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원과의 산책
사이 몽고메리 지음, 김홍옥 옮김 / 르네상스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세 여성 영장류학자와 그들을 배출한 인류학자의 이야기.


제인 구달. 탄자니아 곰베에서 침팬지를 연구했다.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금발에 날씬한 외모와 더불어 뛰어난 이야기꾼 기질로 인기를 끌었다. 그의 중요한 업적은 '인간을 다시 정의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점은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라는 것이었으나, 그는 침팬지들이 간단한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하여 세상을 놀라게 했다. 스승인 루이스 리키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이런 정의를 고수하고 있는 과학자들이 이제 다음의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을 재정의하든가 도구를 재정의하든가 정의상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든가……"(143쪽). 처음에는 자신이 이름 붙인 침팬지들에 대해서만 애정을 쏟아가며 자신의 연구에 매달렸으나, 이후 실험도구로 사용되는 침팬지 전체에도 연민을 느껴 동물복지운동에도 나선다. 침팬지가 주요 실험대상인 에이즈 바이러스 등 바이러스학과 침팬지 통계, 동물복지 법률 등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고, 자신에 대한 대중의 숭배를 무기로, 자신을 초청하는 수많은 강연에서 침팬지를 보호할 것을 역설했다.


다이안 포시. 르완다에서 마운틴고릴라와 함께 생활했다. 불행한 가정사를 지닌 그는, 강한 '관계의 욕구'를 가졌던 것 같다. 많은 남성들을 사랑했으나 해피엔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고릴라 '디지트'가 밀렵꾼들에게 무참히 살해되는 것을 보고, '자연보호의 투사'로 변신한다. 밀렵꾼들과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면서 싸우던 그는 결국 그 자신도 얼굴에 도끼를 맞아 살해된다. 탄자니아에 있는 그녀의 무덤을 향해 이틀 가량 고릴라들이 이동했다는 증언이 있다.


비루테 골디카스. 인도네시아에서 오랑우탄과 하나가 되었다. 함께 온 남편이 귀국하면서 이혼하고, 현지인 남성과 결혼하여 인도네시아 밀림 속에서 생활한다. 세계적으로는 지명도가 떨어질지언정,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제인 구달 급의 명사로 성장한 것 같다. 많은 권력자들이 그와 손잡으려 했는데, 그는 인도네시아인들의 예의와 폭력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자신만의 오랑우탄 보호운동을 전개한다.


이들을 세상에 내보낸 루이스 리키는 선교사 집안의 자녀로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평생을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촉이 빠른' 그는 아프리카인들이 동물과 소통(?)하는 법을 배웠고,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가진 세 '여성' 연구자를 발견하여 장기간에 걸쳐 영장류 연구에 매진하도록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성'이다. (여성인) 저자도 그렇지만, 리키는 영장류 연구에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적합하다고 믿었다. 그때까지 남성들이 이룩한 전통적인 연구방법론은 주로 통계에 의존했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피험물인 동물들과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리키의 세 제자들은 자신들의 동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며 가까이 갔고,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고 1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면서 이전의 연구들과 궤를 달리 했고, 결국 아무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이루었다. 


저자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불투명하고, 동물을 일종의 '샤먼'으로 보는 아프리카적 사고가 여성과 가까우며, 그 중에서도 그러한 감수성이 고도로 발달한 세 여성을 발굴한 게 루이스 리키의 업적이라고 본다. 여성은 근대의 샤먼이라는 말과 함께.


'도나 헤러웨이가 언급했듯이 '애매한 코드를 사용하는' 여성은, 다시 말해서 암시적이고 잠재적인 여성은 자연의 세계, 야생의 세계, 천상의 세계와 제휴해 왔다. 대다수 근대 서양사화에서 남성 신을 섬기고 성직자는 모두 남성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당 혹은 영매라고 부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세계를 넘나드는 근대 샤먼은 대개 여성들이다.'(346쪽)


그러고 보면 영화 '킹콩'(2005)에서 킹콩과 금발미녀의 관계설정이 의미심장하다. 거대 괴수를 돈벌이 수단으로만 보았던 남성들과 달리, 배우였던 앤은 자신의 장기인 춤으로 킹콩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장시간 그와 함께 보내면서 교감을 하게 된다. 킹콩은 다른 인간들은 불신한 채 오로지 그녀하고만 대화하려 한다. 킹콩과 미녀의 관계를 성적으로만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많았으나, 한층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책이 담고 있는 철학이 바탕에 깔려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문에서 조류학자인 저자가 호주의 새들에게 바치는 헌사를 이 리뷰에 남긴다. 내용이 너무도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서로 떨어져 있을 때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한 내 안의 두려움을 그대들은 씻어 주었다. 그대들이 따뜻한 태양 아래에서 부리로 깃털을 다듬을 때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한 편안함을 그대들은 내게 선사해 주었다. 결코 그대들이 내게 준 것에 다 보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다만 내가 느끼는 이 고마움을 그대들이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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