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미날 1
에밀 졸라 지음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1993년 11월
평점 :
품절


노동운동의 혁명적 기운을 보여준 작품.

 

에티엔 랑티에는 기계공으로 몽수 탄광에 찾아온다. 비참한 근무환경 속에서 탄광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던 그는 러시아 출신 공산주의자 수바린을 알게 되고, 국제 노동자연맹(인터내셔널)의 사상에 경도되어 탄광근로자들을 독려(또는 선동)하여 파업을 주도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희생하는데, 심지어 정부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사태까지 발생한다. 시위대는 결국 탄광으로 돌아가지만, 이들의 모습은 많은 노동자들에게는 희망을, 고용주들에게는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들 노동자들이 싹을 틔움으로써 그들의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한다(싹트는 달=제르미날).

 

작품의 기본적인 구도는 졸라의 다른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인간관계, 해피엔딩이라고는 모르는 전개방식이 그것이다. 여기에 소름끼칠 정도로 치밀한 탄광에 대한 묘사는 '역시 졸라'라는 감탄을 자아내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졸라의 다른 작품들('목로주점'.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비해 이 작품이 다른 점은, 바로 '희망'을 노래한다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작가의 시각이다. '목로주점'의 주인공 제르베즈(에티엔의 어머니)는 비참하게 굶어죽는다.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의 드니즈는 백화점 사장의 사랑을 얻어 결혼하지만, 전통상인들의 몰락을 막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르미날'에서 그는 무수한 노동자들이 피를 뿌렸으므로, 그들의 분노를 충분히 보여주었으므로 정부도, 부르주아들도 감히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제르미날'이 에밀 졸라 제일의 걸작로 꼽히는 게 아닌가 한다.

 

세계문학 열풍인 요즘, 에밀 졸라의 이 위대한 작품이 복간(또는 재번역) 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빨갱이 소설 내봤자 좋을 게 뭐 있어라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오르한 파묵도 좋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좋지만 에밀 졸라의 앞에 올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밑줄긋기

 

"임금 인상이 가능할 것 같아? 임금은 냉혹한 법에 의해, 노동자들이 마른 빵을 먹고 어린애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최저 금액으로 빠듯하게 고정되어 있어... 임금이 너무 낮게 떨어지면 노동자들이 굶어 죽을 테고, 그러면 새로 써야 할 사람의 수요가 늘어 임금이 올라가게 돼. 임금이 너무 높이 올라가면, 일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 임금은 내려가게 돼... 이것이 못 먹는 자들의 균형이고, 굶주린 도형장에 내려진 영원한 저주야."

- 1권 169쪽

 

"... 불행하게도 우리가 바라는 것은 회사가 우리에게 신경을 그만 써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세주의 역할을 해주는 대신에 우리들에게 우리가 벌어들인 것, 우리의 몫을 되돌려주는 정당함을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 1권, 257쪽

 

모두들 조용히 용기를 가지고 자기들이 내건 슬로건에 복종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절대적인 믿음이, 종교적이기까지 한 신념이, 신자들이 갖는 것과 같은 맹목적인 헌신이 있었다. 자기들에게 약속된 정의로운 새 시대를 위해, 그리고 보편적 행복의 쟁취를 위해 서 그들은 그 어떤 고통이라도 참아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배고픔은 그들의 머리를 고양시켰다. 이 가난의 환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있어 닫혀져 있기만 하던 지평선이 그토록 드넓은 저편을 향해 열렸던 적이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들의 두 눈이 쇠약함으로 인해 탁해지고 있을 때, 그들은 오히려 그들이 꿈꾸어오던, 그렇지만 이제는 훨씬 가까워져서 마치 실제의 것처럼 보이는, 모든 민중이 형재애로 결합되어 있고 노동과 식사가 함께 공유되는 황금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이상의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 1권, 262쪽

 

에티엔은 회사측이 얻어내려고 하는 이번 폭동의 대가를 눈치챘다. 하지만 싸움을 하면 할수록 한층 더 강해지기만 하는 이 거대한 자본의 꺾을 수 없는 힘, 자기들의 발치에 떨어진 소자본의 시체를 집어 삼킴으로써 더욱 더 살찌는 이 막대한 자본의 힘 앞에서 그는 기가 꺾이고 말았다.

- 2권, 114쪽

 

만약에 군대가 돌연히 민중의 편으로 돌아선다면, 혁명을 쟁취하는 일은 얼마나 손쉬울 것인가! 병영에 있는 노동자와 농민들은 다만 자신들의 출신 성분을 기억하기만 하면 될 것이다. 이것은 최후의 위협이 될 수 있는 동시에 가장 큰 공포를 불러 일으키리라!

- 2권, 114쪽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이사들은 될 수 있으면 사건을 작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들은 고삐가 풀릴 경우 낡은 세계의 노후한 틀 전체를 완전히 뒤엎어버릴지도 모를 군중의 걷잡을 수 없는 야만성을 정당화시켜주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위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다른 무엇보다 내일에 대한 공포가 가장 두려웠다.

- 2권, 186쪽

 

라스뇌르가 목소리를 높였다. "폭력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을 단번에 뒤바꿀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단번에 모든 것을 뒤바꾸겠노라고 약속하는 자들은 모두 다 익살꾼이거나 망나니들일 뿐입니다!"

- 2권, 197쪽

 

이제까지 노동은 언제나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여러 세기에 걸쳐 누적된 이 체념 속에는, 그리고 또다시 그들의 허리를 구부리게 만드는 이 규율의 유산 속에서 이미 또 다른 확신이 굳건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불합리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수만은 없으리라는, 그리고 비록 신이 없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수를 내려줄 수 또다른 신이 태어나리라는 가슴 뭉클한 확신이었다.

- 2권, 292쪽

 

태양이 붉게 타오른 젊음의 아침은 즐거운 웅성거림으로 들판을 부풀리고 있었다. 사람들이 싹트고 있었다. 서서히 밭고랑을 가르고 있는 복수의 검은 군대는 다가올 세기의 추수를 위해 자라나고 있었다. 돋아나는 이 사람들의 싹은 머지않아 대지를 터뜨릴 것이었다.

 2권,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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