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oom Of One's Own And Three Guineas (Vintage Classics Woolf Series) (Paperback) - 『자기만의 방』 원서 Vintage Classics Woolf Series 1
Virginia Woolf / Vintage Publishing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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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문학책에 감동을 받고 감상에 젖어 습작을 하면서 언젠가 작가가 되는 꿈을 꾸어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하면서 하루를 돌아보며 나 자신을 다독거리는 훌륭한 스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학교 때, 작가와 현재의 직업을 놓고 고민할 때, 부모님이 작가는 가난하게 산다고 현재의 직업을 권하셨다. 진짜 좋아하는 것은 취미로 가지라 했던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인지, 취미로 책을 읽고 쓰기를 해서인지 여전히 작가에 대한 매력은 멈추지 않고 있다.

1929년에 출간된 이 책에서 여성과 소설에 대하여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 즉 글을 쓸 수 있는 지적 자유함도 물질적인 것에 달려 있다고 했다. 최소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500 Pound)과 문을 걸어 잠글 수 있는 자기만의 방(One’s own room)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500 파운드는 사색할 수 있은 힘, 걸어 잠글 수 있은 방은 자신을 위한 사고의 힘을 상징한다고 했다.

거실이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끊임없이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19세기 초기의 중산층 여성들은 시를 쓸 수 있는 기반이 없었고 소설을 쓸 수 밖에 없었으며 Jane Austen도 그녀만의 서재가 없었다고 했다. 12명의 남성 시인 중 9명이 대학 교육을 받았고, 영국의 가난한 아이는 아테네 노예의 아들보다 더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적다고 했다.

가부장적인 사회, 여성에겐 투표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에 다른 사람의 의견에 흔들리지 않고 기죽지 않으며 여성작가로서 글을 쓴다는 것은 Jane Austen이나 Emily Bronte정도 아니고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라 했다.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지적, 영적으로 열등하다는 교수의 글을 필두로, 남성적 우월감으로 가득찬 그래서 침투력이 약한 남성 작가의 글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남녀가 택시안으로 나란히 같이 들어 가는걸 보면서 두 성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감이 당연함을 이야기한다. 의식적인 편견은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협력과 반대의 결합이 서로 아름답다고 한다. 즉, 사람은 여성이되 남성적이고, 남성이되 여성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One must be woman-manly or man-womanly.)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실망했던 적이 있다. 어쩌면 나는 그런 차별을 받고 자라지 않았고 현재 직장에서도 여자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이 없다고 생각해서 공감이 덜 되었던가? 19세기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슬프긴 한데 작가가 되기 위해 물질적 조건이 전제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아 더 불편하다.

Money talks라고 했던가? 작가라는 직업이 아니어도, 여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도, 21세기를 살아감에 있어서 물질적 기반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물질에서 자유함을 얻고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해 본다. 물론 물질적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지적 자유함이나 행복을 얻을 수도 없다.

이 글이 쓰여진 시기와 달리 이제는 균등한 교육적 기회가 성에 관계 없이 주어지지만 부의 불평등이 존재한다. 가난때문에 역시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내가 여성이라는 것 때문에 받는 차별에 상관없이, 해결책에 힘도 보태지 못하면서 갈수록 커져가는 부의 불평등때문에 내 마음 한켠이 매우 불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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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yranny of Merit :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Paperback)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원서
Penguin Books Ltd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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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신간을 읽으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고여 있던 내 생각에 큰 파문을 일으킨 책이다. 재미있게 읽던 중 이 책을 주말에 직장에 두고 오면서, 중간에 다른 책이 끼어 들어 그걸 끝내고 다시 이 책을 읽느라, 오랫동안 읽었으나 그 만큼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책이었다. 물론 오래 읽어서 중간에 흐름이 끊겨서 리뷰를 쓰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ㅜ.ㅜ

The Tyranny of Merit(업적주의의 독재/능력주의의 독재)라는 제목도 도발적이다. 능력위주, 업적주의라는 표현에는 연공서열이나 인종 차별 등이 배제된다는 공정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능력위주의 정치가 폭군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Yuval Noah Harari 책을 읽을 때 만큼 너무나 뛰어난 필력에 감동하며 읽었고, 이와 같은 진정한 지식인의 자성의 목소리가 많이 출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만함(hubris, conceit), 당연히 자격이 되는(deserve, entitled)이란 단어에, 경종을 빈번하게 울리며 민주주의와 겸손(democracy and humility)으로 책이 끝이 난다. 나도 즐겨 쓰던 속담 ‘God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란 표현이, 노력하지 못하여, 노력을 덜하여 승자가 되지 못한 자들과는 신이 함께 하지못할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해석될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패자의 입장에선 그 속담이 신의 응징으로 들릴 것 아닌가?

