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cissus and Goldmund (Mass Market Paperback)
헤르만 헤세 지음 / Bantam Books / 198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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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읽고 싶어서 운전 중에도 대기 신호시에 조차 책을 읽곤 했는데, 너무 바빠 한 숨에 끝내지 못하고 3주 이상을 끌고나니 감흥이 떨어져서 리뷰 쓰기가 너무 어렵다ㅜ.ㅜ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 매력적이고 지적인 작품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밀란 쿤데라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어느 한 문장도 함부로 쓰여지지 않은 세련되고 고귀한 작품이라 소중히 다루며 읽어야겠다는 조심성까지 들었다. 배경과 등장인물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Narcissus와 Goldmund와의 우정은 웬만한 연인의 사랑을 뛰어 넘는다. Goldmund는 평생 Narcissus의 인정과 사랑을 갈구했다. 평생 말을 아끼다가 Goldmund가 세상 욕망을 모두 내려 놓고 병든 상태로 돌아 왔을 때야 비로서, Narcissus는 항상 Goldmund가 그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Narcissus는 Goldmund의 마음 속 어두움을 꿰뚫어 본 유일한 사람이고, 깨어있지 못함을 일깨워 준 사람이다.(I am awake, whereas you are only half awake. P.42) 즉, Goldmund 자신 보다 Goldmund를 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현실에 뿌리내리기는 어렵다. 정신적으로 늘 깨어, 청명하고 분명한 상태로 내가 누구인지와, 내가 마음으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Narcissus가 예언한 대로, 평생을 수도원에서 보내겠다고 들어왔던 Goldmund는 거의 7,8년을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다가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Narcissus의 도움으로 다시 수도원으로 오게 된다. 그에게 있어 수많은 여자들과의 사랑이나 조각을 하며 열정을 바쳤던 예술가로서의 삶도 본질적인 만족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욕망과 절망 사이에서 영원한 시소를 탔던 그에게 삶은 늘 덧없고 일시적인 그림자에 불과했다.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온 Goldmund는 이제야 비로소 Narcissus를 평생 그리워하고 정신적으로 의존했던 관계에서 벗어나 평등하고 호혜적인 사이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런데 알고보면 Narcissus도 평생을 Goldmund를 그리워하며 보냈다.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을 가지는 것일까? 외적으로 완벽해 보이며 철학과 명상만을 무기삼아 사색가로 살면서 수도원장이 되어있는 Narcissus도 예술가로서 이미지와 감각을 추구하며 평생을 살아온 Goldmund의 삶에 비해 과연 그의 삶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는지 의아하게 여긴다.

돌아온 탕아의 모습을 비난과 꾸중없이 따뜻하게 품어 준 Narcissus는 신의 이미지와 닮아 있다. 평생을 방랑하며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질없는 욕망을 추구하며 채워질 수 없는 허기 속에서 삶의 덧없음 느끼며 끊임없이 Narcissus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그가 죽을 때까지 엄마를 생각하는 Goldmund는 부족한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같은 길을 가고자 의도했으나, 서로 다른 길을 갈 수 밖에 없었던 운명을 지닌 두 사람의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어떤 삶이 더 아름다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의도했던 삶을 질서와 수행 속에서 살아 온 Narcissus도 Goldmund를 향한 동경과 그리움이 있었고, 주체할 수 없는 방랑벽으로 마음가는대로 살았던 Goldmund는 더 큰 삶의 절망을 안고 있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란 시가 갑자기 떠오른다. 내가 두 사람의 입장이라면 난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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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ighteous Mind: Why Good People Are Divided by Politics and Religion (Paperback) - 『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원서
Haidt, Jonathan / Random House Inc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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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은 ‘우리 모두는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가?(Can we all get along?)’로 시작한다. 물음 자체가 우리는 이미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인종, 성별, 연령, 세대 간이 양분화되어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음을 내포한다. 3개 파트로 나누어져 있고 12번까지 부제가 있는데, 마지막 12번이 ‘우리 모두는 더 건설적으로 불일치 할 수 없는가?(Can’t we all disagree more constructively?)’이다.

