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년 - 상 열린책들 세계문학 187
빅토르 위고 지음, 이형식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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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첫 독서.

'레미제라블'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고 싶어 선택한, 위고 마지막 장편이다.

 

그의 영국 체류시기의 작품 중 '웃는 남자'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있다.

 

" 이 책의 진정한 제목은 <귀족정치> 정도일 것이다. 뒤이어 나올 다른 책에는 <군주정치>라는 제목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두 책을 완성하는 일이 필자에게 허락된다면, 그 두 책을 필두로 다른 책 하나가 또 뒤따르리니, 그 책의 제목은 <1793년>이 될 것이다."  (「웃는 남자」, 이형식 역, 열린책들)

 

즉, 영국망명시기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것인데, '레미제라블'에도 93년의 사건들이 빈번히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위고 스스로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그리고 프랑스 역사의 상징적인 해이며, 그것을 글로써 구상하여 후세에 생생히 전달하는 것을 당대 작가의 의무로 여겼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하여 나온 '93년'이라는 작품은, 위고라는 대작가에게 '백조의 노래'로서 손색 없는 걸작이다.

 

1793년이 루이16세가 처형된 해이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 작품은 프랑스 제1공화국 시기의 '방데반란(또는 방데내전)'을 다루고 있다. 방데반란이야말로 공화파와 왕당파의 대립을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장치이기에 이를 선택한 듯하다.

 

위고는 왕당파 집안에서 태어나 공화파로 전향하여, 나폴레옹3세의 박해를 피해 영국에서 19년간 망명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작가의 시각은 특별히 왕당파와 공화파 누구도 옹호하거나 비하하지 않는다. 선악을 뚜렷이 구분하지 않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관이랄까. 왕당파는 공화파를 무너뜨리기 위해 영국함대를 부르는 우를 범하고,(어느 나라의 근대사를 떠올린다) 공화파, 즉 혁명의회는 '혁명'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혁명의 적들에 대한 불관용 원칙을 고수한다.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닌 신념의 문제이다. 그러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세 사람, 복고적 왕당파 랑뜨낙 후작과 급진혁명파 씨무르댕,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뛰어난 군인이며 동시에 인간적인 고뇌를 거듭하는 고뱅의 갈등이 작품의 주제.

 

'레미제라블'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위고의 갈등구조를 만드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잔인한 원칙주의자라고만 여겼던 랑뜨낙 후작은 화재에서 어린 아이들을 구하다 혁명파들에게 잡히고, 급진형멱파 씨무르댕은 그에게 사형을 언도한다. 고뱅은 이 사이에서 갈등한다. 나라에 외세를 불러들인 혁명의 적에게 불관용의 원칙을 적용할 것인가, 아니면 어린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 인간을 살려줌으로써 혁명의 정신을 이어갈 것인가. 이 부분에서, 나는 자신이라 오해받은 이를 구명할 것인가 고뇌하는 쟝 발쟝의 모습이 떠올랐다. '93년'은 바로 이 장면을 위해 탄생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 부분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좀 뜬금없고 실망스러웠다('두 도시 이야기'는 1859년 출간, '93년'은 1862년 준비 시작, 위고가 디킨스를 표절했다는 것이 아니라, 영국과 프랑스 두 대작가의 비슷한 시대를 다룬 작품의 마지막이 비슷하다는 것이 다소 의외라는 의미). 그러나 일관되게 정의에 대해 고뇌하는 고뱅의 성품을 생각하면 시드니 카턴의 같은 행위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혁명의 시기, 이념의 갈등을 다룬 '93년'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예컨대 남북관계를 선악의 대립구도로 해서는 풀어가기 어렵다. 지금이야 총부리를 겨눈 상황이기 때문에 서로를 악마로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지며, 양쪽 정치인들도 여기에 기대어 생존하고 있다(랑뜨낙과 씨무르댕). 왕정복고를 주장하는 랑뜨낙 후작 같은 잔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최소한 인간의 면모를 잃지 않은 인물이 북쪽에도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이름 하에 불관용의 원칙으로 단죄할 것인가.

 

책 상태에 대하여 말하자면, 열린책들의 출간물들은 대부분 내게 신뢰를 준다. 글자가 빡빡해 읽기 불편하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책 분량을 줄여 가격을 낮추려는 출판사의 고민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펭귄클래식코리아가 간행한 '레미제라블'을 읽고 이형식 교수의 번역이 무척 매력적으로 느껴져, 이후 위고의 다른 작품도 그의 번역본을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독자리뷰를 둘러보면 그의 위고 해석이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작가의 사상을 잘못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나 역시 '레미제라블'과 '93년'에서 본 그의 역자후기는 매우 실망스러웠으며, 단순히 참고만 하고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평가에서 별 하나 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린책들의 '93년'은 매우 뛰어난 작품, 역사소설 마니아라면 꼭 한 번 읽어야만 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2001년 타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한 적은 있지만, 분량으로 보아 편역본이었던 것 같다. 이 걸작을  완역으로 우리에게 안겨 준 번역자 및 출판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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