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 - 그리고 책과 함께 만난 그림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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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던 내게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라고 조언을 한 절친이 있었다. 국문과를 나와 극본을 쓰던 친구는 책과 글이 일상이었고 결혼과 육아에 늘 혼을 빼놓고 살던 나는 투정이 일상이었다. 서서히 우울감에 젖어들어 하소연을 늘어놓던 내게 친구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독서할 것을 권했다. 취향을 몰랐음에도 읽을만한 책을 골라주며도 도움을 주었다.

그때 들였던 책이 바로 곽아람 작가의 [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였다. 십 년 전이라서 친구의 추천이었는지 아니면 제목에 이끌려 구입한 건지 선뜻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장 아래 칸을 지키고 있던 이 책을 꺼내든 것도 다시 만날 때가 되었나 보다. 하지만 몇 장을 넘겼는데도 도무지 읽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내가 읽었던 책이 많지 않았기에 아마도 이곳에 소개된 책들이 죄다 낯설어 그랬을 것이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다가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와 짝을 이루고 있던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의 그림을 본 순간 내가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떠올랐다.
수용소의 하루에 대한 소설도 흥미로웠지만 그림 속 남자의 당황한 눈빛과 가족들의 몸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깃든 표정들에 묘한 감정을 느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나 그 부분을 제외하곤 죄다 기억이 없어 새롭게 다시 읽어내려갔다.


 

 

 

읽으면서 왠지 모를 설레는 이 기분이 무얼까 하니 이젠 제법 아는 책이 많단 사실이었다. 미술 관련 서적을 읽은 것도 도움이 되어 작가의 느낌에 발을 맞추어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문득 드는 생각은 작가가 책을 사랑하게 된 데는 부모님의 영향이 상당했음을, 그리고 다양한 책들이 책장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부러웠다. 숨 막히던 학창시절의 기억과 청춘의 고뇌를 책과 그림을 통해 풀어나가는 그녀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마음으로 읽은 책들을 그림으로 옮겨가는 시선이 멋져 보였다. 그래, 진정한 독서란 이런 것이구나를 알게 해준 책이라고나 할까.

평소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장면 장면에서 그녀가 이야기하고 있는 생각들이 마치 그때 내가 느끼고 있었던 생각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였다. 그리고 당연히 위시리스트는 쌓여만 갔다. 국문학을 거의 읽어보지 않은 내게 토지를 찾아 읽고 싶게끔 했고 소나기가 다시 읽고 싶어지기도 했다.
책을 읽고 싶지 않을 땐 원작 영화를 즐겨 보는 즐거움 덕에 위대한 개츠비, 오만과 편견, 제인 에어 등의 장면 장면이 떠올라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특히 일명 좀 어렵다고 하는 책들로 분류되는 고전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읽어볼 수 있어 알찬 독서를 한 느낌이었다.

그녀가 추억한 책 목록에 첫 번째로 등장한 [빨강 머리 앤]을 본 순간 역시 앤의 팬층이 두꺼움을 실감했다. 나도 그린게이블즈의 앤 시리즈 열권 자리를 귀하게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가 연관 지은 [눈에 멍이 든 소녀]는 앤보다는 말괄량이 삐삐가 더 생각나서 그 부분은 쉬이 공감되진 않았다. 그래도 오래 기억에 남을 그림에는 틀림없어 보였다.


 

 

중간 중간 옆길로 잠깐 빠지기도 했는데 카프카의 [변신]에서 벌레로 변한 그레고리는 가족으로부터 진정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받고 싶어 한다. 벌레라는 존재의 하찮음과 혐오감이 더 해져서일까. 그는 비참하게 가족들에게 외면당한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혐오스러운 바퀴벌레로 변했다면 늘 그를 옆에 두고 볼 수 있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내면이 중요함만을 가지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을까. 노력은 해보겠지만 역시나 힘들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며 들여다본 생존의 기술이라는 그림은 유독 다른 그림들보다 인상적이었다. 동그란 달 가운데를 자리 잡고 있는 도시인들의 얼굴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며 한참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달로 변한 그는 안정감을 느끼며 세상을 약 올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작가의 글을 먼저 읽어서일까.  그 뒤에 만난 그림들은 하나같이 작가의 말들과 닮아 있다. 그래서 좀 더 풍요로운 독서를 원한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새로운 시선도 생겨나지 않을까한다.
그래서 아마도 이제부터는 그림을 마주할 때면 무심결에 문학작품 속 그 누군가와 연결 짓는 나를 보게 될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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