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링 인 폴
백수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다시는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고백을 포기한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그런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에겐 절실함이 없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없으면 도저히 못 살 것 같다는.

난 자존심이 센 여자였고 다치고 싶지도 않았다. 적당히 방어막을 치고 선도 빨리 긋고 정리도 빨리했다.

다른 이는 어떨는지 몰라도 적어도 나는 그랬다. 그래서 내겐 아픈 사랑의 기억이 없다.

 

사랑에 조금 건조해서일까. 어찌 되었든 난 처음에 이 글을 읽고는 별 느낌이 없었다.

그냥 한 여자의 추억 속에 존재하는 폴의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just의 느낌이었다.

선생과 학생 사이. 자주 만나 그냥 정든 사이.

그래서 무얼 써야 할는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읽다 보니 그녀가 덤덤히 말을 하고 있지만 얼마나 아팠을지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 넌 미국을 선택하지 않았지. 나를 선택하지도 않았고.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생각은 자꾸만 한쪽으로 흘렀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들켰다가는 두 번 다시 폴을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p.74

 

그녀의 말처럼 누군가에게 절실한 사연을 나는 진부하게 듣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마음이 그렇게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폴의 연민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인들의 정서인 '정'이 든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모성애까지 발동한 것인지도.

 

폴의 아버지도 폴도 유리꼬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연민.

그들 사이에 결코 끼어들 수 없음을 알았을 그녀.

누나라는 호칭으로 남아서 여전히 폴을 보고자 했던 그녀의 짝사랑에 가슴이 찌릿했다.

순간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라는 단편이 떠올라 그런 생각까지 미친 건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사랑 이야기보다

성공해서 돌아오고팠을 한국 땅 위에서

"그만 모든 게 참 달라졌구나"라는 말을 듣고 있자니 울컥했고

"미쓰 유리꼬. 유 러브 마이 썬?" 이란 물음에 또 울컥했다.

아마도 폴에 대한 미련을 폴이 들려준 아버지의 일화로 털어낼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들처럼.

 

이젠 짝사랑이든 사랑이든 그러한 감정들이 빛을 잃어가서일까. 나는 여전히 추측만 할 뿐이다.

완벽한 발음만큼 완벽하게 아시아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 폴은 그녀를 의지했을 뿐이었고

결국 그녀에게 남은 건 폴의 어눌한 한국식 이름뿐이다.

 

그나저나 나도 요즘 빠지긴 했다.

나는 도대체 어쩌다가 BTS에 빠져버린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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