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론, 운명을 넘어서는 역량의 정치학 리라이팅 클래식 14
정정훈 지음 / 그린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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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는 재미있다.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에 이어 세번째로 읽는 정정훈의 '군주론' 해설서는 앞의 두 개와 사뭇 다르다. 강대진의 책들이 철저하게 작품의 해설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정정훈은 마키아벨리의 사상 자체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군주론' 뿐 아니라 그의 다른 저작인 '로마사논고'를 함께 언급하면서 그의 총체적 정치철학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권모술수'의 제창자로 알려진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그의 이미지와 다른 모습을 몇 가지 언급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마키아벨리는 군주는 철저히 '인민'의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 강건한 요새와 인민의 강한 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당연히 인민의 지지이다. 정치로부터 도덕을 분리시켰다고 평가받는 그의 이러한 주장이 군자의 정치를 설파한 공자의 생각(民無信不立)과 무척이나 닿아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2. 마키아벨리가 취직을 위해 쓴 '군주론'이 역사에 길이 남는 걸작이 되었지만, 5년 후 완성된 그의 다른 저작인 '로마사논고'에서 그는 공화주의자로 변신한다. 변절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정훈은 역사의 발전, 또는 정치체제의 안정이라는 점에서 이를 바라본다. 마키아벨리가 이상으로 그리는 정체는 군주, 귀족, 인민이 힘의 균형을 이룬 '공화주의'이다. 그런데 그가 '군주론'을 써야만 했던 (일반적으로 평가되는) 역사적 배경을 보자. 당대의 이탈리아는 여러 개의 공국으로 분리되어 있어, 프랑스 등 외세의 침입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지역'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강력한 군주가 필요했고 그러한 군주가 갖춰야 할 덕목을 정리한 것이 '군주론'이다. 반면, '로마사논고'는 건국 이후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모습을 묘사했다는 것이 정정훈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작품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연속성 상 있다는 것이다. 

 

3.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 마키아벨리, 아니 '군주론'의 형상화하고 있는 군주의 정치적 기술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군주는 인민의 강한 지지가 필요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럼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는 도대체 누구에게 사용하라는 말인가? 힌트는 '로마사논고'에 있다.

 

'귀족이라는 호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나는 토지 소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인해 일하지 않고도 사치스럽게 사는 자를 귀족이라고 부르겠다'(로마사논고, 1권 55장)

 

즉, 국가가 쇠망해 가는 원인은 귀족 때문이며,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는 인민을 억압하고 불로소득을 취하는 이들 귀족에게 사용하여 인민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정정훈의 주장이다. 여기에 이르면, 마키아벨리가 생각하는 군주가 '예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군주'가 마키아벨리가 흠모했던 청년 정치가 '체사레 보르자'를 이론화한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출처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박노자 교수가 예수를 '최초의 사회주의자'라고 표현했던 글을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운동권 시절, 마키아벨리가 '기득권의 옹호자'라는 편견을 가졌던 정정훈은 이 책에서 '인민의 수호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자신이 모델로 삼았던 체사레 보르자 만큼이나, 마키아벨리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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