시장 주도형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수입과 부의 불평등이 가속화되었다. 이 불평등을 없애는 마법의 주문으로 ‘노력하면 된다(You can make it if you try)’라는 표현이 양날의 검으로 작용된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노력하여 승자가 된 자들은 자신의 성공을 노력한 자신이 당연히 받을만한 것이다로 해석한다. 상대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자는 자신의 무능함만을 탓하게 되며 패배의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내가 존경했던 오바마 대통령까지 노력하면 그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능력/업적 위주의 정치와 기술주의 정치(meritocracy and technocracy)의 칼날을 서슴없이 휘두르며, 세계화의 물결에 발맞추어 가지 못한 약자들의 마음을 보듬지 못하고 불평등을 가속화시켰다고 생각하니 혼란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오바마가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을 예시로 들면서 교육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다. 그 만큼 그 역시 교육으로 불평등을 해소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대학이 불평등 해소의 열쇠가 아니었는데 말이다.

상류계층 자녀들이 입학했던 하버드 대학의 입학 전형을 SAT도입, 소수 인종, 여성, 유대인등 다양하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였으나 역시나 헬리콥터 부모, 개인과외, 입시 컨설팅 등의 과열로 IVY 리그의 대학이나 국립대학들은 여전히 부유층 자녀들이 주로 입학하는 것이 통계로 드러났고 가난한 자들의 수직 상승은 교육으로 일어나지 못했다. 부유층 자녀들 역시 어린 나이부터 입시지옥에 시달리며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낮은 자존감과 독립심이 약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업적주의/ 능력주의로 인해 계층간에 깊어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숙고해야할 문제점으로 교육 외에 ‘노동의 존엄성(dignity of work)’을 들고 있다.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대학 교육을 강조했고, 자격증이 또 하나의 무기이고 편견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대학 자격증이 없는 고졸 계층의 백인들은, 세계화의 물결과 AI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더욱 잃으며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정체성을 상실할 수 밖에 없었다. 경제적 박탈감을 떠나, 일을 함으로써 공공 선에 기여함으로써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의 존엄성을 인정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좌절감과 분노로 가득찼던 백인 노동 계층은 업적주의와 능력주의를 부르짖는 오만한 앨리트 계층인 Hilary Clinton에게 등을 돌리고 Trump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Michael Young은 2034년에 하류계층의 반란이 일어날걸 예상했는데, 2016년에 Brexit, Trump의 당선이 일어났으니 18년이나 일찍 반란이 도착했다고 작가는 지적하고 있었다.

구약시대의 선민사상처럼 승자들이 자신의 결과를 재능과 노력의 당연과 결과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큰 오만인지 책 전반에서 반복하고 있다. talent라는 재능은 신의 선물이나 행운으로 받은 것이기에 당연하게 받거나 원래 자신의 것이었다 생각하면 아니되고 effort라는 것도 혼자하는 노력이 없고 과정에서 좋은 부모, 공동체 등의 도움으로 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즉, 채무감을 가져야지 당연하게 받는 오만함은 오히려 불평등을 가속화시키고, 약자나 패배자들의 분노와 좌절을 아우르지 못하기에 사회는 양극화의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스스로 혼자 자수성가 한것이 아니기에 겸손함을 갖고, 성공의 새로운 윤리학을 정립하고 능력주의의 독재를 넘어 공공 선에 기여하는 삶을 살기를 촉구한다. 재능이라는 것도 절대적 평등으로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노력도 혼자하는 것이 아니기에, 뒤에 남겨져 뒤처진 이들을 향해 오만한 시선이나 비하의 눈초리가 아닌 그들을 향한 의무감과 채무감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한다.

