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염소자리에 A형” 어쩐지 비슷한 구석이 많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선은 이게 뭐라고 작가와 운명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그럭저럭 괜찮다. 유명인과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찾고 나면 괜스레 으슥한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그나저나 그는 염소자리에 A형이라 힘드셨나 보다. 손해 막심한 삶이라... 막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가 참고 말지' 한 적은 많았던 것 같다. FM대로 살아야 맘이 놓이고, 예의는 될 수 있으면 지켜야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못하고, 될 수 있으면 내가 맞추려 했던.

그래도 요즘은 가만 생각하면 욱할 때가 있어서 하고픈 대로 하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그나저나 나도 염소자리 A형의 유명인을 한 명만 더 찾아볼까나.

 

초반부터 저자와의 공통분모 때문에 반갑게 시작하였지만 송구스럽게도 그의 글은 이 책이 처음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의 티저북만 읽은 게 고작이다.

책장에 몇 권이 진열돼 있긴 한데 이상하게도 선뜻 읽지 못하고 있다.

 

 

 

 

에세이는 정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작가의 일상부터 취향, 성격 등 많은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다. 하루키처럼 베스트셀러가 많고 팬층도 두터운 작가의 에세이는 다음 작품을 선택하는 데 망설임을 줄여준다. 그와의 성격적 공통점뿐 아니라 그가 느낀 일상의 단상들은 비슷한 경험들이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중고도서다. 읽다 보니 밑줄 그은 곳이 곳곳에 보인다. 누군가가 그어놓은 문장 앞에 다다르니 생각이 두 배로 많아진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p.10

흑과 백이 존재하는 한 만인이 평등하기는 어렵다는 진리는 세상에 눈을 뜨면서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걸 알면서도 늘 상처받고 살아가긴 하지만.

 

스무 살은 - 그때는 그때대로 즐거웠지만 -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하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든다. -p.21

저자의 청춘은 타인의 한마디에 무너져버렸지만 나는 청춘이 저물어서 아쉬운 마음보다는 요즘 같아선 젊음이 부러울 때가 더 많다. 얼마 전에 큰 녀석의 절친이 여자친구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내가 다 설렌 적이 있었다. 어쩜 그리도 예뻐 보이는지.

청춘은 한 번뿐이기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 나왔으니 저자의 경험처럼 괜한 말로 후회를 한 경험에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상대의 별 뜻 없는 말에 상처를 받거나 굳이 안 해도 되는 말로 오해를 사는 경우도 그렇지만 요즘은 특히 내뱉고 있는 와중에도 후회할 때가 있다. 생각이 모자라서인지 말주변이 없어서인지 여전히 헷갈린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얘기하는 데 서투른데, -p.35

이 문장은 그냥 자신의 성향과 비슷해서 동질감에 줄이 쳐진것이 아닐까 한다. 나도 그렇다. 시간이 지나도 서툰 대화 실력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말을 거는 타이밍도 잘 놓치지만 반대로 말을 걸까 봐 긴장할 때도 가끔 있다.

글을 잘 쓴다고 말을 다 잘하는 게 아님을 저자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넉살도 나잇살만큼 더 늘었으면 좋으련만.

 

집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모두가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느끼지 않는다. -p.48

소수의 생각이 모든 이의 의견인 마냥 범하는 실수는 일상에서도 비일비재한다. 지인들과 대화 도중에 겪었던 일화가 떠올랐다. 한 학부모가 자신의 아이가 학교급식이 너무 맛없다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엄마들은 일제히 학교의 급식이 형편없다는 결론을 내려버렸다. 제각각인 입맛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에도 부정적인 생각들은 먼저 뿌리를 내리고 만다.

 

하루키의 음악 취향은 재즈인가 보다. 빌리 홀리데이의 곡을 찾아듣고 있자니 '원액 같은 것'의 느낌을 알듯하다.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오자 나는 예전에 즐겨 보던 미드 [콜드 케이스]가 떠올랐다. 십 년 전 방영된 드라마로 미제 사건(cold case)을 해결하는 범죄 수사물이었는데 사건이 해결되는 시점에 흘러나오는 올드팝이 더 좋아서 챙겨보던 드라마였다. 그 이후로 올드팝만 흘러나오면 장면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피해자의 과거와 현재 모습을 오버랩하며 보여주는 장면은 정말 울컥한다. 이 미드는 일본에서도 진실의 문으로 리메이크 되어 방영되었다. 하루키님도 보셨을라나.

 

 

 

 

 

 

며칠 전부터 거실 바닥에 누워 자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늑하게만 느껴지던 침대가 어느 날부턴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지고 있는 것도 한몫하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넓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자잘한 소음부터 오만가지 생각이 들고나간다. 하루키처럼 두 시간씩 책상에 앉아 창밖 빈 공터를 바라보는 것만큼의 사색은 덜하겠지만 너른 천장을 보고 멍 때리고 있는 것도 나름 괜찮다. 며칠 전 혼자가 된 앵무새가 갑자기 천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다. 외롭다고 발광하는 것 같아 맘이 짠하다. 짝을 찾아주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천장에 달과 별을 달면 보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차례로 지난다.

 

일상의 단상을 이처럼 훌륭한 글로 바꾸어낼 수 있는 능력은 하루키라서 가능한 것임을 느낀다. 염소자리와 A형 말고도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식사시간은 최소화하는 게 좋고, 경제관념은 꽝이라 재테크도 관심 없고, 할 일이 있으면 불안해하고, 영어회화도 잘 못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해서 하루키가 더 좋아진다. 그래서 다음책은 장수 고양이의 비밀로 선택했다.

 

저자는 쌍둥이와의 데이트를 꿈꾼다고 했다. 내가 봐도 불가능해 보이긴 하지만 뭐 어쨌든 꿈이지 않는가. 그래도 난 실현 가능한 꿈을 꾼다. BTS 사인회가 당첨된다면 좋아서 기절할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 새벽 웸블리 스타디움 콘서트를 보며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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