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에는 총 40편-53권의 책을 읽었다(일본만화 제외. 편수는 임의로 정한 건데, 예컨대, 박시백 35년은 5권이 한 편,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은 각 권이 한 편임). 페이지 수로는 25,785쪽이다. 막판에 오페라 대본집 두권을 끼워넣는 등 꼼수를 부렸지만, 주 1권, 495쪽 이상은 읽은 셈. 


상반기에 거의 넷플릭스만 보다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 싶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읽어나갔고, 살면서 이렇게 많이 읽은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책에 빠져 지냈다. 그렇다고 얇은 소설은 아니고(내 취향도 아님), 벽돌책도 (기준을 700쪽으로 잡는다면) 10편이다. 나이가 드니까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졌기에, 더 늦기 전에 더 오랜 시간 책을 붙잡고 있으려 했다.


그 때문에 2021년 읽은 책 중 탑티어를 선정하는 게 고민은 많아도 의미가 있다(2020년에는 독서량이 스무권이 될까말까였다). 논픽션과 픽션을 구분할까 하다가 퓰리처상도 아닌데 뭔 의미가 있나 싶어 그냥 마음가는 대로 골라봤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ㅣ 마이클 셸런버거 ㅣ 부키 ㅣ 2021

이 책을 넣느냐, 마느냐 고민이 많았다. 주류 환경운동의 위선을 고발한 점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원전을 밀어주는 건 신중히 봐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은 것 같다. 그러나 작금의 환경운동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툰베리 류의 인간 활동의 무조건적 자제를 지양하고, 기술의 진보가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들과의 공존을 가능하게 한다는 환경휴머니즘을 제창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기점으로 2021년 기후변화와 에너지 관련 독서열이 활활 불타오른 점도 선정사유.




반지의 제왕 ㅣ J.R.R. 톨킨 ㅣ 아르테 ㅣ 2021

영화를 워낙 좋아해 몇 년에 한 번씩 보기 때문에(올해 20주년 기념 재개봉 한 것도 전편 관람), 깊이있게 보기 위해 읽었다. 처음에는 세계관, 용어, 방위 때문에 자주 길을 잃었는데 익숙해지고 나니 이렇게 재미있는 문학작품도 드물 듯. 반면,『호빗』은 영화를 싫어해서 제외했다. 책 만듦새 때문에 알라딘 리뷰에 악플이 엄청 달렸지만 나는 리디셀렉트로 읽었기에 상관 없는 문제였다.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2 ㅣ 모리스 르블랑(성귀수 역) ㅣ 아르테 ㅣ 2018

정말 오랜만에, 추리소설, 그리고 프랑스 문학에 대한 사랑으로 뜨거운 한 해였다. 원래는 홈즈를 사랑하고(그렇다고 다 읽은 것도 아님) 뤼팽은 얄밉게 생각하는데, 이 2권을 읽으면서 그게 뒤집어졌고, 20세기 초의 프랑스와 유럽의 생활상, 국제관계 등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이 결정판은 4권까지 읽었는데,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속이 빈 바늘(에귀유 크뢰즈)』과 『813』이 수록된 2권이다. 전자는 뤼팽을 추격하고 후자는 반대로 뤼팽이 처음으로 추격자가 된다. 현대적 스릴러물의 모태 같은 작품들이다.    



제르미날 ㅣ 에밀 졸라(박명숙 역) ㅣ 문학동네 ㅣ 2014 

2020년, 2021년 한국사회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묘사한 문학작품이 또 있을까. 노동자의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기업들의 행태, 노동자들의 단체행동을 탄압하는 국가권력, 노동자를 부추겨 자신의 부를 축적하고 권력을 추구하는 선동가들, 그 선동에 넘어가 그 자신도 폭력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민중들, 그 소란이 있음에도 그림 속에서 인자한 미소를 짓는 게 전부인 국가최고존엄까지. 처음 읽을 때에는 단순히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과 파업을 다룬 것으로만 생각되었던 이 작품이 21세기 우리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강한 충격을 받았다. 에밀 졸라는 진정 위대한 작가이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ㅣ 표도르 도스토옙스키(김희숙 역) ㅣ 문학동네 ㅣ 2018

이 작품은 제사(題辭)와 에필로그 때문에 읽는 것 같다. 작품 곳곳에 숨어 있는 (러시아) 민중에 대한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가 진한 감동을 자아내지만, 그 내용들이 제사 한 문장에 응축되어 있다. 에필로스에서 '죽은 친구를 기억하자'는 알료샤의 외침은 또 어떤가. 기나긴 문장과 등장인물들의 장광설 때문에 힘들었지만, 끝까지 읽도록 지탱해준 것은 번역의 힘이었다. 2021년 읽은 '문학' 중에서는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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