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lightenment Now: The Case for Reason, Science, Humanism, and Progress (Paperback) - 스티븐 핑커의『지금 다시 계몽』원서
스티븐 핑커 / Penguin Books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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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책 중에 가장 도전받은 책인듯하다. 내용도 그렇지만 책 크기와 분량(p.453)이 너무나 위압적이어서 들고 다니며 읽거나 누워서 읽기도 힘들었다. 그럼에도, 책을 향한 인내는 잊지않고 항상 귀한 보석을 선물한다. 새로운 정보, 수려하고 보석같은 영어 문장, 생각에 생각을 하게 하는 내용들은 기다려 받은 열매였다. 오히려 양이 너무 많아 책에 독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책 3권으로 나왔을 엄청난 내용인데 쉽게 쓰여지지 않아 귀한 내용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을 것이 아쉽다.

이 책은 Factfulness와 맥락이 같고 책 속에서도 2번 정도 책 내용과 Hans Rosling이 한 말을 인용하고 있다. 즉 낙관적인 이야기인데 그는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라 조건적 낙관주의(conditional optimism)라고 한다. 진보(progress)에 대해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열역학 제2의 법칙이 심리학의 제1법칙이고, 엔트로피와 진화에 의해 지배받는 세상에서 무질서에 질서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 진보(progress)이고 이를 가능하게 했고, 앞으로도 가능하게 할 것은 이성(reason), 과학(science), 인본주의(humanism)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과 SNS에서는 문화적 염세주의가 대세인데, 진보, 발전되었다니? 그래서 그는 수많은 데이타와 그래프를 제시한다. 숫자와 양적인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bias(편향)이다. cognitive bias, availability bias, confirmation bias, intellectual and emotional bias등등
심지어 bias bias도 있다(본인이 틀리게 알고 있으며 남보고 틀리다고 하는 편향. 미국의 자유당이 틀리면서 공화당 보고 틀리다고 하는 경우) polization도 엄청 많이 사용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틀리게 알고 있는 것인가? 내가 너무나 관심이 높은 환경(Chapter 10. The Environment)에 관한 접근도 매우 신선했다. 현재 환경 문제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과학의 힘으로 발전될 수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문제는 불가피하고 완벽하게 해결된다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better) 방향으로 해결 될 것이라 하고 있다. (Problems are solvable)
Hans Rosling이 한 말, “I’m a very serious possibilist”.을 지지하고 있다.

사실, 개인의 인지적 편향도 무섭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의 편향과 극단주의를 넘어 독재적 populism이다. 18세기를 이끌었던 계몽주의가 가져온 풍요한 번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장점을 온 국민이 누려야 할 시기에 퇴행적 사고로 인기에 영합하며 이성과 과학을 무시하는 지도자라니... 저자는 Trump대통령과 그를 지지하는 공화당과 국민들에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차없이 휘두른다. 다른 모든걸 떠나 국제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기에, 파리기후협약(Paris Climate Accord, 2017)탈퇴는 너무 심하지 않은가? 지구온난화도 거짓이고 사기라며 이를 정치에 이용하는 것도 세계화 시대에 옳바른 자세일까?

인지적 편향을 벗기 위해서는 쏟아지는 수 많은 정보에 대해fact-checking도 필요하고, 역사, 철학, 심리학을 잘 이용할 것을 당부한다. 즉 이성과 과학, 인간을 이롭고 풍요롭게 하는 인본주의를 잘 살려, 편향, 허구, 망상, 이기심에 취약해지지 않도록!!

많은 부분에서 심취하고 공감하며 읽었는데, 나 스스로 무서워지기도 한다. 저자는 여전히 높은 지지율로 퇴임한 오바마를 극찬하지만, 트럼프에 대해서는 매우 매우 신랄하다.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모토로 미국을 퇴행하는 수치스러운 나라로 만들었달까?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남북정상회담 시기에 트럼프의 역할에 대해 두 대통령을 놓고 쓴 인터넷 신문 리플을 읽은 기억이 있다. 오바마는 자국에서는 훌륭할지 모르나 우리나라로서는 전혀 득이 되지 않았고, 트럼프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었다. 우린 남북통일되고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 주자는 등등... 나도 그 당시 상서로운 기운에 휩쓸려, 트럼프가 당선되었을 때 너무 놀랐던 기억과 난민에 대한 그의 조치를 잊고 새로운 시선으로 그를 보기도 했었다.

