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1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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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 나일강의 죽음


워낙 다작의 (막장드라마) 작가이다보니, 상황설정 등이 자신의 이전 작품들을 재활용하는 것 같다. 혹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쓰게 되거나. 다만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다. 이 작품은 정통 추리소설보다는 도스또예프스끼 류의 심리소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서 가져온 제사(題辭)가 어떻게 쓰일 지는 중반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작가의 의도를 알려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 


문제는 끝까지 읽어나가는 과정이 지루하다는 것. 이 작품은 맨 마지막 단 두 장(章)을 위한 것이다. 그 인고의 과정을 견디는 자가 마지막에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는 생각이 들면서 중도 포기를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무려 3,500원이나 대여료를 결제했기에 인내했고, 결실은 달콤했다. 완독 후 처음부터 표시한 주요 문장이나 장면들을 돌려 보면서, 곳곳에 숨은 복선과 암시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마지막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지루함은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장코드(이 정도면 '크리스티 코드'라고 불러도 좋겠다)에 읽는 과정은 따분했지만(그래서 인기는 없을 것 같다), 역시 대가가 쓴 만년의 걸작이다. 작가 스스로 꼽은 '베스트 10'이라 할 만하다.

매일 밤 그리고 매일 아침
어떤 이는 불행의 운명으로 태어나고,
매일 밤 그리고 매일 아침
어떤 이는 달콤한 기쁨의 운명으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달콤한 기쁨의 운명으로 태어나고,
어떤 이는 끝없는 밤의 운명으로 태어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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