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집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찰스 디킨스 지음, 김현숙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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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우연한 여행자'에는 대충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대형서점에서 찰스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사서 근처 카페에 앉아 읽던 날,

바로 옆에서 우연히 같은 책을 읽는 여인이 있었는데

그다지 널리 읽히지 않는 책이라 서로 호감이 생겨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널리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점이다.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떄까지 아직 우리나라에는 디킨스의 '황폐한 집'의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라는,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희랍작가의 책의 전집이 나오는 판에

(그것도 희랍어 직역이 아닌 영문판 중역을 말이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라는 찰스디킨스의 말년의 걸작조차 번역되어 나오지 않는 것이

우리 번역-출판계의 불행한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2009년 첫 발간된 이 편역본은 큰 의미가 있다.

원서로는 1천페이지, 아이북스로는 3천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인데,

이를 접근하기 쉽게 전체분량의 12%의 발췌번역하였다.

요약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을 통째로 가져오고,

상세한 주석으로 독자의 이해를 최대화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의 디킨스의 맛깔나는 문장들을 부분적으로나마 즐길 수 있었고

원서에 도전할 때 많은 도움이 될 듯 싶다.

 

'가난하고 박해받는 자들의 동지'라는 그의 묘비문처럼

불행한 개인사를 가진 성실한 소녀 에스더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과

느려터진 진행으로 소송인들의 재산을 탕진하는 영국의 소송제도에 대한 묘사가

두 축이 되어 그려지고 있다.

 

'황폐한 집'은 에스더가 자신의 성실함을 인정받아 나가는 공간이자

'잔다이스와 잔다이스' 유산 상속 소송의 당사자 중 하나인 잔다이스의 저택이다.

 

길고 긴 소송으로 황폐할 대로 황폐해 진 집 '황폐한 집'의 주인,

그러나 그의 마음만은 황폐하지 않고 있다.

친절할 대로 친절한, '오블리스 노블리주'의 전형이고,

그의 호의 아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인 에스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끝내 그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게 된다.

 

반면 그의 친구들인 소송당사자들은 모든 것을 잃게 되면서

당대 소송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에스더의 1인칭 시점과, 작가의 3인칭 시점이 번갈아 사용되는데

특히 에스더의 1인칭 시점은 '현재형'으로 서술하고 있어 현장감을 더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번역에 상당히 애를 먹을 듯 하다.)

 

또 당시 남성작가로서는 드물게도 여성의 능동적 역할을 그려내면서

'현모양처' 또는 '열녀'에 해당하는 여성상이 통용되는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편역본이 못내 아쉬우면 BBC의 2005년작 동명의 TV쇼를 함께 보길 권한다.

원작에 꽤 충실한 15부작 드라마로서

완역본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 둘은 작품을 전체를 조명하는 데 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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