또한, 내가 그간 너무 좋아했던 니체의 사상이 나찌즘과 파시즘의 모태가 되었다는 것도 너무 놀라웠다. 결국 니체사상도 버려야 한다고( drop the Nietzsche).....
역시나, 어느 책에서 ‘낮에는 증명을 하고, 밤에는 검증을 한다’는 어느 수학자의 표현처럼, 인지적 편향을 깨기위해 늘 깨어서 열린 사고로 노력을 해야할 듯하다 ㅜ


틀린 것, 고여있는 사고, 나를 노예로 만드는 수 많은 집착과 편향 등을 많이 많이 버려서, 새 것으로 채우기 위한 노력이 계속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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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Mice and Men (Paperback) - Penguin RED Classics
존 스타인벡 지음 / Penguin Classics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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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도에 발행된 121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분량의 고전이다. 고전은 언어나 문체에서도 도전을 주지만 현대작품에 비해 더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듯하다. 그런데 생각을 어느 방향에서 잘 정리해야할지 모르기도 하고, 책을 덮고 명확하게 와닿지 않는 부분이 있어 검색을 했다. 나의 책 제목에 대한 집착이 해결되지 않아서이다. 초반부에 Lennie가 죽은 생쥐를 끌어안고 쓰다듬는 장면이 있었으나 왜 제목이 Of Mice and Men인지 궁금했다. Lennie는 자기 집을 얻고 토끼를 기르는게 꿈인데...

검색을 해보니 제목은 스코틀랜드 시인 Robert Burns의 시에서 차용한 것이라 했다. 화자가 쥐 둥지를 쟁기로 들어 올리며 생각해보니 인간과 생쥐가 다른 줄 알았는데, 결국 죽을 운명의 동물이고 고통받는 삶을 산다는 면에서 다를 바 없다는걸 깨닫는다. 작고 영리한 George는 인간, 덩치 크고 힘센 그러나 바보같은 Lennie는 생쥐의 metaphor라고 했다. 제목에 관한 구글의 내용을 읽으니 궁금한 점이 풀리는 듯 했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George가 Lennie에게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게 하면서 머리에 총을 쏴서 죽이는 장면에서 너무 놀랐다. 그를 고통없이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하며 죽이는 것이 잡혀서 린치 당해 고통스럽게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을까? 너무 슬프고 깜짝 놀랐다.

우리 사회에 Lennie같은 이런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죽은 생쥐를 쓰다듬는 것이 좋고, 자기 힘이 얼마나 센지도 모른 채 힘을 가해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고, 친구의 말이라면 목숨까지 바쳐 모든걸 다하고, 토끼를 기르며 사는 것이 평생의 행복인 순수하고 외로운 사람들. 순수함을 가리고자 해도 덮을 수 없어 누구나 보면 그의 순수가 자연스레 묻어나서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 George 조차 혼자 다니면 쉬운데 늘 말썽만 피우는 Lennie를 버리지 못하고 늘 함께 다녔다.

평범치 않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와 고단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여도 미래를 꿈꾸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그러나 행복과 불행은 sister관계라 했던가? 결국 토끼를 보살피고 쓰다듬으며 살고픈 Lennie의 꿈은 꿈으로만 남았고, 책은 불행으로 끝이 나서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이런 이유로, 절망과 실망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 언제부터인가 희망을 갖고 꿈을 꾸는 것이 싫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매력적이면서도 도도한 모습으로 고아하게 남아 빛을 발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역설적인 생각이 든다. 대공황 시기의 American Dream을 꿈꾸며 California를 찾았던 수많은 일일 노동자들이 겪었을 좌절과 절망은 헤아리지도 못한 채 말이다.

우울함을 벗기위해 이 책에 조연급으로 등장하지만 매력적인 남자 Slim에 관한 인품을 소개하는 멋진 문장을 하나 외워야겠다.

His slow speech had overtones not of thought, but of understanding beyond thought.

말투에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를 할 수 있는) 생각을 넘어 이해심을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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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lp (Perfect Paperback) - 『헬프 』 원서
캐서린 스토켓 지음 / Penguin Group USA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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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야말로 page-turner였다. 깨알같은 글씨로 461페이지 분량이지만 한순간도 지루함을 느끼지 못하며 읽었다. 내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책이란, 스토리로 승부하거나, 탁월한 언어적 기법을 이용한 감동적인 문장으로 사로잡거나 하는 경우인데 이 책은 전자이다.

