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신장판 1
프랭크 허버트 지음, 김승욱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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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기위해 책을 읽은 적이 없는데,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저자가 창조한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힘들기 마련. 『반지의 제왕』때에도 그런 것처럼, 그와 필적한다는 『듄』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것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스파이스'라는 물질이다. 스파이스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이자, 캐릭터들의 중요한 동기였다. 아라키스 행성을 갖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의 원천이요, 원주민인 프레멘의 삶의 기본이다. 그런데, 그게 식물인지, 가루같은 형태인지 뭔지 분명치 않았다. 상상이 안되었는데, 심지어 영화에서조차 그 정체는 소개되지 않는다.  


동시에 가장 명백한 것이 스파이스이기도 하다. 아라키스 행성이 '사막'이라는 점릉 감안한다면, 이곳은 중동을 상징하는 곳일 것이다. 위에서 '욕망의 원천'이라고 했는데, 서구인들이 중동 지역에서 욕망하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근대까지는 후추, 현대에 이르러서는 석유. 후추는 물론 인도에서 건너왔지만, 중간지대에 자리잡은 터키, 아라비아 반도에서 그 무역을 독점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결국 마젤란 등이 대체항로를 개척하는 계기가 되었다. 석유는 말할 것도 없는 현대사회의 근간이다. 탄소중립성을 이유로  석유 사용량을 줄이자는 움직임이 있지만, 감산하자마자 세계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중동의 석유는 양차 세계대전이 확대된 원인이자 종결시킨 결정적인 이유였으며, 고립주의를 고수했던 미국이 세계 경찰을 자처하게 된 배경이다. 


공교롭게도, 나는 지난 추석 연휴 직전에 석유의 역사를 다룬 대니얼 예긴의 역작『황금의 샘(The Prize)』를 읽었고, 추석 때부터 이 『듄』을 읽기 시작했다. 『듄』에서 하코넨 일가와 조합이 스파이스에 집착한데서 보인 모습은 미국과 중동에서 유전 개발에 뛰어든 혁신가들의 그것과 같았다. 그래서 처칠이 말했다고 하지 않은가. '패권은 모험에 대한 보상(the prize)'이라고.


책의 내용은 사실 단순하다. 원수에게 아버지를 잃고 그곳을 탈출하여 천신만고 끝에 다른 부족의 우두머리가 되어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다는 서사는 어디서 많이 보던 것들이다. '복수'라는 점에서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떠올리게 하고,  현지인과 동화된다는 점에서 영화『늑대와 춤을』이나 『아바타』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사막에 꽃을 피우려는 생태학자는 우라사와 나오키의 『플루토』에도 등장한다. 아버지를 잃은 스타크 형제들의 모험과 복수를 그린『얼음과 불의 노래』의 원형이라고도 할 만하다. 거기에, SF라고는 하지만 주된 무기가 칼이라는 점에서는 『스타워즈』와 닮았다. 이렇게 놓고 보니, 그 많은 명작들에 영감을 주었다는 말이 과장은 아닌 것 같다.


덧붙여, 영화는 꽤 괜찮았다. 오니솝터 등 각종 탈 것, 목소리, 방어막 등에 대한 묘사가 뛰어났고, 책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선물 같은 것이었다. 반면, 원작을 안 읽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예컨대, 카인즈 박사가 갈고리를 들고 있는 장면이 그것일 것이다. 영화를 즐기고픈 사람은 책을 꼭 먼저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1권만 읽고 그만두려 했지만, 어렵사리 읽고나니 또 영화까지 보고 나니 완주하고픈 욕심이 생긴다. 영화는 1권에서 끝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읽을 책들의 목록은 늘고나는데 고민이 깊어가는 가을 밤이다. 


*리디북스에서 대여로 읽음

**번역은 상당히 좋았다. 개인적으로, 김승욱 번역가는 『분노의 포도』 이후 두번째임 

***영화는 용산 cgv 아이파크몰에서 아이맥스 2D레이저로 보았음

처음이란 균형을 맞추는 데 가장 세심한 신경을 써야 하는 시간이다.

무앗딥이 속했던 곳이 바로 아라키스 행성이라는 사실에 가장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그가 칼라단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때까지 그곳에 살았다는 사실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행성 아라키스가 영원히 그가 속한 곳이다.