옳은 것과 선한 것(between the right and the good)사이에서 또 다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노력하지 않은 자는 적게 갖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데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시시비비도 누구의 입장에서 가려지는냐에 따라 오만과 겸손의 다른 색깔로 드러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한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또 다시 배우며, 공공 선에 기여하는 삶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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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nger (Paperback) - 『이방인』영문판
알베르 카뮈 지음, Ward, Matthew 옮김 / Vintage / 198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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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란 제목만 들어도 차가운 느낌이 찾아든다. 제목이 내용과 너무나 잘 아귀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분량이 적고 쉬운 활자이지만 내용이 너무 무거워 책을 덮고도 여운이 크게 남아 다른 리뷰와 유투브 영상 여러개를 보았다. 화려한 수식어구 없이 간결하고 정갈하게 메세지를 던지니 사유는 내 몫으로 남았다. 어렵고 철학적인 책이다.

책에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시키는 습관때문인지 모르나 나 역시 올해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사회적 거리뿐 아니라 감정의 거리까지 두어야 할 지경으로 서로 간의 거리는 좁아질 수 밖에 없는 시기이다. 프랑스 식민지 하에 있던 Algeria에서 태어난 Camus가 2차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에 출간한 책이다. COVID-19을 겪는 올 해도 이리 우울한데 전쟁 중에 알제리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이방인의 심정으로 대전을 겪으며 Camus가 어떤 마음으로 펜을 잡았을지 약간 이해가 되려한다.

도발적인 제목만큼 책의 첫 문장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마저 ‘학습된 연상’의 일부로 나타난다는 것을 아는가? 감정 표현도 학습의 잔재라서, 사회화 과정에서 혹은 문화속에서 배운대로 표현되어야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있다. 즉 주인공 Monsieur Meursault는 엄마 Maman의 죽음에 임하는 자세 때문에 결국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하게 된다. 그는, 엄마의 죽음을 대하는 자세, 장례식에서 흘려야 하는 감정 표현, 장례를 치르고 나서 취해야 하는 행동 등에서 모두 상식을 벗어난다.

물론, 가족이 아니어도 우리는 타인의 죽음 앞에서 숙연해지고 저절로 눈물이 흐르거나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소원했던 가족이라해도 죽음 앞에서는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상식선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인공은 재판장에서 인간적인 면모라고는 조금도 없는 범죄자의 영혼을 가진자로서 검사에게 기소되어 결국 배심원들은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법정에서의 검사의 논리가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분노하게 했다. 왜 아랍인을 죽였느냐는 질문에 주인공은 “햇살이 너무 강해서”라고 대답을 한다. 이 대목에서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가 떠오른다. 그는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를 닮았다. 정직하게 필터없이 말을 하지만 그건 법정에서 기대했던 답은 아닌 것이다. 그가 아랍인을 죽였다는 것때문에 법정에 섰는데 중심 논쟁은 그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인으로 엄마의 장례식에 참석한 것으로 몰아가고, 법정에서 그는 그저 이방인으로 앉아 법정의 부조리를 침묵으로 마주한다.

아무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Nothing, nothing mattered.) 살인으로 기소되었으나 엄마의 장례식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형된다한들 어짜피 모두가 죽느는다는 것은 기정사실인데 언제 어떻게 죽느냐는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며 부드러운 무관심(gentle indifference)을 보이며 마치 형제애까지 느낀다고 했다.

그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만큼이나 세상을 향해서도 큰 욕심이나 애정이 없었다. Marie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녀가 원하면 결혼할 수 있었고, 이웃집 Raymond가 대필을 원하면 아니 써 줄 이유가 없었다. 세상을 향한 큰 애정, 미움, 거절, 반항도 없이 살았던 주인공은 죽음도 그렇게 맞이한다. 세상을 향한 부조리를 향해 그가 했던 최고의 저항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이방인으로 살았으나 그의 영혼은 자유로왔다.