60년대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한 흑인 여성들이 주인공이라서 영어는 비문법적 표현이 많아 오히려 힘들었지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내려 놓지 못하게 했다. 이 책은 Invisible Man이나 To Kill a Mockingbird를 연상시켰으며, 내게 언제나 도전을 주는 단어 ‘변화’를 생각나게 했다.

‘변화’,
그 얼마나 매력적이고 감동적이며 설레임을 주는 말인가?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며 사는 삶을 동경하고 지향한다. 크고 작은 변화가 있어야,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우선적으로 촉매(catalyst)가 필요하다. 변화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 그 촉매에 힘을 더 할 수 있는 용기, 오랜 기간 버틸 수 있는 내적 강인함 등등이 모아지면 변화의 물결이 보인다. 함께 하는 사람의 수가 많을 수록 변화의 속도와 강도가 빨라짐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 소설의 늘 뜨거운 감자로 등장하는 흑백인종 간의 차별을 다룬 이야기이다. 60년대 보수적인 남부 Jackson, Mississippi 지방을 배경으로 백인 여성 Miss Skeeter라는 무명작가를 촉매로 하여 Abileen, Minny포함 12명의 흑인 가사도우미들의 용기가 더해져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며 책을 발간하여 변화를 일으키는 내용이다.

마지막, Aibileen이 부당하게 해고를 당하면서 4살난 Mae Mobley와 헤어지는 장면은 정말 눈물겨웠다. 늘 kind, smart, important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길러왔던 4살난 여자아이와 뼈아픈 이별을 해야하지만 이제 그녀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더 이상 가사 도우미를 할 수 없으나(지역에서 철저히 배척당함) 그래서 그녀는 이제 그 어떤 것이라도 도전할 수 있는 자유함을 얻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평생 백인 가정에서 사람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helper 역할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리라. 결국 선택을 해야 한다. 안전지대에서 큰 위험부담 없이 살 것인지, 조금씩이라도 삶의 변화를 주며 나를 바꾸고 더 나아가 주변을 더 나은 장소로 바꾸며 살 것인지...

어쩌면 Miss Skeeter처럼 가족과 주변 친구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편안한 삶에서, 왜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며 무리수를 던지느냐는 사람들 속에서, 깨어서 생각하는 지성인이 있다면 이미 변화의 씨앗이 뿌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 책 한 권이 소설 속에서처럼 백인과 흑인들의 마음에 각각 어떤 변화의 파동을 불러 왔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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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ook of Boy (Hardcover, Deckle Edge) - 2019 뉴베리 아너작,『더 보이』원서
캐서린 머독 / Greenwillow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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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 인사치례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웬지 휴가를 안 떠나면 아니될 것 같은 시기이다. 그러나 나는 나름 책과의 지적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이 있어 그런지 전혀 부럽지 않고, 밝은 불빛을 따라 음악을 들으며 야간 산책을 하며 책을 읽는 재미에 빠져 있다. 올 한해 독서 목표의 절반도 못했고, 책을 읽는 것도 깊이 들어가 이해하기까지 많은 인내가 필요한지라 쉬운 책을 들었는데, 기대에 마치지 못했다 ㅜ

2019년 Newbry Honor상을 받은 책이다. Medal은 받지 못했는데 대부분 나만큼 감동이 덜했기때문일까? 책 탓이 아니라 원래 환타지나 미스터리 작품 등을 평소에 읽지 않은 나의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책마져 평소 편독을 했기에 생소한 소재를 만나니 흥미를 덜 느낀듯하다.

꼽추, 괴물이라 불리는 Boy라는 대 저택에서 염소를 지키는 소년이, 다른 이름이 아닌 Boy라 불리고 싶어서, 천국으로 가는 열쇠를 얻기위해서 천년을 기다려 지옥에서 나온 Secundus와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로마 Saint-Peter- Step으로 가는 여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1350년대 배경이라서 왜 그들이 그토록 로마로 가고 싶어했는지, Rib, Tooth, Thumb, Shin, Dust, Skull, Tomb를 얻기위해 사투를 벌이는지 크게 공감은 안된다.

그러나 그 소년은 몇 개월의 여정을 통해 성장해 다른 사람이 된다. 결국 그는 놀림에서 벗어나 한 명의 소년으로 불리길 간절히 소망했는데 그 자신이 천사였다는 것을 알게 되어 열등의식을 벗게 된다.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home도 결국 로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 살던 저택이었단 것도 알게 된다.