세상이 갈수록 복잡 다양해짐에 따라 의견이 서로 다름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한가지 생각과 의견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또한 끔찍하고 재미없는 일일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다름이 맞는데 막상 나와 다름을 만나면 불편한 감정이 앞서고 어찌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색안경을 쓰고 보기까지 한다. 이렇게 나는 논리와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직관의 동물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간과한 채, 처음에 저자가 moral psychology(도덕 심리학)를 David Hume의 입장으로 접근해서 놀랐다. Hume은 ‘이성이란 감정의 노예에 불과하다’라고 했고, 저자는 1장에서 왜 우리가 도덕성을 판단할 때 직관이 우선하고 그 다음에 이성적 추론을 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나도 모르게 윤리적/도덕적 접근은 감정을 배제한 채, 이성적 판단으로 냉철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나약한 인간이던가?

이성(reason)을 숭배함이 허상이고 기만이라는 증거가 많은 실험으로 입증된다. 인간은 옳은 사람이 되기 보다 옳은 사람처럼 보이기에 더 신경을 쓰고, 덕있는 사람이 되기 보다, 덕있는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을 한다. 즉, 타인의 시선과 평판에서 자유로운 자가 누가 있을까? 처벌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누구나 거짓말도 많이 한 후, 정당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또한 심리학 책에 단골로 등장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은 인간이 결코 이성의 산물이 아님을 잘 입증하고 있다. 인간은 마치 표를 얻고 여론에 신경쓰는 정치인과 같다는 표현도 있다.

도덕성을 판단할 때 흔히 우리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 되지 않는가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도덕성의 영역에는 단순한 손해와 공정성 이상의 것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민주당은 대부분 care(약자에 대한 배려/돌봄), 공정성(fairness)을 도덕성의 모체로 삼으며 선거활동을 했기에 공화당에 실패했음을 지적한다. 반면, 보수당인 공화당은 위 2가지 외에도 자유(liberty), loyalty(충성심), authority(권위), sanctity(신성함)을 도덕성의 모체로 삼아왔다. 아무래도 보수층을 공략하기에는 적절한 덕목이고 더 넒은 표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긴하다.

제목이 가리키는 옳은 마음이란 마치 6개의 미각기관을 가진 혀와 같다(The righteous mind is like a tongue with six taste receptors.)라고 했으니, 돌봄과 공정성 2가지를 강조하는 민주당 보다는 6가지를 강조하는 공화당이 승리할 승산이 높았으리라. 실제로 우리가 도덕성을 논할 때, 즉 이런 면에서 옳다라고 하는 기준이 반드시 한 두 가지가 아닌 시대에 살고 있다. 어쩌면 가끔은 절대 선과 절대 옳음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할만큼 혼란스럽기도 하다.

도덕 심리학을 통해 종교와 정치학을 논하는 이 책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하지 않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다라는 표현에 공감을 한다. 그러나 이면에 인간은 놀랍게도 조건적으로 그룹을 지어 결속력을 다지기도 한다(90% Vs. 10%). 그렇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형태가 종교와 정치이다. 단단한 결속력과 협동심을 부추기며 소속감을 안겨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두 가지는 다른 상대편의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실제로 알지 못한 채 상대를 배척한다는 단점이 있다. 즉 정치와 종교 집단 활동을 하며 우리가 옳다고 주장하는 그 도덕성/윤리성은 커다란 모순을 안은 채 양극화를 낳고 있다.(Morality binds and blinds)

확증 편향이 우리 안에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는 부족한 우리는 평생 찬성과 반대 사이에서 선택과 싸움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 내내 민주당 지지자였던 저자는 인도에서의 삶과 Convervatism(by Jerry Muller)이라는 책을 읽고 생각의 전환점을 갖게 되며, 상대 진영 논리도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 틀릴 수 있다는 관점을 갖게 되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상대를 더 존중하며 건설적인 인과 양(yin-yang)의 불일치에 다다를 수 있기를 촉구한다.

