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8
제임스 웰든 존슨 지음, 천승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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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흑인이었던 남자의 자서전이라는 독특한 제목이 시선을 잡았다. 분명 인종차별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펼쳤는데 여태 읽어왔던 책들과는 결이 달라 좋았다.

막 찢어지게 아프고 열받고 그런 건 없다. 흑인을 산 채로 태워 죽이는 장면에서 충격을 먹긴 했지만 이 남자가 지속적으로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는 장면은 없다. 유색인종이라고 굳이 흘리지 않으면 백인처럼 묻혀 지낼 수도 있고 그의 타고난 능력으로 인해 선택의 폭 또한 자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가 유색인이었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내적 갈등을 들여다보면서 답답하고 씁쓸한 마음은 털어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아무리 부유해도,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있더라도 아프리카 피가 섞였다는 사실에 움츠러들고 주눅들 수밖에 없던 시절이 있었다. 사실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 문제로 시끄럽다. 왜냐하면 책에 등장하는 텍사스 인과 같은 사고를 가진 이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실들과 사실 그대로 부닥치고 있는 거예요 우리 깜둥이가 백인과 동등하다거나 동등하게 될 거라고 믿지 않아요. 우리는 그들을 동등하게 대우하지 않을 겁니다.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p.157

 

자신이 백인인 줄로만 알고 있었던 한 소년은 학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충격에 휩싸인다. 그는 사실 백인 귀족과 흑인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를 따뜻하게 대하는 어머니와 이웃들,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이 있었고 두어 번 만난 아버지도 파렴치한은 아니다. 게다가 그의 남다른 재능은 그에게 차별과 편견의 그림자를 쉽게 덮어 씌우진 못한다.

그러나 그의 삶은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엇나가기 시작한다. 그가 하버드를 선택했다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표지 때문에 음악가로서의 삶과 고뇌가 있을 줄 알았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가 래그타임을 멋들어지게 연주하고 인생을 겉돌다 다시 흑인 음악에 전념하겠다며 남부로 돌아올 때만 해도 그가 음악가로 성공하나 보다 했다. 영화 <그린북>이 살짝 오버랩되다 말았다. 그의 부푼 희망이 세상의 속임수에 차츰차츰 무너져 갈 때마다 음악은 번번이 그를 도박과 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유색인이라서 겪은 차별의 정도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은 그에게 흑인의 삶을 벗어던지게 한다. 그는 두려움보다 모멸감과 수치심으로 견딜 수 없었다. 그들과 같은 인종이라는 사실, 그런 그들을 함부로 대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민주국가라는 사실은 그를 음악가가 아닌 한 그릇의 죽을 택하게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두 인종 사이의 상대적인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고.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책 속 노군인의 말처럼 백인의 오만함은 인종차별만큼이나 사라져야 할 태도이다.

인간의 오만함으로 우리 스스로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인종들이 희생을 당했는지를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위대한 인종이죠. 오늘날 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종임에 틀림없소.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과거 인종들의 더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오늘날의 이 지위를 덜 오만하게 즐길 줄 알아야 할 거요. 우리는 그저 게임에서 승자의 순서를 누리고 있을 따름이요. 그리고 그 상태에서 오랫동안 익숙해진 게 사실이지요. 하지만 인종적 우월성이란 역사의 시기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p.155

 

한때 흑인이었던 한 남자. 그가 겪었을 정체성의 혼란보다 산 채로 불태워진 남자가 자꾸만 떠올라 괴롭다. 인간은 언제까지 오만방자할 것인가. 인간은 언제까지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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