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 이야기 1
김은성 지음 / 애니북스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해 초 이 책은!

처음 샘플북을 접했을 때도, 달의 제단 시간 여행 때도(이때 첫 장면에 대한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ㅎㅎ), 문학동네 북클럽 생일선물 도서로 도착했을 때도(솔직히 에잉? 했다.ㅡ.ㅡ)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만화책을 잘 안 보는 이유도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어머니 하면 신파가 먼저 떠오르고 신파는 내가 그다지 선호하지 않아서이다. 예전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도 울컥하고 뭉클하긴 했으나 내겐 그냥 그런 느낌의 소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엄마 사이엔 그런 애틋함이 없었다. 그런 마음이 생길 틈도 없이 나는 지나치게 독립적으로 자랐다. 지나서 느낀 거지만 엄마도 그렇게 모성애가 철철 넘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엄마도 늙어서인지 자꾸만 내게 기대려고 해서 삐거덕거리는 중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애초에 이색리뷰는 밀어 놓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냥이님의 전문가 냄새 풀풀 나는 리뷰를 본 것이다. 만화에 대한 선입견도 깨주시고 이 책을 제대로 어필하고 계셨기에 그래? 한번 읽어나 볼까! 했다. 부랴부랴 읽던 책 엎어놓고 1부를 읽기 시작했다.

 

일단 그림이 심하게 심플 간결하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떠오르는 아이들 동화책도 연상되고 신문 어디 귀퉁이에 있는 일일 연재만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두 번째로 함경도 사투리가 너무 구수하다. 경상도 사투린 착착 감으며 읽을 수 있는데 우째 위쪽은 선뜻 들어오지가 않는다. 하지만 북한 억양을 상상하며 읽으니 재미나기도 하다.

 

이야기는 작가의 엄니의 엄니 세대까지 올라가서 시작된다. 엄니의 엄니는 아들 하나에 딸 넷, 시아부지, 시누 둘, 남편, 죽은 조상들까지 챙겨야 되는 고된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 시아부지 변덕에 며느리 두 손 두 발 바쁜 모습에 욕지기가 절로 나온다. 그 노인네 진짜 성질머리 한번 고약하다. 기껏 야밤에 떡을 해다 바쳤더니 일찍도 해온다며 소쿠리를 뒤집어엎는 본새가 영락없는 팥쥐 엄니다. 내가 아는 지인의 일화 중에 콩소쿠리를 엎은 시아부지도 있긴 했다.

그러다 분명 시간 여행 때 언급했던 그 장면에서 멈춘 순간. 뜨아~~하면서 머릿속에 연상되는 서양 작품이 있었으니.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두고도 아직까지 시끄러운 그 작품. 시몬과 페로. 뭐 사연이야 달라도 며느리나 딸의 애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암튼 살짝 충격적인 장면은 후딱 넘기고 나니 그다음부턴 귤 까먹으면서 읽기니 참말로 재밌었다.

 

 

 

 

 

 

 

 

고작 1부만 읽었는데 워낙에 버라이어티 한 인생을 사셔서인지 이야기가 한 보따리다. 정말 작가의 말대로 고향을 풍성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그러니 딸이 엄마의 이야기를 쓰고자 한 것이겠지만.

전기도 없던 초가집 시절부터 일제시대를 거쳐 지금의 빌라까지 이르렀으니 별별 사연이 다 있겠다. 그 덕에 이야기 듣는 재미도 있지만 딸과 엄마의 케미도 참 부럽게 느껴졌다. 결혼 안 한 딸에게 결혼해서 부부생활이랑 해야 몸에 좋고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통에 빵 터졌다. 게다가 음식을 조물조물 함께 만드는 장면도 어쩜 그리 다정해 보이는지.

 

네 집 일이 내 집 일이던 시절. 죽을 고생을 해서 자식들을 가르치고, 일제의 손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억척같이 선산을 지키며 가족을 위해 살았던 정신들을 고스란히 다음 세대가 이어받고 있는듯했다. 그렇듯 여러 일화를 들으며 세대공감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요즘 아이들은 당최 이해불가라고 한다. 왜 말도 못 하고 저러고 사냐고. 그런데 그런 말을 나도 울 시엄니에게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난 체 한 것밖에 안되니 부끄러울 뿐이지만.

 

울 시엄니는 플로베르의 [세 가지 이야기] 중 하나인 [순박한 마음]에 나온 그 여인과 어딘가 닮았다. 얼굴 한번 보지 않고 시집와서 시엄니 구박뿐 아니라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 못 듣고 농사일이며 집안일에 자식 셋 키우느라 한 평생 보낸 분이다. 그랬던 시엄니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예수님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수록 교회에 더 집착하셨다. 책에 보면 엄니의 엄니가 글도 모르는 분이 찬송가를 금시 외워 불렀다는 장면을 보면서 노래하면 찬송가뿐 그 어떤 노래도 모르는 울 시엄니가 떠올라 웃음이 났다. 덕분에 결혼 초 예수 믿으라고 닦달하시는 통에 시엄니와 싸우기도 참 많이 싸웠다. 다른 분 같았으면 섭섭해서 쌓아두거나 싫은 티 팍팍 내실텐데 그래도 우리 며느리가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작은 것에도 엄청 고마워하신다. 게다 자신은 배운 거 없이 이리 살았지만 너는 하고픈 거 다하고 살라며 응원도 해 주신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시엄니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해 잔소리를 늘어놓았던 건 순전히 그들의 역사를 보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그들의 산 역사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또 옛날 얘기 꺼낸다고 한 귀로 흘려듣고 했었기에 그들의 뼛속 깊이 들러붙은 습관을 무시하고 비난만 한 건 아니었을까 반성하게 되었다. 이젠 정말 잘 들어 드려야겠다.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더라도 말이다.

 

엄마의 엄마. 그리고 지금의 엄마.

그 시대의 무게를 감당하고 견딘 이들이 있기에 마냥 고맙고 또 고맙다. 그네들의 삶이 곧 살아있는 역사란 걸 알게 되었기에 결코 잊혀서도 안되고 사라져서도 안됨을 이 만화책 한 권으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 출처. 네이버 -

 

 

 

 

초가의 소박한 선들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여인네들의 뒷모습과 움직임 하나에도 삶이 보여서 인지 책을 덮고 나서는 박수근의 그림이 떠올랐다. 박수근은 밀레 같은 작가가 되고자 했다. 당연히 밀레 하면 만종이 떠오른다. 만종을 보며 대한민국 모든 어머니들의 삶뿐 아니라 우리네 삶도 무탈하길 기도해본다.

 

 

 

- 출처. 네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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