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4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4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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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에 이어지는 작품.


『813』말미에 뤼팽은 모로코에 파병된 외인부대원으로 '돈 루이스 페레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데, 이 편에서는 내내 그 이름을 사용한다. 넘치는 자신감, 초인적 직관, 미녀 밝힘증은 여전하지만, '돈 루이스 페라나'라는 이름으로 변신을 전혀 하지 않는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그 뿐 아니라 공익의 수호자의 면모를 과시하는데, 전편들처럼 도둑질도 하지 않고 총리나 경시청장 같은 고위직들의 신임을 듬뿍 받으면서 거의 자유롭게 활동하는 탐정이 된다.


내용도 굉장히 재미있다. 사건 속에 사건이 있고, 사건 속에 또 다른 사건이 있다. 범인을 잡았다 그 배후에 누군가가 있다. 그래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계속해서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데드풀' 같은 끝없는 허풍이 이어지다보니, 모리타니 왕국을 프랑스령으로 귀속시킨 게 그 자신이었다는, 개념이 안드로메다로 갈 법한 부분에서는 살짝 지루해지기도 했지만, 모리스 르블랑의 필력은 『수정마개』가 끝이 아니었던 것. 


한편, 시간 설정이 특이하다. 사건의 시발점이 된 2억 프랑의 유산을 남긴 모닝턴은 1919년 '인플루엔자'로 앓아 누웠다가 독극물로 사망한다. 나는 그가 1918년부터 대유행한 스페인독감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해설에 따르면 작품은 1914년, 전쟁 중 집필된 것으로, 전쟁 후 일어날 세상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것이다. '미래에 유행성 독감까지 예견했다는 것인가'라는, 나만의 착각에 잠깐 웃음을 지었다.


다만, 뤼팽 장편의 백미라고 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나 전설(『속이 빈 바늘』), 당시의 국제정세(『813』), 정치 스캔들(『수정마개』)에 기반한 에피소드가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도둑질을 안 하다보니, 끝모를 예술적 취향도 여기서 멈춘다. 이제 겨우 4권인데, 그럼 다음 뤼팽은 또 어떤 모습을 보일까 궁금해진다.

페레나를 둘러싼 영웅신화는 그 위용을 차근차근 갖추어왔던 것이다. 그 속에는 초인적인 에너지와 기적 같은 담력, 황당무계한 상상력과 기발한 모험심, 그리고 강인한 완력과 냉철한 정신력 등등, 도저히 아르센 뤼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신비스러운 인물의 모든 특징이 고스란이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좀 더 이상화된 업적으로 더욱 위대하게 승화된 아르센 뤼팽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난 아무것도 믿지 않아. 다만 끊임없이 탐구할 뿐이네. 무엇이든 최초로 마련되는 기반 위에다 하나의 가설을 세울 뿐이지. 가장 그럴듯한 가설을 말이야. 그리고 생각하는 거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서두를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하는 모든 말은 입 밖으로 내기 전에 그 한마디 한마디가 충분히 숙고된 것들입니다. 어느 한가지도 소홀히 흘려버려서는 안 되는 얘기이죠. 왜냐면 얘기 속에 담긴 사실들을 중구난방으로 헤집어 본다고 해서 결코 이번 사건이 해결되는 게 아니며, 오로지 가능한 한 충실하게 갖춰진 이야기를 따르는 가운데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난 신문 따위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지냈습니다. 어리석은 정치 놀음이나 지저분한 사건들을 눈으로 섭렵하느라 매일 소중한 30분씩 허비하는 게 그토록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일일까요?"

"내 공격을 막아낸 건 당신 자신의 재능만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기적 같은 행운이 당신을 집요하게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머뭇거리는 것도, 생각에만 골몰하는 것도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번에 파악하고 싶었고, 순식간에 깨닫고만 싶었다. 별다른 단서라든가 모호한 추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중대한 순간마다 갈 길을 가르쳐주었던 그 놀라운 직관력 한 방으로 일사천리 꿰뚫기만을 원했다.

핍밥받고, 희생당하고, 삶의 열정을 상실한 사회적 약자들. 그들 모두에 대해 돈 루이스는 한결같이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명철한 지성과 자상한 조언, 경험과 힘을 그들과 함께하고, 필요하다면 직접 시간을 할애해 자기 스스로 나서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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