작가는 ‘인간은 옳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옳은 마음이 그냥 주어지거나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기에 배워야 한다(We are born to be righteous, but we have to learn.)’라고 했다. 나 역시 요즘 정치에 푹 빠져서 내가 가진 색깔의 유투브만 보면서 반대편의 논리에 일방적 분노를 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며, 평생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다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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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otte's Web (Paperback) - 1953 Newbery
E.B. 화이트 지음 / Harper Collins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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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 영원히 그럴거라는거 알지만, 그럼에도 어떤 책을 읽을지 나름 오랜 시간 서핑을 한다. 이제는 독서가 반드시 즐거움이 아닌 부담으로 자리매김 했다는 말이 옳다. 스스로 부과한 의무감때문에 내가 책의 노예가 된듯하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책이 나를 읽고 있다. ‘너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책을 간신히 덮고 나면 내 독서의 목적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쉬운 책을 만나면 ‘나는 정말 책을 읽고 있구나’라는 독서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된다.

성인도 가끔씩 청소년 소설을 읽게 되면 사라진 동심과 순수를 아주 조금씩 회복하게 될런지, 그게 아니면 적어도 속세에 물든 나를 조금은 반성을 하게 될까 모르겠다. 나는 철저하게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며,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양심의 소리가 반대 극단에서 항상 부르짖고 있으나, 늘 나 위주로 살아서 나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순수에 대한 향수가 그리 큰지도 모르겠다.

순수를 만나 느낀점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아기 돼지 Wilbur는 거미인 Charlotte에게 처음에는 거부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Charlotte은 거미가 벌레를 잡아먹지 않는다면 세상은 벌레로 덮일 것이라 말한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그것이 인간이 보기에 하찮은 곤충일지라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모든 존재의 이유를 가진 세상의 만물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가? 인간의 존재가 항상 더우월하다는 생각도 벗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둘째, 인간은 세상의 놀라운 일이 다가옴을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고 한다. 아기 돼지 Wilbur에게 일어난 일을 빗대어 목사가 한 이야기이다. 하루 하루를 삶의 기적처럼 여길 수 있는 민감성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놀라운 일이 저 모퉁이 어딘가를 돌아 오고 있다고 기다릴 수 있는 감수성을 지난 사람도 늘 감사하게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살아 숨쉴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기적으로 받으며 늘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이름 값에 어울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돼지 Wilbur는, 처음에 거미가 Wilbur를 살리기위해 만든 Some Pig라는 단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 다음에 이어진 단어도 마찬가지이다(Some Pig-Terrific- Radiant- Humble). 그러나, Wilbur는 차츰 이름에 맞는 역할과 행동을 위해 노력을 하고 진짜 그런 동물이 된다. 내게도 여러가지 이름과 수식어가 있다. 부모님 앞에서는 철없는 딸이 되어 게으름을 피우고, 후배들 앞에서는 더 의젓한 모습으로 본을 보이려한다. 평소 모습과 달리 출근하게 되면 공직자라는 이름 때문에 나는 막중한 책임감에 휩싸여 일중독이 되기에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Wilbur를 보면, 이름에 맞는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 구속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 Charlotte의 과분한 도움으로 Wilbur는 목숨을 건지며 자격이 안되는 자신을 왜 도와주냐고 물을 때, Charlotte은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은 이타적인 삶을 지향함이 조금 더 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가치있고 유의미한 삶은 언제나 나의 화두라서 크게 와 닿았다.

