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 사랑의 여러 빛깔, 개정판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1
바실리 악쇼노프 외 지음, 이문열 엮음, 장경렬 외 옮김 / 무블출판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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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우리네 삶을 가장 잘 이해하는 매개체이다. 간접적 경험들을 통해 타인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개개인의 다름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을 놓을 수가 없다.

 

오래전 출간된 책임에도 이 책에 사로잡힌 이유는 내가 표지의 유혹에 약한 데다가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 작품들을 선호해서다. 게다가 이 작가의 글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윌리엄 포크너, <소리와 분노>라는 작품을 읽고 받았던 그 충격이란! <곰>이란 작품으로 그를 알게 되었었고 바로 <소리와 분노>를 읽었는데 상당히 독특하고 난해한 방식에 묘한 매력을 받았었다. 기대만큼 여기에 실린 단편 <에밀리를 위한 장미>도 역시나 강렬하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떠오른 단어가 소름이었다. 그리고 지독하다. 사랑이라기보다는 광기 어린 복수극이다. 이 사랑의 빛깔은 짙은 고동빛 같다. 저자도 이 작가에게 시간을 내주길 권하며 작가에 대한 호감도를 드러내었다.

 

이처럼 책에 실린 11편의 단편에서는 각각의 색채를 느낄 수 있다. 절반 정도는 처음 접하는 작가이고 또 낯익은 작가라도 작품은 낯설어 호기심이 발동한다. 고전 속에서 만나는 사랑은 시대가 변하면서 그 색채가 많이 달라졌다. 우선은 여성의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고 사랑의 체감온도도 제법 변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닌 속성은 비슷하게 흐르는듯하다. 그랬기에 이 결이 다른 이야기들을 읽으며 여러 생각에 빠질 수 있었다. 특히 <슌킨 이야기>는 다소 설정 자체가 충격이었으나 두 남녀 주인공의 애달픈 사랑의 여운은 가장 오래 남는다. 사스케는 눈먼 여인 슌킨을 위해 손과 발이 되어 준 것도 모자라 그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끝까지 자신을 낮춘다. 몸종으로써 충성을 다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의 그림자로 지낸 듯 보였지만 실상 둘은 바늘과 실 같은 사이였다. 확실히 저자처럼 이 기이한 끌림이 싫지만은 않다.

 

최근 감성과 가장 가깝게 느껴진 작품이라면 토머스 하디의 <환상을 좇는 여인>이겠다. 남편과 정신적 교감이 어려웠던 아내가 좋아하는 시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에 격하게 공감했는데 마지막 남편이 부인의 외도를 의심하다 못해 인정하는 모습에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시인과의 만남을 앞두고 남편이 약속을 잡자 안절부절못하는 아내의 모습에 나의 경험담이 오버랩되어 웃음이 났다. 방방콘 있는 시간대에 영화 보자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줬으면.ㅋㅋ

한 여인의 과한 욕망이 부른 비극이라고만 하기엔 남편의 무관심을 탓하고 싶어진다.

 

 

 

 

이곳에 핑크빛 색채는 없다. 알퐁스 도테의 <별>과 같은 두근거림은 잠시 스칠 뿐이다. 사랑은 저마다의 빛으로 열정을 뿜는다.

강렬한 이끌림, 배신, 헌신, 집착, 순수.

 

일생을 사랑 없이 살 수 없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이었다. 안톤 체호프는 이 여인을 <사랑스러운 여인>이라 칭한다. 그녀는 사랑을 통해 세상과 호흡한다. 희생보다는 기생에 가까운. 그녀는 사랑의 대상이 사라지는 순간 자신의 주체를 잃어버린다.

 

반면 한 사람만 바라보며 애정을 쏟은 여인도 있다. 어쩌면 위험에 처한 사람에게로 향한 동정심과 연민이 먼저였을 테지만 그녀는 그를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 스탕달은 시대적 상황에서 충돌하는 사랑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로 조금은 씁쓸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한 남자를 소유하기 위한 그녀의 노력은 조국을 더 사랑한 남자로 인해 허망하게 막을 내린다. 글을 쓰다 보니 이 남자에게 화가 난다.ㅎㅎ

 

앙드레 지드의 <좁은문>이 떠올랐던 프랑수아 샤토브리앙의 <르네>라는 작품도 인상적이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감정 앞에 나설 수 없는 운명. 한 남자의 지독한 고독감에 사랑이야말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떤 이야기는 허무하고 어떤 이야기는 공허하다. 단 한 문장에 마음이 아려오기도 하고 저 푸른 산 뒤에는 우리의 어린 시절이 있어. 그 시절이 어디로 사라진 걸까? -p.286 단 한 문장에 오싹함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청회색을 띤 기다란 머리카락이었다. -p.348 라이젠 보그 남작의 슬픈 운명을 보며 사랑의 환상이 자칫 허황된 믿음 따위에 농락당할 수도 있음을 보게 된다. 라이젠보그는 그가 클래레를 소유함으로써 그녀를 영원히 잃게 되었다고 느꼈다. -p.438

 

읽고 싶은 책이 또 늘었다. 장바구니에 서너 권을 담아놓고는 아직 내 것이 아님에도 내 것인 것 마냥 좋아하고 있다. 문학이 뭔가 잃어가는 감성을 다시 채워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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