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결정판 아르센 뤼팽 전집 1
모리스 르블랑 지음, 성귀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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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뤼팽은 어릴 적『기암성』과 『수정마개』 , 그리고 (이 결정판을 통해 안 것이지만) 홈스가 처음 등장한 단편 하나를 읽은 게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세계 최초의 뤼팽 집대성인 만큼, 결정판 1권은 거의 역자가 센터에 섰는데, 본인이 쓴 서문을 비롯하여 각종 해설이 초반을 빼곡히 차지한다. 당연히 그에게는 자격이 있으리라.


첫 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은 아르센 뤼팽의 출발일 뿐 아니라, 작가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기법의 원형이 여기에 있다는 역자의 설명도 있고(과연 그렇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작품에서는 자신을 뤼팽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이자 서술자로 소개하기도 한다. 모리스 르블랑 자신이 뤼팽의 행적을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프리퀄 격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도 소개된다. 셜록 홈스에 대한 경의가 곳곳에 배어 있으며 그의 첫 등장도 여기서부터이다. 무엇보다 대도가 체포되고 탈출하는 방식으로 전체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단숨에 대중의 시선을 잡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두번째 권,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은 홈스와의 대결을 담은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재미있게 읽었다. 대도와 명탐정 간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전개가 상당히 흥미진진하고, 누구도 우위에 두지 않는 결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뤼팽의 난봉질도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다만, 왓슨이 얼빵하게 행동하는데다, 심지어 그를 忠犬에 비유하는 점이 아쉽고(르블랑이 자신을 뤼팽의 왓슨 역할로 자처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홈스가 왓슨을 무시하거나 여자를 향해 총을 겨누는 등 행동이 원래의 캐릭터를 충실히 살린 것인지 의심스럽다. 홈스가 아니라 에를로크 숄메스라는 핑계를 댈 수는 있겠지만.


셋째 권, 「아르센 뤼팽, 4막극」은 본 결정판을 통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희곡이라고 한다. 희곡은 거의 읽지는 않는데 이 형식의 추리소설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쥐덫』이후로는 처음이라, 대도의 행각을 관객 앞에서 시각적으로 어떻게 그려낼지는 분명 흥미를 자아내는 점이다. 그 외에도 이 희곡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 처음 소개되는 루팽의 주변 인물들이 몇 명 있기 때문이다. 


책의 출간연도가 1900년대 초반인 점을 고려하여, 그 시대의 기술, 문화, 유럽의 역학관계 등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 일례로, 초반부터 뤼팽이 '수퍼카'를 끌고 다니고, '택시'도 등장하는 반면, 말과 마차도 함께 거리를 다닌다. '가스등'이 있는가 하면 '전등'도 보급되어 있다. '전화'와 '전보'가 공존한다. 잠수함 관련 국뽕 에피소드도 소개된 점은 1차대전의 전조를 느끼게 한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점은, 의외로 번역이라 하겠다. 세계 최고의 뤼팽 덕후의 성과물인 만큼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고 오역도 거의 없을 거라 생각된다. 향후 몇십년간 우리나라에서 이 권위를 능가하는 번역본이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포털을 검색해 봐도 번역에 대한 불만은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 개인에 한한 문제이길 바라지만) 아쉽게도 나는 역자의 번역이 쉬이 읽힌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오페라의 유령』과 조르주 심농의 작품 하나가 그랬다. 「뤼팽 대 홈스의 대결」이라는 제목이 그의 번역에 대한 나의 불편한 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 아닌가 한데, 「뤼팽 대 홈스」(이게 원제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또는 「뤼팽과 홈스의 대결」이 맞지 않나? 이런 번역들이 암암리에 있다면 몰입에 방해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에를로크 숄메스'를 '홈스'로 표기한 점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역자는 '영미권에서도 '뤼팽 대 홈스'라고 번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했으나, 내가 알라딘에서 'Lupin'을 검색한 결과 '홈스'로 한 표기는 많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본식 역어들을 그대로 계승한 점이 안타깝다. 'Gentleman-thier'라면 '괴도신사'가 아니라 '신사도둑'이라고 해야하지 않겠나. 그의 본질이 '도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둘의 뉘앙스는 완전히 다르다. 일본식 역어나 기존의 오역 제목들이 역자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세계최초 결정판'임을 자부했다면 좀 더 신경써줬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우리 문학 번역계가 함꼐 고민해야 할 과제이다.


