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볼리바르 - 남미의 해방자, 다섯 국가의 아버지, 비운의 혁명가
기예르모 안토니오 셔웰 지음, 이만휘 옮김 / 행북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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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등 세 나라를 스페인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고 건국으로 이끈 사람의 이야기. 베네수엘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혁명전쟁에 투신하고, 거대한 스페인 진압군에 맞서 숱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조국은 물론 스페인령의 이웃나라들까지 해방시키는 이야기가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단지 여러 식민국가들의 해방만 꿈꾸었던 게 아니다. 사상가였던 그는 독립국가들이 연합한 '콜롬비아'라는 통합국가를 제창했다. 아마도 미국이 앞서 연방제 국가를 만들었던 것에서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파나마 지협이 고대 그리스의 코린토스처럼 각국의 공화국, 왕국, 제국의 대표들이 한데 모여 세계의 평화와 전쟁에 관한 중대한 사안을 논의하는 거대한 회의장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신께서 언젠가 우리가 그곳에서 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행운을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협력의 장이 언젠가 아메리카에서 다시 열리는 순간이 실현되기를 기도합니다.  - 103쪽, 볼리바르의 '자메이카 서한' 中에서


망명 기간 중, 고대 그리스의 '코린토스 회의'를 모델로 그가 밝힌 구상은 '남아메리카 국가연합' 제안으로 구체화된다.


체결 당사국들은 전쟁 이전의 경계에 따라 확정된 각국 영토의 완결성을 상호 보장한다. 단 적법한 절차에 따라 둘 이상의 지역이 자발적으로 통합되어 단일한 국가를 구성한 경우는 예외로 한다. - 162쪽, 볼리바르가 구상한 '남아메리카 연합' 조약의 초안 中에서


그의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미 대륙을 '북미국'과 '남미국'으로 부르고 있었을 수 있다. (통합) 콜롬비아는 미국, 중국과 더불어 G3 국가로, 스페인어가 영어와 더불어 세계 공용어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마약과 폭력이 난무하는, 독재자가 지배하고 미국과 대립하는(그래서 대통령이 체포당해 미국으로 송환된) 그런 나라라는게 베네수엘라의 현실이다. '볼리비아'라는, 그의 이상에 훨씬 못 미치게 단지 일부만 남은 나라이름이 안타깝다.


그런 아쉬움 때문인지, 저자는 책에서 볼리바르를 신격화한 반면, 그의 정적들을 '배신자', '배은망덕한 자'로 부르고, 스페인 군이나 남미 왕당파에게는 도살자 이미지를 덧씌운다. 그런 인간들 때문에 남미가 지금 이모양 이꼴이라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역사의 전개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정치의 복잡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3.1운동 이후 곳곳에 수많은 임시정부가 난립했다. 뜻있는 독립운동가들이 힘을 합해 겨우 상하이에 통합 임시정부를 하더라도 기호파와 서북파의 대립이 극심했다. 지금의 우리는 그러한 분열 자체를 비난하지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결국 임정을 끝까지 지켜낸 김구가 지금까지 찬사를 받고 있는데, 볼리바르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


볼리바르의 신화화, 정적들의 악마화라는 선악구도의 이분법적이고 평면적 서술은 책에서 다룬 당시 사건들에 대한 진실을 흐리게 한다. 예컨대, 누에바그라나다, 자메이카, 아이티 등이 볼리바르를 군사적-물질적으로 후원하는데, 그의 인품 또는 그의 비전에 감회되어서인 것처럼 쓰고 있다. 분명 다른 정치적 고려가 있었을텐데, 볼리바르의 사상과 군사행동에 집중한 나머지 그것을 다루지 않은 점은 무척 아쉽다. 남미 혁명전쟁을 다룬 다른 책들로 보완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남미 역사에 대해서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같은 개괄서가 대부분이고, 특정인물의 행적을 심층적으로 다룬 것은 '체 게바라'를 제외하면 아마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책을 기획해 준 출판사에 매우 감사하다. 



덧) 위 인용문의 '코린토스 회의'는, 다행히 지금 읽고 있는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에서 상세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기원전 338년 말 또는 337년 초, 마케토니아의 왕 필리포스는 그리스의 모든 그리스 국가의 대표들이 참석한 동맹회의를 주재했다(스파르타는 응하지 않았다). 여기서 '코린토스 동맹'이 결성되었는데, 모든 그리스 국가 사이에서 대표 회의와 화평 조약이 성립되었고, 이로써 각 나라가 자국의 정체를 선택하고 독립을 유지할 권리가 인정되었다. 사실상 동맹의 목적은 각국의 국내 정치와 국가 간 관계들을 현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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