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노트르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3
빅토르 위고 지음, 정기수 옮김 / 민음사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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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의 꼽추'라는 미국식 제목이 아닌, 최초 프랑스어 원전 완역.

 

작가는 서문에서, 이 작품의 집필 목적을 허물어져 가는 건축양식의 보전 및 후세에 알리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건축술의 장래가 어떻든, 우리의 젊은 건축가들이 훗날 그들의 예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든 간에, 새로운 건축물이 세워질 때까지는 옛 건축물을 보존하자. 가능하다면, 국민에게 국민적 건축물에 대한 사랑을 불어넣어주자. 저자는 언명하거니와, 이것은 바로 이 책의 주된 목적 중 하나이며, 본인의 일생의 주된 목적 중 하나이다."  - 1권 13쪽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책에서 가장 지루했던 부분이 바로 노트르담 성당과 성당에서 내려다 본 파리 시내 정경 묘사였다. 두 번째 읽을 때는 집중할 수 있을지 모르거니와, 적어도 나에게는 그의 목적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했다. 건축에 관한 작가의 다음 평은 그나마 설득력을 가졌다.

 

"두 기술(인쇄술과 건축술 ) 중 어느 것이 3세기 이래 실제로 인간의 사상을 구현하고 있는가? 어느 것이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가? 어느 것이, 비단 인간 사상의 문학적, 학리적 편집(偏執) 뿐만 아니라 그것의 광대하고 심오하고 보편적인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는가? 어느 것이 부단히, 중단 없고 간격 없이, 수천의 발을 가진 괴물인 전진하는 인류에 의해 쌓이고 있는가? 건축술인가, 아니면 인쇄술인가? 인쇄술이다."  - 1권  205

 

하드웨어인가, 소프트웨어인가. 난개발로 땅이 황폐화되어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경고처럼 들린다.

 

 

배경은 1482년 파리이다. 루이 11세 통치기, 5~6명의 등장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숙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금욕과 학문의 화신인 클로드 프롤로는 자유분방한 집시여인 라 에스메랄다를 사랑한다. 라 에스메랄다는 이제 막 안정을 찾으려는 난봉꾼 푀부스를 사랑한다. 카지모도는 자신의 추함을 일찍이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라 에스메랄다를 사랑한다. 숙명(Ananke)이기에 이런 비합리적인 관계설정이 가능했다는 게, 어쩔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작가의 결론인 듯하다. 본인이 어쩔 수 없다는 걸 라 에스메랄다도 잘 알고 있었는 듯 하다. 

 

 

"햇빛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에요. 그런데 왜 제게는 어둠 밖에 주지 않나요?"

 2권, 165쪽

 

작품을 읽은 사람들이 가장 인상깊다고 느끼는 문장이 아닐런지. 아울러, 이 말은 위고의 작품 전체를 꿰뚫는다. 장발장의, 팡띤느의, 그웬플레인의, 어느 사형수의, 브르타뉴의 세 아이들의 엄마의, 그리고 일찍이 딸을 잃은 위고의 절규이다.   

 

"... 나는 어떠냐 하면, 내 안에 지하 감방을 지니고 있어. 내 안은 겨울이고, 얼음이고, 절망이야. 나는 내 마음 속에 어둠을 갖고 있어." -  2권, 176쪽

 

프롤로 부주교 역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매달리는 듯.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읽은 위고의 작품 중 프롤로만큼 이중적이고 복잡하면서 어두운 인물은 없었다. 역자는 '부주교 클로드 프롤로가 많은 점에서 위고의 분신'이라고 하는데, 많은 여성들과 염문을 뿌린 위고의 삶을 봤을 때 조금 억지스러워 보이기는 해도, 위고가 딸을 잃고 오랫동안 고통스러워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닐 듯하다.

 

"우리들을 쓰러뜨리는 건 흔히 우리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지!"  -  2권 419쪽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말일 것이다. 조직에서 친구란 극히 드물 뿐, 모두 경쟁관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랭구아르의 이 말은 프롤로 부주교와 카지모도의 숙명의 종말을 암시하는 게 아닐런지.

 

 

'민음사 세계문학 최악의 번역'이라는 악명에도 불구, 거슬리는 것 몇 개를 제외하면 꽤 재미있었다. 인물 간 오가는 대화를 읽다보면 연극의 장면장면이 연상된다. 마치 작가가 먼 훗날 이 작품이 위대한 뮤지컬로 재탄생하리라 예상기라도 한 것처럼.

 

'거슬리는 것'이라면, 맨 앞부분의 희곡 장면, '주피터', '율리시스' 와 같은 영어식 명칭의 사용. 이들이 프랑스어라면 할 말은 없겠으나, 적어도 다른 번역본에서 '유피테르', '오딧세우스'라고 표기하고 있는 걸 보면 그건 아닌 듯하다. 또 한가지, '임금', '아뢰오', '...올시다' 같은 조선시대에나 쓰였을 법한 어투의 사용인데, 원로학자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싶어도 신경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젊은 후배에게 문장을 전체적으로 손 보도록 한 개역판을 내는 거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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