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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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일이라든가, 다소 무례한 짓이라든가, 내가 한 말이 거짓이라고 했다든가, 조그마한 모욕을 당했다든가 하는 경우라면 난 위험에 길이 들기도 했고 또 여러모로 몸을 단련해서 솜씨도 있느니만큼, 안심하고 상대방을 죽일 자신을 가지겠죠. 아, 그런 정도의 일쯤이라면 나도 결투로 대결을 할 겁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두고 깊숙이 파고드는 영원 같은 고통을 준 사람이라면, 가능한 한 내가 받은 고통과 비슷한 방식으로 복수를 할 생각입니다..."         - 2권, 283쪽

 

 

2011년 경부터 꽤 많은 고전문학을 읽었지만 '복수'를 주제로 한 것은 이것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아킬레우스가 절친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에 전장에 복귀하여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모욕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한 '일리아스'도 그 핵심 주제는 '복수'가 아닌 '분노'였다.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에드몽 당테스의 14년 간의 한 맺힌 자의 복수라는 감정이 5권이라는 방대한 작품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복수는 어떻게 진행되었는가? 일반적으로, 삼국지나 수호전에서 말하는 동양식의 복수라 하면 쳐들어가서 칼을 휘둘러 몰살시키는 수법을 쓴다. 그러나 백작은 기다린다. 그들이 부를 쌓고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 행복의 정점에 이를 때까지 기다린다. 복수의 희망을 놓지 않는다. 무려 9년을 그렇게 기다렸다.

 

"하느님!" 하고 백작은 중얼거렸다. "당신의 복수에는 종종 너무 오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보다 더 완전해지기 위해서이리라고 믿습니다."   - 4권, 331쪽

 

그리고 그는 파리 사교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스스로를 동양에 기나긴 여행으로 다녀온, 수수께끼 같은 인물로 설정했다. 돈을 물쓰듯 써서 4인방의 이목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의 신뢰를 얻어냈다. 20여년을 복수귀로 살았던 그였으나, 항상 담대하고 태연하게 행동한다. 그리고 마침내 복수를 시작한다. 스스로 신의 대리인을 자처하면서, 미미한 존재를 서서히 쥐구멍으로 몰아가듯, 그렇게 그의 복수는 진행된다.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들은 공개적으로 명예가 훼손되고 가족이 파탄나고 맞아죽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미쳤다. 그러나 하나하나 복수를 실현해 가면서, 당테스는 과연 속이 편안해 졌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한명은, 죽음 직전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자 용서를 해주었던 것일게다.

 

"나는 당신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오. 나는 당신이 행운을 잡기 위해 밟고 올라섰던 사람 중에 하나요. 나는 당신 때문에 아버님을 굶주려 돌아가시게 했고, 또 당신을 굶겨 죽이려다가 바로 지금 당신을 용서해 주는 사람이오. 그 까닭은 나 자신 또한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요."  - 5권, 424쪽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만큼 등장인물들의 대사, 행동 하나하나가 연극을 염두에 둔 느낌이다. 역자 후기에야 알게됐지만, 뒤마는 희곡작가로 출발해서 큰 성공을 거둔 후 소설에 입문했다고 하니 그 역량이 제대로 발휘된 것이다.

 

반면에 (역시 연극적인 요소 때문인지) 치열한 심리묘사는 아쉽다. 완전히 다른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레 미제라블'에서, 마들렌 씨는 자신 대신에 장발장으로 잡혀가는 이에 대하여 수십페이지에 걸쳐 고뇌한다. 그가 법정으로 가기까지 많은 사건이 있으며 그때마다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꼬프는 자신의 범죄에 대하여 주변인들의 반응에 끊임없이 내적으로 반응한다. 그런데 당테스에게는 그런 고민의 여지가 전혀 없다. 그는 말 그대로 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신의 행위는 정의의 실현이라는 신의 섭리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산'이라는 뜻의 '몬테크리스토'란 이름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러한 치열한 고민이 없었으리라. 이러한 캐릭터를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이, 역설적으로 단 한가지 그가 고민했던 지점에서 알 수 있다. 알베르와의 결투에서 아들을 죽이지 말아달라는 메르세데스의 간청 때이다. 백작은 그녀의 요청을 수락하면서 진정 복수귀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한다.


