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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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말일세, 친구, 여인들의 욕망에 불을 지펴야 하는 거라고."

- 1권, 71쪽

 

‘목로주점’에서 주인공 제르베즈를 내내 괴롭히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잔인한 작가 에밀졸라. 사람을 매우 우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험담과 모함이 모든 등장인물의 캐릭터이고,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고자 한 주인공은 끝내 굶어죽고 만다. 다음으로 선택한, ‘여인들의 행복백화점’ 역시 19세기 백화점의 화려함 뒤에 시들어가는 한 여성의 불행한 삶이 주제라는 생각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드니즈는 부모를 잃고 두 동생과 함께 파리로 파리의 큰아버지를 찾아온다. 큰아버지는 전통 엘뵈프의 나사 상인인데, 바로 옆에 들어선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으로 인해 생계를 위협을 받고 있다. 백화점 사장인 옥타브 무레는 대단한 야망과 사업수완을 지닌 사람으로서 획기적인 판매정책으로 고객을 끌어모아 큰 매출을 올리는 한편, 과감한 투자로 인근 상가의 땅을 모두 사들여 백화점을 확장해 나아간다. 드니즈는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에 취직하한 후 줄곧 경쟁관계 동료들의 험담과 비방에 시달렸지만, 온화하고 올곧은 성품으로 무레의 사랑을 받아 수석구매상까지 승진한다. 그는 무레의 정책결정에도 영향을 주어 직원 복지에 노력하는 등 현대적 노사관계 정립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한 전통상가는 모두 몰락하고, 결국 백화점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드니즈는 무레의 구혼을 받아들인다. 절반의 해피엔딩이다.

 

이 작품은 1. 된장녀, 2. 경쟁, 3. 전통과 현대의 갈등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여인들의 행복백화점'은 된장녀들의 이야기다. 사장 무레는 주 고객인 여성들의 욕망을 철저히 연구하여 현대적 마케팅 방식의 교과서적인 면모를 보여주면서 매출 극대화에 몰두한다. 여러 유형의 귀부인들이 등장해 다양한 구매유형을 보여주지만, 결국 무레의 손바닥 위에 놀아나는 인간군상들일 뿐이다. 

 

둘째, 경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목로주점'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주인공을 둘러싸고 모함과 뒷담화가 작품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데, '목로주점'과 조금 다른 점은, 여기서의 뒷담화가 자신의 승진이 목표인 것이다. 심지어 가장 친하게 지내던 동료를 밟고 올라가는 이도 있다. 수석 구매상이 된 드니즈에게, 그를 가장 싫어하던 부르동클조차 복종하게 되지만, 이는 그녀의 성실함에 감명받았기보다는 '대세'를 알고 자신의 커리어를 위함이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자아낸다. 역시 졸라.

 

...매장의 정식판매원이 되고자 하는 수습 직원부터 경영진의 위치에까지 올라가고 싶어하는 수석 판매원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의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그들은 한 단계 올라가기 위해 바로 위의 동료를 밀어내고, 누구라도 장애가 된다면 동료를 먹어치우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 1권, 273쪽

 

셋째,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다. 이 시대의 백화점은 프리미엄 제품 판매소라기 보다는, 지금의 대형마트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품질보다는 가격으로 승부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한국의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결국은 실패하리라는 것" 시장상인들의 현대화를 위한 자발적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한, 그들을 지켜주려는 정부정책은 모두 허사라는 점을 꼭 강조하고 싶다.

 

이 작품에서 눈에 띄는 건, 드니즈에 관한 것이다. 크게 아름답지도 않은 드니즈가 사장의 마음을 사로잡아 승승장구한 이유는, 사실에 대한 당당함 때문이었다. 어떠한 모함에도 그녀는 굽히지 않았다. 떳떳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발한다’로 비판적 지식인의 모범이 된 졸라의 기본적 사고는 여기서부터 싹트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다. 아름다운 표지와 더불어, 매끄러운 번역에 오탈자도 거의 없어 완성도가 높은, 매우 만족스러운 책이다. 번역자는 문학동네 간 '목로주점'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는데, 나이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추측된다. ‘지르다’, '대세', ‘대박’ 등 네이버 국어사전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터넷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현재 세계문학 출판 원칙은 따르고 있지만 문학 번역자가 과연 쓸 만한 것들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에밀졸라의 작품을 이토록 재미있게 우리에게 처음 소개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감사드린다. 그가 번역한 졸라의 작품들을 더 많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참에 루공-마카르 총서 전권 번역에 도전하심이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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