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때문이라기보다는, 평소에 읽고 싶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다렸는데, 영화를 계기로 대여로 풀려서 냉큼 결제했다. 황금가지가 '쉬운' 출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구독으로 읽으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최근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들도 풀렸으니 기대해 본다.


『나일강의 죽음』은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청소년용이 아닌 성인용 책으로 읽은 크리스티 작품인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었는데, 이리저리 이사 다니는 사이에 정리가 된 듯. 


각설하고, 오랜만에, 나이가 들어 다시 읽었으니 역시 다른 게 많이 눈에 들어온다. 거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사건은 벌어지지 않고 바람만 잡는다. 대신에 이집트 여행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들이 있다. 이 경로를 따라가는 관광상품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이미 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고고학에 대한 크리스티의 애정과 지식이 돋보이는데, 그가 고고학자와 재혼한 사실은 어릴적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게 덕후 기질과 관계된 줄은 최근에 알았다. 그리고 푸아로가 자신의 멋진 콧수염과 '회색 뇌세포'에 강한 자부심이 강하긴 한데, 지금 다시 보니 명탐정으로서의 자뻑이 굉장해서 아르센 뤼팽과 비견될 만하다. 아마 많은 작품에서 그런 플렉스를 보게 될 것 같다(푸아로가 등장하는 책이 무려 34권이니, 읽는 사람들도 들어주기 지겨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걸 떠나 이 작품이 명작으로 손꼽히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정교한 트릭 때문일 것이다. 범인과 범행동기는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대강은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의 전반적인 전개와 트릭은 다시 읽으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몇몇 문장들은 가슴에 와 박히는 게 문학적 수준도 상당해 보이고.


요전에 '김전일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추리를 늘어놓는 방식은 크리스티에게서 왔다'는 텍스트를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그렇다. 김전일은 크리스티, 그 중에서 푸아로에 대한 리스펙트로 가득하다. 푸아로는 자신의 추리를 늘어놓는 동안 이어지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긴다(고 책에 나와 있다). 영화의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살인'에도 그랬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룸으로써 독자들의 집중력을 향상시킨다. 범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결말이 좋지 못하다. 


재미있게 읽었으니, 당분간 푸아로에 푹 빠져 살 것 같다. 셜록 홈즈와도, 아르센 뤼팽과도 다른, 혹은 그 둘을 섞은 듯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