마지막으로, Wilbur는 Charlotte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She was in a class by herself(그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친구였다). Charlotte같은 진실한 친구를 둔 Wilbur는 매우 행복했으리라. 가끔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깊은 고독감에 시달리다가도, 친구가 너무 보고 싶을 때도 있다. 무서운 고독감을 넘어서는 진실한 친구가 삶의 희망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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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mbling on Happiness (Paperback) -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원서
대니얼 길버트 지음 / Vintage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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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지적했듯이,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어 있으나, 결론적으로는 일종의 심리학, 인지신경학, 철학, 행동주의 경제학을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과학 서적이다. 단순히 제목만으로 쉽게 접근한 나는 또 다시 독서의 어려움을 겪었다. 나는 왜, 행복이란 단어에 습관적으로 끌리고, 구조적인 분석을 통해 행복의 실체를 알고자 하는가?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물론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것이다라고 위안은 삼으면서도 기본적으로 행복관련 도서는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결국 이 책은 행복해지는 비결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오리려 우리가 행복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여러가지 다양한 실험을 바탕으로 입증한 후, 행복을 찾는 단순한 공식은 없다고 끝이 난다. 물론 왜 행복에 대한 단순한 공식이 없는지, 왜 우리가 행복이라는 개념에 대해 잘못 인지할 수 밖에 없는지를 알게 해 주는 책이다. 제일 잘 알 것 같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즉 ‘나 자신의 과거’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며, ‘나 자신의 현재 감정’에 대해서도 정확히 서술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이 어찌 추상적인 행복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어쩌면 알려고 도전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처음부터 착시(optical illusion)라는 단어가 서문에 등장한다. 이 단어가 행복에 대한 정의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간만이 미래(future)에 대해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이라 한다. 실수와 오점으로 점철된 과거는 절대 고칠 수 없고, 현재는 늘 괴롭다. 그래서 우리는 미래 속에 살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상상하는 것도 미래 자체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상상하지 못하고 완전히 새롭게 제조(manufacture)한다는 것이 많은 실험으로 입증되었다. 어떤 일이 일어나면 어떤 감정일거라 추측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도 온전히 경험을 있는 그대로 떠올리지 않는다. 수 많은 경험이 압축, 요약되고, 중요 포인트만 재 조명되어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리게 된다. 상상력의 과정은 더 채워넣기, 생략하기, 현재의 렌즈로 바라보기, 합리화 하기 등등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장애인들이나 만성적 질환을 가진 사람들은 정상인들보다 더 불행할 것이라 추측하는 것도 틀리다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객관적인 환경도 현저하게 다양한 주관적 경험을 일으키기 때문에 쉽게 행복과 불행을 단정지을 수가 없다. 과거에 행복했다는 기억도, 현재 불행하다는 느끼는 인지력도, 미래에 행복할거라 느끼는 상상력도 모두 틀릴 수가 있다. 실제 경험의 색깔은 아주 다양하지만 상상은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생각하며, 경험보다 상상을 선호하게 된다. 물론 즐거운 상상은 현실의 곤고함을 잘 견디게 하고, 불쾌한 상상도 다가올 고통에 대한 영향력을 최소화 시키며 완충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상상력을 이미 그 소임을 다하지만 상상력의 결점을 알고 나니 행복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도 한다.

현재가 너무 힘들 때 현재만 벗어나면 나의 미래는 마냥 행복하고 줄거울 듯 착각을 하지만, 막상 미래가 되었을 때 상상했던 것 만큼 기쁘지 않았던 기억이 내게도 많다. 상상은 현재의 부재(absence in the present), 미래의 부재(absence in the future)를 놓치게 하고, 그런 놓치고 있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셜록 홈즈가 범죄의 단서를 개가 당연히 짖었어야 하나, 밤에 누군가 들어 왔는데 짖지 않으며 침묵을 지켰다는 것을 알아냈듯이 말이다. 개가 짖지 않았다는 것, 즉 개 짖는 소리가 없었다는 것(absence)을 셜록 홈즈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찾아내기가 어렵다. 어쩌면 나도 먼 미래에서 다가올 나의 행복을 찾고 있기에, 현재 내게 없어서 중요한 것을 놓치며 불행하다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개입으로 바라보는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상상은 정확치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가끔 나의 과거가 지나치게 아름답게 혹은 너무 우울하게 느껴질 때 현재의 렌즈을 벗어보자.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불안한 두려움이 엄습할 때, 실제로 내가 맞이할 미래는 현재 나의 상상과 다를 수 있다고 위안을 삼아보자. 행복이란 나의 기억(memory), 인지(perception), 상상(imagination)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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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ckel Boys (Paperback) - '니클의 소년들' 원서/2020 퓰리처상 수상작
콜슨 화이트헤드 / PENGUIN RANDOM HOUSE USA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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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ickel Academy는 개혁가인 Trevor Nickel의 이름을 본따서 지은 교정학교이다. 소위 말하는, 말썽 피운 학생들을 교화시켜 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취지에서 세워진 플로디다 주, Tallahassee에 세워진 소년원이다. 인격형성뿐 아니라 교육까지 맡아서 책임있게 잘 한다고 명성이 나 있는 학교지만, 늘 그러하듯 겉모습이나, 소문으로만 판단한다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nickel은 5센트 동전을 가리키기도 하기에 실제 거기에 있는 학생들은 우리가 5센트 짜리의 가치도 안되는가 할 정도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다. Elwood Curtis 라는 흑인 소년과 소년원에서 만난 Jack Turner를 중심으로 설명하기조차 아픈 인종차별 이야기가 전반에 펼쳐진다. Jim Crow(흑인 차별 정책)가 당연시 되었던 1960년대 배경이지만, 이런 차별과 불합리의 벽을 넘으려는 운동이 태동하던 시기라서, 주인공 Elwood Curtis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이상주의자로 성장한다.

