비드와 조지아 부부는 거의 모든 면에서 더할 수 없이 좋은 부모였다. 부부는 두 아들을 끔찍이 위했고, 서로에게도 헌신했다.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고, 엄마도 아빠를 사랑했죠. 이성애자 커플이 그렇게 서로 아끼는 모습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50p
 
스티븐은 자신을 위해주는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랐으나 아홉살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접하고 삐뚫어지기 시작한다. 바로 자기가 형과 달리 입양된 아이라는 사실, 부모들은 스티브를 사랑해서, 다른 이에게 듣느니 부모에게 듣는게 낫겠다 생각하여 말을 했지만, 이 날 이후로 아이는 크게 상심하고 불안해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괴롭히거나 으스대는 아이들에게 방화를 하여 문제를 일으키고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그 곳에서 12살의 스티븐은 끔찍한 일들을 겪는다. 변태들의 집합소라 그가 일컫고 무서워했던 그 곳. 샤워실이 바로 나약한 아이들을 타깃으로 나쁜짓이 일어나는 그런 곳이었다. 결국 그는 이 곳에서 죄라고 반성하면서도 자신의 사랑이 동성애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 일들이 아니더라도 그가 나중에라도 알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양성애자였고, 동성애를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의 인생의 발목을 잡고, 바르게 살고자 하는 삶을 삐뚫어지게 만드는 것들이 바로 그 초기의 어긋남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시렸다.
 
입양아라는 사실을 늦게 알았거나, 혹은 그가 입양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이큐 163의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이였고, 정말 머리가 비상하였다. 그의 친동생이 방사선과 의사가 되었듯이 부모들이 이혼했을 당시에 태어나 하필 그때 입양되지만 않았더라면 그는 평범한.. 아니 남들보다 유능하게 사는 삶을 살았을런지도 모른다.
 
아니면 입양되었더라도 그가 겪는 고충을 다르게 해결할 수 있었더라면.. 그를 사랑했던 양부모가 더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친자식처럼 끝까지 보살피려 했다면.. 그가 소년원에 가서 하지 않아도 될 경험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말이다.
결국 동성애라는 것은 평범하게 살려 한 그에게도 결국 평생 따라다니는 족쇄처럼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족쇄라 여기지 않고 진정한 사랑으로 느꼈던 것 같다.
가벼운 일들에서 시작되어 동성애에 대한 집착으로 풍기문란죄로 입건되기 시작하면서 그는 평범한 가장에서 타락한 전과자로 몰리기 시작하였다. 경관까지 했던 사람이 이제는 스스로 법을 뚫고 살기로 한 것이다.
 
전과기록이 전혀 없는 농산물 바이어이자 전직 경관이며 자상한 남편이자 다정한 아버지였던 스티븐은 2년만에 버지니아에서 절도로, 텍사스에서 보험 사기로, 연방 정부에서 여권 위조로 수배된 수배자이자 도망자로 추락했다. 더구나 일주일에 평균 한 번 자살을 시도한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126p
 
결혼도 하고, 딸까지 낳아 행복했던 그. 
아주 많은 인터뷰 요청 끝에 데비(스티븐의 전처)가 따지듯 입을 연다.
"사람들이 그이를 공정하게 대한 적이 없어요. 그이는 저한테 잘못한 적이 없어요. 저를 함부로 다룬 적도 없구요. 이제 누가 그이 옆에 남아 있나요? 저까지 그이를 모른체 할 수 없어요. 그뿐이에요. " 186p
 
스티븐은 사소한 죄로 짧게 끝날 수 있는 복역 기간 중에 탈옥을 시도하면서 자꾸만 형량이 늘어갔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의 사기도 점점 대담해져갔다. 작가가 인터뷰한 스티븐 주위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착하고 뛰어난 사람으로 평했다 한다.
이 책은 스티븐의 인생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은..
실은 이성, 동성 그런 사랑을 모두 뛰어넘는 진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다만 범죄자로 살아가지 않았어도 될 천재가 인생 자체가 힘든 굴곡을 그리게 된 것이 안타까워 가슴 저렸을뿐..
그는 어쩌면 행복할런지 모른다.
 
스티븐 러셀은 죽은 사람이 된 채로 살아갈 이유를 찾아서 내달렸다. 그 이유는 필립 모리스였다. 235p
 
스티븐은 계속 필립을 생각하고 필립에게 집착한다. 내가 이 책을 쓰는 동안 스티븐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와 나에게 쓴 편지의 중심에는 정말이지 필립이 자리하고 있다. 스티븐은 필립에 대한 감정 때문에 때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기도 한다고 인정한다. 261p
 
그에게는 진정한 소울 메이트 필립 모리스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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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쟁이 아기 괴물
완다 가그 글.그림, 정성진 옮김 / 지양어린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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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한 재미난 동화책을 선택할때, 먼저 읽어보게 되면서 이제는 동화책을 같이 즐기는 수준이 되었어요. 글밥이 많건 적건 그림과 함께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화책들이 어렸을 적에 제가 못 읽어본 책들도 많아 재미나게 읽히더라구요. 이 책 심술쟁이 아기 괴물 역시 처음 만나는 이야기랍니다.


