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영웅전설 완전판 스페셜 박스세트 - 전15권 이타카
다나카 요시키 지음, 김완 옮김, 미치하라 카츠미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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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SF는 당분간 보지 못할 것 같다.

 

완독하는 데 약 한 달 걸렸다. 나의 출퇴근 시간과 짬나는 시간, 그리고 주말을 책임졌다. 읽는 내내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몰입하기만 했다.

 

주지하다시피 은영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SF의 하나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처음 접했으나, 끝까지 읽지는 못했다. 무려 20년만에 다시 만난 셈.

 

은영전은 엔터테인먼트로서 최고의 재미를 지닌 소설이다. 이렇게 몰입감을 주면서도 위트 넘치는 문장으로 꽉 찬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러나 엔터테인먼트는 은영전의 단면에 불과하다. SF의 외피를 입은 정치철학 소설이랄까. 그것도 쉽게 풀어쓴. 은영전은 현자가 다스리는 전제군주제와 중우정치에 가까운 민주주의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정체(政體) 논쟁의 좋은 비유거리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일본에서는 연극으로도 상연된다고 하는데, 아마도 레이저포가 날라다니는 게 아니라, 전제군주제와 민주주의에 우월성에 대한 논쟁이 핵심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작가는 궁극적으로는 양웬리의 입을 빌려 "최악의 민주주의가 최선의 전제주의보다 낫다"라고 말한다. 전제주의에서는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그러나 민주주의 하에서는 좋은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 혜택은 유권자가 누리고, 최악의 지도자를 선택하면 그 책임도 유권자에게 있음을 역설한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는 것이다.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다스리는 은하제국은 아마도 제국민들이 꿈에 그리워 마지 않는 곳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제국민들에게 골고루 결과가 돌아가는 전제군주제는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역사상 그런 예도 존재하지 않는다. 반면에 욥 트뤼니히트 같은 보신주의자가 최고지도자인 민주주의 국가는 획기적인 발전이 없을지도 모른다. 양 웬리와 같은 걸출한 영웅의 역할이 제한될 수 있다. 시행착오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조금씩 전진한다'는 것이 역사에서 증명한다. 그래서 민주주의이다.

 

은영전의 설정은 많은 면에서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저자가 마치 한국사를 심도있게 연구해서 모델로 삼은 듯 말이다. 아니면 그것이 역사의, 위정자들의 보편적인 행태일까. 정치권의 사주를 받은 듯한 우국기사단은 정권에 반하는 이들에게 린치를 가한다(서북청년단). 선거철만 되면 자유행성동맹은 요란하게 전쟁을 부르짖는다(한국의 보수정당). 위정자들은 전쟁영웅이 집권할 것을 두려워하여 사사건건 그의 행동에 태클을 건다(선조와 이순신). 몰살 위기의 위정자들은 다급히 항복하고 보신에만 급급해 한다(한말의 조정대신들).

 

책 상태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번역도, 인쇄도 꽤 괜찮은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일본에서 주로 쓰이고,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한자어를 너무 많이 사용해서 추후 개정판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도帝都, 안광眼光, 존명尊命 등등... 나는 이런 한자를 그대로 두는 것은 번역하기 귀찮아서 그냥 그렇게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타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간혹 계급을 잘못하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문장이 매끄러워 읽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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