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rlotte's Web (Paperback) - 1953 Newbery
E.B. 화이트 지음 / Harper Collins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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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 영원히 그럴거라는거 알지만, 그럼에도 어떤 책을 읽을지 나름 오랜 시간 서핑을 한다. 이제는 독서가 반드시 즐거움이 아닌 부담으로 자리매김 했다는 말이 옳다. 스스로 부과한 의무감때문에 내가 책의 노예가 된듯하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책이 나를 읽고 있다. ‘너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책을 간신히 덮고 나면 내 독서의 목적에 대해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쉬운 책을 만나면 ‘나는 정말 책을 읽고 있구나’라는 독서의 즐거움을 회복하게 된다.

성인도 가끔씩 청소년 소설을 읽게 되면 사라진 동심과 순수를 아주 조금씩 회복하게 될런지, 그게 아니면 적어도 속세에 물든 나를 조금은 반성을 하게 될까 모르겠다. 나는 철저하게 나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며,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살지 말라는 양심의 소리가 반대 극단에서 항상 부르짖고 있으나, 늘 나 위주로 살아서 나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그래서, 순수에 대한 향수가 그리 큰지도 모르겠다.

순수를 만나 느낀점 5가지는 다음과 같다.
아기 돼지 Wilbur는 거미인 Charlotte에게 처음에는 거부 반응이 있었다. 그러나 Charlotte은 거미가 벌레를 잡아먹지 않는다면 세상은 벌레로 덮일 것이라 말한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은 그것이 인간이 보기에 하찮은 곤충일지라도 다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모든 존재의 이유를 가진 세상의 만물들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가? 인간의 존재가 항상 더우월하다는 생각도 벗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둘째, 인간은 세상의 놀라운 일이 다가옴을 항상 깨어서 준비하라고 한다. 아기 돼지 Wilbur에게 일어난 일을 빗대어 목사가 한 이야기이다. 하루 하루를 삶의 기적처럼 여길 수 있는 민감성이 있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고, 놀라운 일이 저 모퉁이 어딘가를 돌아 오고 있다고 기다릴 수 있는 감수성을 지난 사람도 늘 감사하게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살아 숨쉴 수 있다는 것 자체를 기적으로 받으며 늘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이름 값에 어울리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돼지 Wilbur는, 처음에 거미가 Wilbur를 살리기위해 만든 Some Pig라는 단어가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그 다음에 이어진 단어도 마찬가지이다(Some Pig-Terrific- Radiant- Humble). 그러나, Wilbur는 차츰 이름에 맞는 역할과 행동을 위해 노력을 하고 진짜 그런 동물이 된다. 내게도 여러가지 이름과 수식어가 있다. 부모님 앞에서는 철없는 딸이 되어 게으름을 피우고, 후배들 앞에서는 더 의젓한 모습으로 본을 보이려한다. 평소 모습과 달리 출근하게 되면 공직자라는 이름 때문에 나는 막중한 책임감에 휩싸여 일중독이 되기에 그게 너무 싫었다. 그런데, Wilbur를 보면, 이름에 맞는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반드시 부정적 구속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넷째, Charlotte의 과분한 도움으로 Wilbur는 목숨을 건지며 자격이 안되는 자신을 왜 도와주냐고 물을 때, Charlotte은 도움을 줌으로써 자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결국은 이타적인 삶을 지향함이 조금 더 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있을까? 가치있고 유의미한 삶은 언제나 나의 화두라서 크게 와 닿았다.

마지막으로, Wilbur는 Charlotte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She was in a class by herself(그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탁월한 친구였다). Charlotte같은 진실한 친구를 둔 Wilbur는 매우 행복했으리라. 가끔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깊은 고독감에 시달리다가도, 친구가 너무 보고 싶을 때도 있다. 무서운 고독감을 넘어서는 진실한 친구가 삶의 희망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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