어느 화창한 날, 착한 난장이 할아버지 보보가 맛있는 먹이를 차려놓고 동물들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보보 할아버지는 동물들 각자에게 맞는 요리를 엄선해서 맛있게 대접했지요. 다람쥐들에게는 도넛을 새들에게는 씨앗 푸딩을, 토끼들에게는 양배추를..그리고 작은 생쥐들을 위해서는 체리처럼 작게 치즈를 잘라 준비했어요.



어, 그런데 그날은 강아지처럼 생겼지만 기린처럼 기다란 목을 갖고, 머리에서 꼬리까지 파란 볏들이 돋아난 동물이 찾아온 거예요. 자기는 동물이 아니라 괴물이라고 하면서 사나운 목소리로 먹을 거리를 찾네요.

할아버지가 맛있는 음식들을 권유하자, 고개를 돌리고, 흥이라고 외면해요. 괴물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이 맛있다면서 즐거워하네요.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 인형을 잡아먹으면 아이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을텐데? 하고 말을 해도 심술쟁이 아기괴물은 상관없다고 말해요. 착한 보보 할아버지는 심술쟁이 아기괴물이 아이들을 울릴까봐 마음이 아파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흔히 잘 잃어버리곤 해요. 우리 아기 같은 경우에는 인형이 아니라 자동차를 더 좋아하지요. 자동차가 없어지면, 침대밑이나 쇼파 밑을 뒤질 정도로 열심히 찾아다닙니다. 그러고도 못 찾으면 아기가 낙담하는 모습이 안타깝기까지 해요. 혹시, 요 심술쟁이 아기 괴물이 우리 아기 자동차도 먹었던건아닐까요? 아이들이 이 동화책을 읽으면, 아하. 무서운 아기괴물이 내 인형을 먹었던 거야? 아니, 앞으로 먹으러 오면 어떡하지? 하고 두려움을 갖기 시작하겠네요. 그래서 보보 할아버지가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을 울리지 않기 위해 걱정합니다.





궁리하던 할아버지는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네 꼬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무엇보다도 너의 등뒤에 돋아난 멋진 파란 볏들은 매우 놀라워."

"점.질을 많이 먹어서 네가 그렇게 멋진게 아닐까?"



할아버지의 칭찬에 너무 기뻐 데굴데굴 구르던 아기괴물은 다급히 물어요.

"점질은 어떤 인형이야?"



"아, 아니야, 점.질은 맛있는 작은 과자야. 점질은 꼬리에 돋은 푸른 볏들을 더욱 멋지게 해주고 꼬리를 커다랗게 자라게 하지." 아기 괴물은 꼬리와 푸른 볏들이 무척 자랑스러워서 꼬리를 자라게 하고 볏을 멋지게 하고 싶었어요.

"보보 할아버지, 제게 점질을 많이 주세요.제발."


할아버지에게 시큰둥 반말로 대답하던 아기괴물이 다급해졌는지 공손하게 존댓말까지 하네요.

이 책에는 영문판이 같이 들어 있어요. 그래서, 간단한 그림 동화를 영어로도 읽을 수 있기에 아이들에게 더욱 유익할 것 같아요. 번역의 어려움으로 일부러 영문판을 같이 넣었다고 하니 같이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해서 더욱 좋은 것 같아요. 영문판에서는 아마도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이기에 반말, 존댓말등의 차이는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다급해진 심술쟁이 아기괴물이라면 갑자기 공손해지지 않았을까요?



대체 점, 질이란 무엇일까요? 심술쟁이 아기괴물만큼이나 읽는 우리들도 궁금해집니다.

과연 앞으로 아기괴물이 인형을 먹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인형을 잘 잃어버리는 아기들의 심리를 이용해 심술궂은 아기 괴물이 등장했어요. 공룡 같아 보이는 아기 괴물, 외관은 그렇게 무서워보이지는 않은데, 왜 이리 못된짓을 하고 다니는 걸까요? 하지만, 보보 할아버지는 꾸짖거나 나무라지 않고, 머리를 써서 괴물을 설득합니다.



바로 칭찬이라는 최대의 무기였지요.

그래서 아이들의 인형을 지켜주고, 괴물의 마음까지 헤아려주게 되었어요.



우리 아기도 밥 먹을때 혹은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을때 자기 고집대로만 하려고 할때가 있네요. 자기 주장이 형성될때라 그런가 봅니다. 그럴때 무조건 안돼. 하지마, 하면서 나무라면 아이가 더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더라구요. 조금은 들어주면서, 관심을 슬쩍 다른 쪽으로 유도하면 심술도 부리지 않고, 마음이 금방 풀리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 한다고 칭찬을 해주면 열심히 힘을 내어 밥도 잘 먹고, 책도 잘 보고 착하고 귀여운 아가로 다시 돌아오는 걸요?



이 책은 아이뿐 아니라 엄마에게도 유익한 교훈을 주는 그림책 같아요. 새로운 내용이라 참신하기도 하였는데, 책을 쓴 저자가 1893년생이라 해서 깜짝 놀랐답니다. 완다 가그는 미국 그림책의 황금기를 연 작가분이라네요. 난쟁이 할아버지, 아기 괴물 등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이 책 심술쟁이 아기 괴물, 원본의 제목은 The Funny Thing 이랍니다. 원본과 함께 즐기는 재미난 그림책의 세계, 아이들과 함께 같이 즐겁게 읽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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