남들이 그리 놀리던 등의 꼽추는 천사의 날개였다는걸 알게 되니 더 이상 소심해지지 않고 두려움도 없이 남을 돕는 일에 자신감이 생긴다. Because I am good이라면서.
이 책에 여러 번 반복되는 문장이, there was work to be done(해야 할 일이 있다). 천사의 마음을 가지고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외적으로 흉해 보였던 장애가 있다고 느꼈던 소년은 결국 천사였다. 천사의 날개가 그렇게 보는 사람에 따라 흉물로 보일 수도...
You are a boy to folk who would harm you. But in your heart, you’re an angel.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진데, 흉해 보이고 미워 보이는 이면에 천사의 모습이 있는걸까? 그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은 어찌 길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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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Futures : Learning from Ladakh (Paperback)
Norberg-Hodge, Helena / Rider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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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감동적인 넌픽션이다. 읽으면서 환경을 생각하니 ‘The Silent Spring’, 기술 문명의 발전을 생각하니 ‘Brave New World’가 떠올랐다. 나는 책 제목을 전체 내용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 궁금했는데 작가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다. 보통 오래된(ancient) 이란 단어 뒤에는 과거가 오는데 언어 유희처럼 미래(futures)를 썼다. 오래된 역사를 가진 Ladakh 지방의 과거의 모습에서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모습을 찾자는 저자의 의도일까?

스웨덴의 언어학자인 Helena는 Little Tibet이라 불리는 Ladakh에서 16년 정도 살았다. 언어를 연구할 목적이었으나 그 지방의 매력에 푹 빠진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요약된다. 라다크의 매력, 산업화의 물결로 인한 라다크의 변화, 라다크 지역을 계기로 시작된 작가의 환경 운동

이렇게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며 역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매우 놀랍다. 환경에 매우 관심이 많은 나라서 더욱 공감도 많이 되었고 어떤 식으로든 더욱 더 적극적인 실천을 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또한 진보와 발전이라는 이름으로(In the name of progress and development) 우리가 잃어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책 초반부 라다크 사람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높은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만 피트가 넘은 산악지대에서, 일년 중 4개월이 여름이고 나머지는 40도가 넘는 겨울인 척박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scale(규모)을 간과할 수 없다고 한다. 작은 부락이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마을이다. 대가족 안에서 무조건적 사랑을 받고 자라며, 협동과 조화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며 자란 그들은 정서적 안정감과 깊은 유대감이 마음 속 깊이 자리하고 있기에 포용력과 수용력이 크다는 것이다. 그들은 궂이 내가 누구인가를 입증해 보일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한 자아 정체성을 느끼며 자란다는 것이다. 즉 정서적, 문화적, 영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이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볼 때 가난한 삶이지만 내적 풍요를 느끼며 진정한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던 이면에는 불교도 큰 역할을 했다. 인간은 자연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의 섭리 안에서 일부분일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이 무(emptiness)이기에 자연 현상이나 환경을 나의 생각대로 이렇게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이 그들 삶의 철학이었다. 화를 낼 줄 모르고, 화를 내는 것을 가장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삶이 정말 부러웠다.

철저하게 검소하고 그 어떤 것도 낭비하지 않으며 친환경적인 삶이 존경스럽기고 했다. 땅, 자연, 동물까지 거스르지 않는 삶, 나쁜 환경에 감정이 지배당하지 않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랍다. 그런 그들이 세계화, 산업화, 현대화의 논리로 불어닥친 개발에 의해 외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것 같았으나, 지역적 특성, 생태학적 개발을 고려하지 않고 무차별적 상업화된 라다크는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기술적 대안을 제시하고 재생에너지 사용이나 친환경적 재료를 사용한 사례 등으로 라다크를 변모시켜 가고 있으며 의식의 전환을 통해 생태학적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깨어있어 실천하는 지식인이 있기에 아직 이 세상이 살만한 곳인지도;;;

너무 많은 것을 느꼈는데 부담이 된다. 행복, 환경, 적정기술, 실천하는 지성인.....
나는 매우 편리한 환경에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저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거라 느끼는 정도. 무엇이 나를 공허하게 만드는가? 많이 가지는 것이 행복의 척도가 아님을 알면서 무엇이든 더 가지려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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