주인공은 우리의 상식을 벗어나는 인물이다. 상식이라는 것은 누가 정한 것인가? 보편적인 기준이나 도덕이라는 규범에 들지 않으면 비상식이 되고 이것이 굴레로 작용하고 엄청난 부조리의 무기까지 된다. 나 또한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부조리와 직면하는가? 어쩌면 주인공처럼 차라리 세상의 이방인으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거나 역겨워하지 않으며 죽음마저 초연하게 맞이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이방인으로 살면서 주인공이 되고자 발버둥 치는가? 그러면서 안고 가야하는 감정의 묵직한 찌꺼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방인으로 살았으나 세상을 향해 gentle indifference를 품을 수 있었던 주인공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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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iracle Morning : The 6 Habits That Will Transform Your Life Before 8AM (Paperback) - '미라클 모닝' 원서
Hal Elrod / Hodder & Stoughton General Division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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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이란 단어는 함부로 사용하면 안될 것 같은 경외감이 단어 안에 함축된 것 같다. 그럼에도 자주 회자되면서 신비감이 퇴색되어 본연의 의미가 상쇄된 느낌도 없지 않다. 즉, 나는 기적이 내 주위에서 일어날거라 믿지도 않으며, 기적에 대한 기대치도 높지 않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책에 끌렸는가? ‘아침의 기적’, ‘기적적인 아침’이란 제목에 눈길이 간건 사실이다. 책 선책시 제목이 한 몫을 하는 것도 사실이고 독자들의 평점도 고려한다. 거기에 아침과 기적이란 단어의 힘이 따로 따로 작용을 했다. 기적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건 사실이지만 무료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아주 작은 기적을 그 누가 거부하겠는가? 나 역시 기적에 대한 염원이 있는걸 부인하지 못한다.

또한, 한해의 시작으로 1월이 의미가 크듯이, 하루의 시작으로서 맞이하는 아침도 짧은 시간이지만 의미가 매우 크다. 특히나 게으름과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나로서는 아침에 대한 단어 앞에 서면 자신감이 떨어진다. 어떻게 의미있게 시작할지에 대해 엿보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의 게으름을 극복하고자 오랜 기간 역으로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걸 생활패턴으로 삼고 있으나, 난 아침이 너무 너무 힘들고 지옥같다. 단 하루도 자발적으로 일어난 적이 없을 만큼 아침잠이 많아서 아침에 기분도 매우 가라앉아 있다. 물론 이 책에선 일찍 일어나야 기적이 일어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난 처음 이 책이 심드렁했다. 난 원래 일찍 일어 나는데 책이 말하듯 기적적으로 감정이 전환되지 않는다.

차이점이라면 내가 일찍 일어난 것은 출근 거리가 멀어서 러쉬아워를 피하기 위해 또는 많은 일을 하기 위함이었고, 이 책에선 개인의 발전(personal development)을 위해 아침 이른 시간을 사용하란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쉽게 하는 말이 시간이 없어서 아닌가? 아침에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다.

아침에 할 수 있는 것으로 SAVERS를 추천한다. Silence(명상, 기도, 요가등), Affirmations(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확언을 한다), Visualization(너 나아진 나의 미래를 시각화한다), Exercise(운동), Reading(독서 중 자기계발서를 추천하고 명언이나 철학 문구를 늘 찾아 읽는다), Scribing(일지쓰기를 통해 감사와 충족된 생활 습관을 형성한다)

위 SAVERS는 꼭 아침에 하지 않아도 삶을 풍요롭게 하고 유의미하게 하는 수단으로 매우 동감한다. 나 역시 운동, 독서를 매일 실천하려 노력하고 일지는 오랜 기간 작성해 왔으나 요즘엔 멈춰있는 상태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위를 실천해 볼까 유혹을 받을만큼 책 전반에 걸쳐 기적적 삶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고 커뮤너티 형성도 탄탄함을 과시하고 있으나 아직 시도도 못했다.

무섭게 쏟아지는 아침잠과의 유혹을 이겨내고 역동적으로 아침을 시작하느냐 아님 지금처럼 의무적으로 일어나 기계적으로 이른 출근을 하고 저녁에 운동과 독서, 일지 작성을 하느냐가 고민이다. 20살에 겪었던 교통사고의 역경을 극복한 작가는 진취적인 삶을 통해 어제보다 더 나은 나로 살아가야함을 의욕적이고 역동적으로 책 전반에 강조하고 있다.

4가지, 즉 신체적, 지적, 정서적, 영적: PIES(physical, intellectual, emotional, spiritual) 모두가 충족된 삶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개인의 발전을 위해 따로 시간을 반드시 할애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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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쓰고, 함께 살다 - 조정래, 등단 50주년 기념 독자와의 대화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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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의 대화 신청을 받는줄 알았더라면 나도 신청했을텐데 너무 너무 아쉽다. 언제 읽어도 실망치 않으며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하는 산같은 대작가이다.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예전에 읽었던 책이 그리움으로 지나가며 다시 책꽂이를 살피게 되었다. 작년 추석 연휴에 읽었던 ‘천년의 질문’은 진짜 온 국민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었고, 지금 생각해도 감흥이 매우 크다.