Elwood는, 비록 그가 잠든 사이에 떠난 부모들과도 연락이 두절된 채 Harriet이라는 할머니 손에 길려지지만, Martin Luther King 목사의 연설을 반복해서 듣고 상기하면서 삶의 양분으로 삼는다. 연설문은 책에서 3번 정도 반복이 된다.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고 이론적으로는 수긍하지만 나의 회의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과연 그럴까?

우리 각자는 모두 소중한 사람이며, 자존감과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안고 늘 당당하게 걸어야 한다는 것은 수긍하지만, ‘어둠은 어둠이 아닌 빛으로만 몰아낼 수 있고, 물리적 폭력을 만나더라도 영혼의 힘으로 대처하며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더라고 언제나 그들을 사랑할 것이다’라는 부분에서 물음표가 생겼다.

소년원에서 111년 동안 자행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책은 흑인차별이 주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백인 소년들도 함께 수감되었던 이 곳의 만행이 아주 오랜 세월 주 정부에 의해 간과되어 왔다는 부정의와 부패도 통탄할 일이다. 우리는 부정직을 만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회의적이었던 친구 Turner와 달리 Elwood는 소년원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하여 감사원들이 나왔을 때 이를 전달하려고 시도하는 용감한 행동을 한다. 그에게는 Dr. King의 연설이 언제나 삶과 행동의 지표였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 했다고 생각한다. 앎을 삶 속에서 실천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요즘 내가 완전히 독서삼매경에 빠지지 못하며, 이 책을 오래 끌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정치 관련 유투브 때문이다. 원래 관심이 많긴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정치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생각하기에 기사 읽을 때마다 흥분하게 된다. 여전히 자행되는 엄청난 부정부패와 부정의를 보면서, 나는 어떤 시민이 되어야 하는지 생각했다. Elwood 처럼, 행동하는 양심이 내게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감정적 흥분만으로는 부정직은 쉽게 사라지지 않으며, 폭력이라는 어둠으로 맞설 힘은 없으나, 어떤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다른 독자들만큼 이 책에 깊이 몰입하지 못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요즘 정치에 대한 지나친 관심으로 집중이 분산되기도 했고, 인종차별 문제는 내가 주로 읽는 서양 소설의 단골 소재라서 많이 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Invisible Man(by Ralph Ellison), Beloved(by Tony Morrison), To Kill a Mockingbird(by Harper Lee)는 감동 그 자체였고, 밤잠을 설치며 읽었던 책이었다.

부정직, 부정의, 부정부패는 어느 나라 막론하고 현재도 뿌리뽑기위해 고군부투하고 있으며, 인종차별 문제도 다분히 미국내에서 여전히 진행중인 흑백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시, 백인과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 속에 편견과 고정관념이 없는지, 동남아인들과 서양인들 대하는데 있어 무의식적 차별을 범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물론 나 자신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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