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가을 헤세 4계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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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내 따뜻한 대기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의 감촉과 하루하루 그 색을 달리하고 있는 나무들의 변화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있어서 그런지 더욱 떨어지는 나뭇잎의 수가 이른듯하지만 다채로운 빛깔을 드러내며 사라지고 있는 모습에 감성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듯 감성이 되살아나는 계절, 가을! 그 어떤 시집보다 가을의 모습과 냄새를 가득 담고 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헤르만 헤세의 계절 시리즈 중 가을 편이다. 헤세의 봄을 읽으면서 자연을 더 가까이하게 되었고 아쉽게 건너뛴 여름의 열정까지 더해 가을 편을 읽게 되니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자연을 향한 감수성이 열리게 된다면 강추할만한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워낙 유명한데 반해 그가 시인이자 화가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은 헤세가 남긴 무수한 작품들 중 계절 시리즈에 맞게 묶어서 편찬한 것으로 헤세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자연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그리고 우리네 삶의 철학이 가득 담겨있다. 가을이 들어서는 초입에서 느낀 감정과 절정을 지나 가을이 사라져가는 아쉬움까지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의 표현력에 감탄과 질투도 생겨난다. 어쩌면 자연에 대한 느낌을 잘 그려낼 수 있는지 연이어 시선을 잡아끄는 문장들에 연애편지라도 한통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유년시절에는 다들 그렇듯 자연은 시선을 잡아끌지 못한다. 우리에게 자연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어느덧 늙음과 함께 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내가 자주 지나는 길목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들은 이제는 아무 나가 아니다.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곳은 그 시선과 함께 무언가가 가슴속으로 전해진다. 그것들로 인해 인생의 의미과 쓸데없는 욕심이 헛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여름과 가을 사이의 날들]편에서는 헤세가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음이 보인다. 온갖 색채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호기심이 일고 저물어가는 꽃잎 하나에도 시선을 놓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인 그가 엄격한 교육제도에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지금 가을은 너무나 아름답다. 줄지어선 가로수 어느 하나 같은 모습과 색깔이 아니다. 어쩜 그렇게도 조화로운지 온통 풍경화이다. 자연스러운 붉은 계열 그러데이션은 떨어지는 잎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떨어진채 옹기종기 제 아무렇게 놓여있는 모습도 마치 그림같다.

"지상의 아름다움은 누가 듣든 상관없이, 그 만의 나직하고 그리운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p.111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현상의 수수께끼를 생각하면 그 외 다른 고민에 대한 오만함도 내려놓게 된다는 말로 인간은 자연에 비할 바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 의미를 되짚어보니 지치고 고통받던 인간들이 결국 찾고 위로받는 곳이 자연뿐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짧게 지나가버리는 가을이어서 그 아쉬움은 늘 더해가지만 지금은 따뜻한 가을 냄새에 흠뻑 마음을 뺏겨 볼 때다. 나뭇잎을 좀 비워낸 나뭇가지들 사이로 비치는 파란빛이 그 모습을 더 드러나서일까 더 아름답고 조화롭다.
[나무들]편에서는 특히 나무를 향한 헤세의 사랑이 느껴진다. 첫 구절에서부터 나무를 설교자라고 칭하며 나무를 통해 헤세가 얻은 깨달음이 쉼 없이 쏟아진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지금 처한 대로 있지 다른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 p.120 『방랑』 중에서 1918

 

 

가을이, 온화한 가을이 그를 새로운 화려함으로 장식한다. p.122

 

 

헤세의 계절 시리즈를 읽다 보니 헤세의 감성을 닮아가고 있는듯하다. 그는 표현의 욕구가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여름에 태어난 헤세는 그 어떤 계절보다 여름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반에는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곳곳에 보인다. 놓쳐버린 여름 시리즈가 더욱 소장 욕구를 부추기는구나. 게다가 늦가을 추워지는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이제는 바깥보다 방과 친해져야 함을 이야기하면서 잊고 지냈던 방안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도 있다.

도시 생활을 접고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요즘은 심심찮게 꽃들을 향해 폰을 들이밀고 있는 중년 남성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예쁜 각도를 찾아 이리저리 폰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한 감성에 계절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헤세의 글과 그림을 보며 추억과 인생에 대한 시간을 가지다 보면 어느새 속도를 늦춰가고 있는 진정한 내 모습이 보일 것이다. 헤세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에 인생의 깊이를 더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나이 든 것을 아쉬워하면서, 우리의 젊은 시절에 대한 온갖 향수를 우리의 그리운 추억과 섞어 가질 것이다."
- p.46 『비행사』 중에서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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