어쨌거나, 어린시절 추억을 곱씹을 수 있어 보는 내내 즐거웠다. 읽어볼 마음이 생기도록 이렇게 멋진 전집을 출간한 역자와 출판사에 고마움을 표한다. 일단은 좋아했던 「수정마개」까지는 보고 열 권을 모두 읽을지 결정할 생각이다.


*리디셀렉트로 읽음

무엇보다 아르센 뤼팽을, 그 태양처럼 빛나는 열정과 자신감뿐 아니라 고독과 실존의 그림자까지도 사랑하여, 그가 펼쳐 보인 파란만장한 모험들 하나하나에 흔쾌히 동참해온 친구들, 그리고 동참할 준비가 된 모든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전집을 펴낸 것 같아, 한없이 기쁘다.

이 얼마나 기괴한 여행이란 말인가! 그래도 시작은 꽤 좋았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보다 더 신나는 기분으로 여행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도대체 왜 한정된 모습만을 가져야 하는 거지? 늘 똑같은 성격을 굳이 왜 고집해야 하느냔 말일세. 어차피 내가 저지른 행위들만으로도 충분히 나라는 사람이 떠오를 텐데 말이야." (중략) "‘이자가 아르센 뤼팽이오!‘하고 분명히 얘기할 수 없으면 더 좋지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이건 아르센 뤼팽이 저지른 일이다!‘라고 확실히 명심하는 것이니까."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

"... 저들은 내 윗도리 안감까지 뜯어보고 신발 밑창까지 훑어내는가 하면 이 보잘것없는 벽면도 여차하면 두드려대면서도, 누구 하나 이 아르센 뤼팽이 훨씬 손쉬운 은닉처를 고를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못하더라고요! 바로 그런 맹점 때문에 내가 편해요." 「감옥에 갇힌 아르센 뤼팽」

"... 마치 내 맘대로 섞은 카드 패처럼, 나한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 이미 하나 조성되어 있었다오. 다름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언제 나의 탈출이 현실로 드러날지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당신을 포함해서 숱한 사람이 빠져버린 그 엄청난 미몽(迷夢)에다 결국 나는 나의 자유를 판돈으로 내건 거나 다름없었소. (후략)" 「아르센 뤼팽 탈출하다」

"...보드뤼든 다른 누구든 되어본다는 건 참 즐거운 일이오. 개성을 마치 셔츠를 갈아입듯 바꾸고, 외모와 목소리, 눈빛, 필체 따위를 맘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 말이오! 하지만 문득 그 모든 모습 가운데서 진짜 자기 자신을 못 알아볼 때가 있어요. 그땐 몹시 서글퍼진다오. 지금도 마치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요. (후략)" 「아르센 뤼팽 탈출하다」

"...도둑질이란 얼마나 쉬운가 말이야! 왜 세상 사람들이 이처럼 손쉽고도 안정된 직업을 마다하는지 모르겠어. 약간의 기술과 머리만 있으면 이보다 더 매력적인 일도 없을 텐데 말이야. 이처럼 편하고 이처럼 견실한 직업이 또 어디 있겠어? (후략)" 「흑진주」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면 지금 당신이 알아낸 것은 무시하세요. 현재를 떠나 부디 과거를 돌아보세요. 저는 간밤에 당신이 본 사람이 아니라, 그 옛날 당신의 시선이 머물렀던 존재입니다. 단 한순간만이라도 옛날에 당신이 바라보던 그 눈빛으로 저를 바라봐 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제가 그렇게도 변했나요?" 「셜록 홈스, 한발 늦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도 그자를 신뢰하는 겁니까?"
홈스가 감탄한 듯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무조건 신뢰합니다."
"그가 하는 일은 모두 옳지요? 그가 원하는 일은 모든 게 성취되고, 당신은 그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준비가 되어 있겠죠?"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뤼팽 대 홈스: 금발의 귀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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