"바보 같은 짓을 했구나" 하고 백작은 생각했다. "복수를 결심한 날, 왜 내가 심장을 뽑아버리지 못했단 말인가!"  - 4권, 440쪽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참 재미있고 읽기 쉽다. 그래서인지, 프랑스 소설 특유의 철학적인 고뇌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방대하게 이끈 것은 역시 작가의 역량이다. 천년이 넘도록 재생산될 문화상품으로 남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꺼내 본 것은 10여년 전 도서관에서였다. 어릴적 명작동화로 재미있게 읽은 것이 기억났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 펼쳤을 때 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오타작렬. 알고보니 지금도 오타로 악명높은 출판사였던 것이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프랑스 문학에 흠뻑 취해서 사서 읽게 되었는데, 24쇄쯤 되니 그런 오타는 많이 잡힌 것 같다. 아니, 오타에 신경쓸 겨를 없이 이야기 자체의 흡입력이 워낙 강해 워낙 바쁜 중에도 5권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알렉상드르 뒤마 전공자가 번역한 다른 번역본이 나왔으면 좋겠다. 몇몇 문장에서는 일본냄새가 확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표기를, 몬테크리스토 백작과는 전혀 관계 없는 인물 그림을 붙여 놓았다. 비슷한 시기 사교계의 인물 그림 같은데, 적절한 선택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레 미제라블' 이후 간만게 기나긴 소설을 즐겁게 완독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 없다. '삼총사'와 '검은 튤립'도 곧 즐거운 마음으로 만났으면 좋겠다.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너희들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수단밖엔 못 가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권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헌신으로 얻을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걸 가지고 있단 말이다."
"헌신이라고요?" 빌포르가 웃으며 물었다.
"그렇다, 헌신이다. 희망으로 불타는 야심을 점잖은 말로 그렇게 부르는 거다." - 1권,197쪽

그는 기도를 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신에게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에게 하는 기도였다. 신이란 가장 막바지에 구원을 청하게 되는 법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주께 기원을 구해야 할 불행한 사람은 언제나 다른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주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법이다. - 1권,239쪽

"... 도대체 백작은 어느 나라 사람이지? 어느 나라 말을 하고 있느냔 말이야? 생활은 또 어떻게 하고 있지? 그 막대한 재산은 다 어디서 나오느냔 말일세. 그 사람을 지금과 같은 그 음산하고 사람을 싫어하는 인간으로 만들어 놓은, 아무도 모르는 이상한 그 사람의 반평생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 2권, 371쪽

"한 번 목숨을 내던져 본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됩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기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단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심을 한 사람은 그때부터 당장 힘이 열 배가 되고, 자기 세계가 확 넓어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법입니다." - 3권, 45쪽

"눈만 감으면 어렸을 때 본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해 와요. 우리에겐 두 가지 눈이 있죠, 하나는 육체의 눈, 또 하나는 마음의 눈. 육체의 눈은 가끔 잊어버리는 수가 있지만 마음의 눈은 항상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지요." - 4권, 194쪽

정신적인 상처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결코 완전히 아물지 않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것은 늘 고통이 사라지지 않으며, 누군가의 손이 닿는 날엔 당장에 피가 새어나오도록 가슴속에서 항상 생생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셈이다. - 4권, 378쪽

오랜 세월 동안 고통 받은 기쁨이란, 햇빛에 말라버린 땅 위에 내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다. 그러한 가슴과 대지는 그들에게 내리는 비를 빨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나타내지 않는 법이다. 며칠째 백작은 오래전부터 믿어지지 않던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두 사람의 메르세데스가 있다는 것과 자기가 아직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5권, 25쪽

"... 이 세상에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상태와 다른 상태와의 비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불행을 경험한 자만이 가장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막시밀리앙 씨,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한번 죽으려고 해보든 것도 필요합니다." - 5권, 449쪽

"백작님께서 그러시지 않았어요? 인간의 지혜는 이 두 마디 속에 있다고요. `기다려라, 그리고 희망을 가져라.`" - 5권, 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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