역시나 조정래 작가에게는 ‘태백산맥’이 가장 큰 인상을 남겼는지, 이 책에 대한 질문이 가장 많았다. 나 역시 태백산맥을 필두로 이 작가의 책을 거의 다 출시하는 순간 구매해서 읽고 감동하고 감동했다. 독자들의 질문을 통해 언급된 등장인물(염상진, 하대치, 소화, 정하섭, 송수익, 필녀, 유일민, 임채옥)들로 인해,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읽으며 너무나 행복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태백산맥의 감동은 지금 생각해도 즐겁다. 너무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읽다 잠이 들면 꿈에서 ‘김범우’ 꿈을 여러 번 꾸었고 나의 이상형으로 자리잡곤 했다. 휴가 3일을 잠도 줄이고 밥 먹는 것도 잊고 한강 10권을 읽으며 보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3부작 외에 출시 되었던 단편도 거의 읽었고 읽을 때 마다 항상 고개가 숙여졌다. 나외에 팬들이 많을 것을 짐작했는데 태백산맥을 21번 읽었다는 독자 앞에서 난 명함도 내밀지 못할 판이었다.

그 뿐이 아니라 태백산맥문학관에 독자들의 태백산맥 필사본이 40질 이상이 전시 되었다고 해서 너무나 놀랐다.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전시관에도 독자의 필사본은 없다고 하니 세계 최초가 아닌가 한다. 10권을 모두 필사한 독자가 40명이 넘고 앞으로도 계속 될 수 있다니 믿기 어려웠다. 태백산맥문학관을 이번 겨울에 꼭 다녀오고 싶은 충동이 들었고 나도 필사는 힘들지만, 한번 더 3부작에 도전하며 처음 읽을 때의 감동과 비교해 보고 싶었다. 작가가 가장 애정하는 인물은 태백산맥-하대치, 아리랑-공허, 한강-유일표라 하셔서 언제가 될지 모르나 더 관심갖고 읽어 보리라.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확실한 철학을 갖고 20년 후의 소설 계획까지 미리 염두에 두시고, 작가의 숙명을 안고 외길을 가며 삶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글을 너무나 존경한다. 풀꽃도 꽃이다와 천년의 질문이 기대보다 덜 읽힌 것에 대해 실망하셨지만 절망과 좌절이 글쓰기를 포기하게 하지는 못하며, 작가는 그 시대의 산소이며 미래의 나침반이자 예지자라는 사명을 안고 오늘도 또 쓰고 쓰실 것이다. 늘 소년같은 설레임을 안고 날마다 새로운 글감으로 지치지 않는 필력으로 무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작가를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는가?

작가는 ‘안광이 지배를 철하다’ 할 정도로, 즉, 눈빛이 종이를 뚫을 정도로 정독과 숙독을 하여 최대한 많은 서적을 섭렵한다. 나이 들지 않는 그의 필력이 어찌 나오는지 잘 설명하고 있는듯하다. 작가가 ‘이성적 분노와 논리적 증오’를 여러 번 반복한다. 그의 책을 읽을 때 감동과 눈물을 넘어 내가 느낀 심정을 잘 상징적으로 응축하지 않았나 한다.

분노와 증오 앞에 ‘이성적, 논리적’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그의 책을 너무나 좋아한다. 앞으로도 계속 읽겠지만 천년의 질문에서 독자들에게 요구하셨던 부분을 내가 얼마나 실천하며 살지를 생각하니 부끄러워진다. 21번 읽었다거나 필사까지하는 독자에 질세라 내 책꽂이를 둘러 보니 서운하게도 태백산맥 2권이 없다 ㅜ 한강은 모두 있고 아리랑은 12권이 훨씬 넘는다. 빌려주고 돌려받고, 또는 이사과정에서 분실되고 더해진 것 같다. 일단 태백산맥 2권을 구매하고 다시 읽기 하면서, 소재도 주제도 언제나 민중의 맥에 닿아 있는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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