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다는 우리의 꿈

자기와 함께 있으면 이제 기대할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말이야. 내일도 어제와 같을 거야, 늘 똑같은 권태, 늘 똑같은 고통……

떠난다는 우리의 꿈, 저멀리 미국에 가서 부자가 되고 행복해지겠다는 그 희망, 온전히 자기한테 달려 있는 그 지극한 행복이 이젠 불가능해졌잖아, 자기가 하지 못했으니까…… 오! 자기를 탓하는 게 아냐.

지금 우리 둘의 미래는 가로막혀 있잖아, 우린 더 멀리 갈 수 없잖아

사랑을 위해 태어난 여자인 그녀의 무의식 깊은 곳은 오로지 그 열망뿐이었다. 걸림돌이므로 치워야 하는 것이다

그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위험을 끊임없이 동반하는 일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 채 자신이 느끼는 까닭 모를 본능적인 두려움을 머지않아 닥칠 그와의 결별에 대한 예감 때문인 것으로 풀이했다

사랑은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며, 더 완벽하게 소유하기 위해서는 절멸시켜야 한다.

그렇게 두 살인은 서로 만났다. 한 살인은 다른 살인의 논리적인 귀결이 아니던가?

사람은 피와 신경의 충동 때문에, 옛날 옛적 서로 투쟁했던 기억의 잔존 때문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과 강해졌다는 기쁨 때문에 살인을 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을 죽였고, 그 끔찍한 살해의 독배를 벌컥벌컥 배가 터지도록 들이켜고 대취해버린 것이다

나서지 않고 얌전하게 구는 편이, 붕괴의 조짐을 보이며 저물어가는 이 사회를 어깻죽지로 지탱하는 편이 그나마 상책이다.

한 줌의 검은 재처럼 휩쓸려나가 소멸하는 것이 제정 체제의 정해진 운명이라면, 이 증거물을 인멸해봤자, 이 행동으로 양심에 가책의 짐을 지워봤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정의를 추구한다는 말은, 진실이란 원래 가시덤불에 철두철미하게 가려져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보면 하나의 사탕발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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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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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왜 욕이 됐을까."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나는 말을 잃은 채로 해의 일주를 지켜봤다. 해가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할머니의 밥은 맛이 있었다. 할머니와 함께 먹는 밥은 맛이 있었다.

"그냥

나는 우리 사이의 난감함, 어색함, 어려움이 나쁘지 않았고 그런 감정들의 바닥에 깔린 엷디엷은 우애가 신기했다.

"보고 싶은 사람이지 뭐."

마음의 보호대 같은 것이 부러진 기분이었다. 덜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가 사라진 것 같았다.

가깝고 끈끈해서 속까지 다 보여주고 서로에게 치대는 사이가 아니었으면 했다

"보고 싶지."

비가 내리던 날 공기 중에 퍼지던 먼지 냄새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할머니와 정이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할머니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예감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재촉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잖아. 아무도 겨울 밭을 억지로 갈진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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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인간 짐승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5
에밀 졸라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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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삶에 대한 근심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밀도로 삶을 영위하는 듯했지만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깡그리 흥미를 잃어 예전에 머리가 돌 정도로 격분했던 걱정거리 중 어느 것 하나도 이제는 더이상 그를 흔들어놓지 못했다

그들 부부가 함께하는 삶은 서로에게 얽매인 두 존재의 강요된 접촉에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몇 날 며칠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냈으며, 그 사건 이후로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고독한 이방인처럼 그저 곁을 스치며 오고갈 뿐이었다.

살인의 고백, 피에 굶주린 육식동물이 되어 밖으로 나갔던 일. 그때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빈사 상태의 몸을 이끌고 간신히 제집을 찾아오는 개처럼 본능이 그를 그리로 이끌었을 것이다.

유일한 포만감의 원천으로서 그의 전부가 되었으며 그는 거기에서만 행복감을 맛보았다

구멍 깊숙이 뭔가 축축한 것, 물렁물렁하고 역겨운 것이 만져진 듯한 느낌이 들면서 그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정신이 돌아오자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벌어졌던 일들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난밤 자기를 덮쳤던 그 끔찍한 죄악에서, 그 숙명적인 죄악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감정이 복받쳐오른 그도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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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나의 종교 - 세기말, 츠바이크가 사랑한 벗들의 기록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오지원 옮김 / 유유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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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자식처럼 자라야 하는지

상하 질서가 모두 사라지고 인류가 오직 형제애에 기반을 둔 공동체 건설 방법을 배우면 진짜 신의 왕국은 지상에서도 시작될 수 있었다.

그의 비서

오늘날 세계에 독이 되고 있는 빈곤과 부의 끔찍한 갈등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오직 형제애에 기반을 둔 공동체 건설 방법을 배우면

못했다. 그의 비서와 번역자들은 술 취한 마부가 모는 마

그리스도인에게 소유란 없는 개념이고, 혁명가는 사유재산을 철폐하고 싶어 한다

천상의 심장부에서 마주 보며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처럼 톨스토이의 사상은 특이하게도 20세기의 가장 과격한 운동이 열매를 맺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두가 동등하고, 혁명가는 불평등을 파괴하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에게 국가란 원래부터 없는 것이고, 혁명가는 국가를 없애고 싶어 한다.

혁명가는 국가의 밖에서 정부와 투쟁해 파고들지만, 그리스도인은 결코 싸우지 않고 국가의 기반을 내면에서 파괴한다."

사회를 산업화했고, 의지를 관철시켰으며, 대중을 무감각에서 일으켜 세웠다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문화적으로 사치를 누리는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거대한 불화는 오직 소유한 계층이 자유의지로 그들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지금까지처럼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을 때에만 해소될 수 있다.

톨스토이의 "이렇게 살아야 한다!"를 통해 그가 추구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 이루어진 셈이다.

"폭력으로 악에 저항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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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눈먼 암살자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차은정 옮김 / 민음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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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 들면서
점점 들어나는 복선에 복선들
겹치는 두가지 이야기들
두자매의 다른 사랑방식
그리고 모든게 다 엇갈린 사랑
스스로들을 파멸로 들어간 사람과 사랑
그리고 왼손이 강하게 남는 머지막

와 매력적인 책이다 이건 읽고 나니 한번더
이젠 모든걸 안 상태에서 찬찬히
관전하듯 읽어야겠다는 느낌이 드는 마력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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