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씨 허니컷 구하기
베스 호프먼 지음, 윤미나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12살 소녀 씨씨는 어느 날 엄마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마주한다. 가족에게 무관심했던 아빠와 과거의 환영에 사로잡혀 미쳐버린 엄마 사이에서 홀로 쓸쓸히 견뎌내고 있었던 소녀. 이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싶던 마음은 이모할머니의 등장으로 완전히 분위기가 전환된다.

마치 신데렐라가 나머지 유리구두의 한 짝을 찾은 것처럼, 소공녀 세라가 부자 이웃을 만난 것처럼. 씨씨의 환경은 동전의 앞뒤면이 뒤집히듯 바뀐다. 그리고 그녀에게로 쏟아진 사랑들에 내가 다 취한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ㅎㅎ

지나치게 동화 같은 설정에 아니 과하게 인간애 넘치는 설정에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내 인생이 여기 있어. 이게 내 진짜 인생이야." - p.34 라며 과거 속에 갇힌 씨씨의 엄마는 정신을 놓아버리고 스스로를 방치한다. 씨씨마저 그런 엄마를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녀는 사랑의 균형이 무너져 버렸다. 주는 것보다 받는 사랑에 더 집착하는 것일까. 그녀는 미인대회라는 지점에서 인생이 멈추어 버렸다. 모두 자신만을 바라봐 주던 무대 위의 황홀감에 빠져 왕관을 쓰고 드레스에 집착한다. 그렇다면 그녀를 망친 건 미인대회였을까. 무관심한 남편이었을까. 아니면 북부라는 환경이었을까. 그토록 딸을 사랑했음에도 스스로의 삶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녀가 뛰어들기 직전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있었던 일은 정말 유감이다. 하지만 전부 다 내 잘못이 아니란 걸 너도 알아줬으면 해. - p.219 이 책에는 거의 여자만 등장한다. 그나마 등장하는 남자들의 이미지는 꽤 좋지 못하다. 씨씨의 아빠도, 경찰도, 강도도.ㅋㅋ

아빠는 정말 무책임한 가장으로 등장한다. 미쳐가는 아내와 딸을 방치하는 것도 모자라 바람까지 피운다. 하지만 이야기 초반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집을 며칠씩 비워야 했고 아내의 카드빚을 갚느라 힘이 들어 보이는 모습엔 측은함이 일기도 했다.

솔직히 남녀 문제는 자식이라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법. 다만 아빠가 딸에게까지 무관심한 건 아주 지탄받아 마땅하다. 딸에게 자꾸만 이해해달라고 변명한다고 한들 고작 십이 년밖에 살지 않은 어린아이가 우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여자도 모르고 아이도 모르는 늙은 남자도 참 철없어 보이긴 매한가지다.

엄마의 죽음 뒤 아빠는 딸의 양육권을 이모할머니에게 넘긴다. 처음 본 이모의 차에 그냥 실려갈 수밖에 없다. 어린 소녀가 더 이상 버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모할머니 댁에 도착하자마자 이곳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시나몬 롤과 복숭아 맛에 아픔을 해독하고 당당하고 자유로운 남부의 공기에 씨씨의 몸 세포가 하나씩 되살아난다.

투티, 올레타, 굿페퍼 그녀의 책에 새로 등장한 딕시까지. 그녀 주위를 둘러싼 사랑과 관심의 공기가 진한 복숭아 향기처럼 달콤하기 그지없다. 각자의 캐릭터는 저마다의 색채로 씨씨를 돌본다. 누구는 조심스럽게, 누구는 다정하게, 누구는 강하고 진취적으로 씨씨에게 삶의 철학을 가르친다. 나 또한 솔직함과 당당한 굿페퍼가, 요리만큼은 자신감을 보이던 올레타가, 옛 건물 보존에 진취적인 투티를 보며 삶의 에너지를 느꼈다.

매번 무례한 홉스 부인 같은 여자를 어쩌다 보니 혼내주게도 되고, 또 어쩌다 보니 티격태격하면서 갈등의 고조를 높여보지만 작가는 최대한 친절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자칫 범죄소설론까지는 닿지 않았다는 얘기. 게다 씨씨의 일탈 또한 가볍게 끝이 나고 인종차별 문제도 무겁게 끌고 나가지 않는다. 단지 씨씨를 이해시키기 위한 정도랄까. 세상엔 네가 당한 차별보다 변화시킬 수 없는 억울한 차별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과거와 화해시키고자 한다. 수많은 인생 경험으로 단단해진 올레타가 곁에 있어 다행이다.

씨씨는 엄마의 죽음에도 충분히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그랬던 소녀가 뒤늦게 엄마를 위한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씨씨의 주변 인물들은 한 소녀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보낸다. 달라진 환경뿐 아니라 주변 모든 이들이 작정하고 보살피는듯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씨씨 허니컷 구하기인가 보다.

벌새를 구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허니컷이란 이름과 자연스럽게 연결 짓게 된다. 인간 세상만큼은 약육강식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우주의 힘이 필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인간은 서로를 돌보며 살아야 하는 생명체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그나저나 즐겁께 늙어갈 베프를 잘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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