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문장들 - 한 줄의 문장에서 러시아를 읽다
벨랴코프 일리야 지음 / 틈새책방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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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또옙스끼의 중후기작들을 읽고 있고, 이제 최후의 대작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향해 가는 중이다. 이전에 두 번을 읽었지만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몇몇 에피소드의 편린과 조시마 장로가 주었던 감동만이 남아 있을 뿐, 쉼없는 장광설이 대체 무슨 의미였는지 지금도 모른다. 이번에 그 대작을 읽으려고 하면서 다른 준비를 먼저 하기로 했다. 19세기 역사와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벨랴코프일리야(귀화한 지금은 이게 본명이라고 한다)의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사실 '거장들의 무대였던 모스크바나 뻬쩨르부르그도 아니고 블라디보스토그에서 온 사람이 러시아 문학을 잘 소개할 수 있을까' 의문이었는데, 무지한 자의 오만이었다. 소련 공산주의가 남긴 교육시스템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문학을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고, 그것이 그들의 삶에 침투하여 일상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소개된 문장들은 그냥 저자가 좋아해서 밑줄 그은 것들이 아니다. 러시아인들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쉬면서 쓰이는 것들라는 것이다. 예컨대, 『백치』의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유명한 문장은 (작가의 의도와 다르기는 하지만) 외적인 아름다움을 소개할 때 사용된다. 『예브게니 오게닌』의 '사랑 앞에서는 나이가 고개를 숙인다'는 문장은 적절하지 않은 나이의 결혼을 조롱할 때, 그에 대한 대꾸로 인용된다. 역시 푸시킨의 『청동 기마상』의 문장인 '유럽으로 창문을 뚫다'는 서방과의 관계에서 자주 인용된다고 한다. 도스또옙스끼를 읽을 때, 그 많은 러시아 문학들의 구절을 인물들이 인용한 것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었다. 러시아 독자들은 그 부분을 능히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은 마냥 부럽기만 하다. 고등학교 때 배우거나 그 후에 읽었던 한국문학 중에서 관용어처럼 굳어버린 게 몇개나 있는지 돌이켜 봤다. 아리랑도, 태백산맥도 없었다. '호부호형' 정도만 생각 나고, 대부분은 삼국지에서 온 것 뿐이었다.


한편으로, 이 책은 각 문장에 담긴 러시아라는 국가의 특징, 러시아인, 정교회 등 러시아의 역사와 문화에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읽다보니 도스또엡스끼의 작품들에 나타난 문장이나 인물들의 행동의 의미가 보다 선명하게 다가왔다.  『백치』에서 무대가 후반부에 갑자기 파블롭스크로 변경된 것의 의미, 『죄와 벌』에서 '변증법이 가고 삶이 도래했다'가 러시아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악령』에서 인용한 요한묵시록 구절(너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 차라리 네가 차든지, 아니면 뜨겁든지 하면 얼마나 좋겠느냐)이 러시아인에게 어떤 의미인지가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준비 작업으로 더없이 적절한, 내가 의도한 것에 꼭 맞는 책이었다. 작품의 번역가들도, 노문학자들도 알기 힘든 러시아적 감성을 알려 주었으니까. 러시아인들의 시각에서 러시아 문학 작들품을 읽도록 도와주는 '실버워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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