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헤르만 헤세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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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사랑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랑에 대한 다양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대한 다채로운 기억을 끄집어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 이 한 권의 책에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묘사가 가득하다.
읽는 내내 집중의 집중을 거듭할수록 탁월한 묘사와 비유에 서서히 매료되어 가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내가 모르는 과거의 시간들
그리고
헤세가 지나온 시간들 속 그 시절의 사랑들..
지금과는 다른 세계에 놓인 사랑에 대한 어쩌면 막연한 동경이 작용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랑의 설렘보다는 절제된 순수함을 느꼈다.

풋내음 나던 사랑의 시절을 너무 지나온 걸까.
사랑 노래에 흠뻑 취해 있었던 시절을 뒤로하고 사랑이 밥 먹여주냐는 무심함으로 지내서일까.ㅎ
처음부터 글들이 내 마음속으로 녹아들진 않았다.
하지만 헤세의 문학이 나에게도 조금씩 통했던 것일까.
그가 이야기하는 사랑에 대한 견해에 삶과 사랑에 대해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젊은 시절 헤세의 단편들을 묶어놓은 책이다.
자신의 생각들로만 쓰인 글도 있고 짧은 소설 같은 글도 있다.
또한 그의 그림에 잠시 머물러 보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은 헤세가 그림에도 소질이 있다는 점이었다.
찾아보니 정신 치료를 받으면서 마흔이란 나이에 그림을 시작했다고 하며 그림으로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단편 하나하나에  깃든 그의 깊은 사고의 열정들과 관조적인 그의 시선의 다채로움에 놀라움을 느끼게 되었다.
젊은 시절 그의 내면세계는 이미 조숙해져 있었고
그런 모든 고뇌의 감각들이 글 속에 모두 녹아내려 있다.
 헤세의 사랑에 대한 그의 모든 생각들이 이 단편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듯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어설프고 때로는 소심하기도 한 겸손하고 절제된 그의 사랑은
가끔 펼쳐든 여러 고전문학에서의 사랑과도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안나 카레니나 속 레닌의 키티를 향한 사랑의 감정들이나
오만과 편견에서의 엘리자베스의 흔들리는 감정의 흐름들이 스쳐 지나갔으니 말이다.

[빙판위에서]에서는 사춘기 소년의 짝사랑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 그리고 그 긴장감에
그때의 나의 모습을 대비시켜보기도 하였다.

"이상야릇한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행복, 부끄러움, 따스함, 쾌감, 당혹스러움 때문에
나는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p.13 (빙판 위에서)

[붓꽃 사랑]에서의 붓꽃의 묘사는 과히 탁월하다. 붓꽃 이미지를 대비시켜 여러 번 읊조려 보았다.
이토록 사물에 대해 아름답고 낭만스러운 생각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연한 노란빛의 마디들은 마치 궁궐 정원의 황금빛 울타리처럼 서 있고, 또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아름다운 환상의 나무들 사이로 겹쳐진 길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사이에는 맑은 유리처럼 연하고 생기 있는 그물맥을 통과하는 은밀한 길이 내면으로 통하고 있다. 웅장한 아치형으로 끝없이 둥글게 펼쳐진 황금빛 나무 사이의 오솔길 뒤쪽으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심연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길 위에 보라색의 아치가 당당하게 휘어져 놓여 있고, 신비롭게 조용히 기다리는 듯한 놀라움 위로 얇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p.29 (붓꽃 사랑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에서는 사랑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거의 절정에 가깝다.
사랑에 대한 정의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결국 불완전한 삶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일이 사랑이라고 결론지으며
더 많이 사랑하고 우리 자신을 희생시킬 능력이야말로 삶을 더욱 충만하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들어서 알고 있는 이러한 진리에 대해 자꾸 언급하는 이유도 인간들이 항상 놓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여러 단편을 읽다 보면 그의 글들에 담긴 진실성으로 인해 그의 작품에 한 발짝씩 다가서게 된다.
또한 괴테나 셰익스피어 같은 인물들이 그에게 안겨주었던 모든 인식의 본질들까지도 조금씩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더 조금 더 성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깊이 있는 사고와 더불어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그림의 세계까지.. 나에겐 다채로운 경험이었다.
또한 나도 얼마 전 시작한 그림에 대한 갈망이 더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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