그는 ‘공포에 맞서는 기도문‘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베네 게세리트의 기도문이었다.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은 정신을 죽인다. 두려움은 완전한 소멸을 초래하는 작은 죽음이다. 나는 두려움에 맞설 것이며 두려움이 나를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두려움이 지나가면 나는 마음의 눈으로 그것이 지나간 길을 살펴보리라. 두려움이 사라진 곳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남아 있으리라.‘

"왜 인간을 가려내기 위한 시험을 하는 거죠?" 그가 물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려고."
"자유라고요?"
"옛날에 사람들은 생각하는 기능을 기계에게 넘겼다. 그러면 자기들이 자유로워질 거라는 희망을 품고 말이야. 하지만 그건 기계를 가진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노예로 삼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유전적인 특징들이 정체될가 봐 두려워하지. 사람들의 핏속에는 계획 없이 무작정 유전적 특징들을 뒤섞으려는 충동이 있어..."

"이것을 명심해라.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네 가지다..." 그녀는 관절이 커다랗게 불거진 손가락 네 개를 들어 올렸다. "...현자의 지식, 위대한 자의 정의, 올바른 자의 기도, 용감한 자의 용맹.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다 아무것도 아냐..." 그녀는 손가락을 오므려 주먹을 쥐었다. "...다스리는 법을 아는 통치자가 없다면 말이다. 이것을 너희 가문의 체계적인 지식으로 만들어라!"

"귀머거리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우리 모두 일종의 귀머거리가 아닌가? 우리 주위를 온통 둘러싸고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감각이 부족한 까닭인가? 주위에 있는 것을 우리는..."

"나를 파멸시키는 데 내가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나?"

"칼라단에서 우리는 해군과 공군을 이용해서 지배했다. 이곳에서는 사막에서 활동할 수 있는 군사력을 긁어모아야해. 그게 네가 받을 유산이다, 폴,.."

"...인간은 각자 자신의 자리가 있을 때, 자기가 이 세상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요. 어떤 사람이 속한 자리를 파괴하는 건 곧 그 사람을 파괴하는 거예요..."

"난 절대 반역자를 믿지 않아. 나 때문에 반역자가 된 인간이라 해도 말이야."

"...당신은 당신의 충성심이 파는 물건이 아니라고 했지만, 난 당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소. 당신이 내게 충성하는 대가로 나 역시 당신에게 나의 신의를 주겠소... 완전한 신의를."

베네 게세리트의 격언 중에 ‘눈에 모든 것을 의존하면 다른 감각이 약해진다‘는 말이 있었다. 폴은 이 격언을 되새기며 다시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까지 인간과 인간의 활동은 인간이 살고 있는 행성 표면에서 질병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연은 질병들을 보정해서 제거하거나 분리시키고, 자신의 방식대로 그것들을 시스템 속에 통합시키는 경향이 있지."

스틸가가 말했다. "네가 선택한 이름이 마음에 든다. 무앗딥은 사막에서 현명하게 살아가야 하는 동물이야. 무앗딥은 스스로 물을 만들어내지. 무앗딥은 태양을 피해 몸을 숨겼다가 서늘한 밤에 움직인다. 무앗딥은 다산이어서 온 땅 위에서 번성하지. 무앗딥을 우리는 ‘아이들의 교사‘라고 부른다. 우리들 사이에서 우슬이라고 불리는 폴 무앗딥이여, 그건 네 인생의 강력한 기초가 되어줄 것이다. 너를 환영한다."

"우리는 실패하지 않을 거예요."
"죄책감은 실패했다는 감정에서 시작되는 법이지."

"가능한 한 명령을 적게 내려야 한다." 그의 아버지가... 언젠가... 아주 오래전에 이렇게 말했다. "일단 명령을 내리기 시작하면 항상 명령을 내려야 해."

"어떤 물건을 파괴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그것을 장악하고 있는 거야."

성난 사람이 분노 때문에 내적인 자아가 들려주는 말을 부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당신이 어떤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건 아니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하느냐 하는 것이오.

제시카는 씁쓸한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 봐라, 챠니. 저 공주는 아내라는 이름을 갖겠지만 첩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될 거야. 결혼으로 자신과 묶여 있는 남자에게서 단 한순간도 부드러움을 맛보지 못하겠지. 하지만 우리는 말이다, 챠니, 첩의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는 역사가들에 의해 아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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