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진도율을 나타내는 무슨 지수가 있는데, 찾기 어려워 패스)


철학자 강유원은 한 강의에서 "고전을 왜 사느냐"라고 자문하면서 "인테리어"라고 답했다. 애서가를 자처하며 책을 사는 많은 이들이 겪는 일일텐데 나도 예외는 아니다. 알라딘중고, 네이버 중고나라 서비스로 정리했지만, 아직도 많은 책들이 내 책장에 '인테리어' 또는 '적폐'로 남아 재판매되거나 주인이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글은 자학 또는 질책하기 위해 쓴다. 읽지 않고 쌓아만 두면서 틈만 나면 다른 책을 사려는 나를 꾸짖는 포스팅이다. 아래 소개된 책들은 구입한 지 최소 1년은 경과된 것들이다.




우리 모두는 천병희 선생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일리아스』,『오뒷세이아』,『아이네이스』는 대학도서관에서 대출하여 강대진 해설서와 함께 재미있게 읽었는데 사놓고 안 읽었다. 다른 책들은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플라톤 책들은 알라딘중고를 통해 꽤 구입했지만 모두 팔고 두 권만 남았다.




베르길리우스를 마음으로 섬기는 단테는 자신이 호메로스 등 대선배들과 동급임을 『신곡』을 통해 은연중에 과시한다. 『신곡』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김운찬 교수의 두번째 개정판(3권 분권)을 두번 읽었으나, 단권에 대한 로망 때문에 팔고 구판을 샀고, 이어 박상진본, 한형곤본을 알라딘중고를 통해 구입했으나 한형곤본은 팔았다. A.N. 윌슨의 단테 평전인『사랑에 빠진 단테』는 2015년 서울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재미있게 읽었고, 이후 절판된 것을 알라딘중고에서 좋은 가격에 샀다. 이렇게 정리한 책들 전부를 거의 펼쳐보지도 않았다.




 

단테와 『왕좌의 게임』때문에 한창 중세에 빠져서 관련 책들을 알라딘중고를 검색하고 사모았는데, 다 팔고 세 편만 남았다. 신촌의 어느 중고서점에서 구입한『비잔티움 연대기』전 3권(구판)과, 2015년 서울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고 절판 직전 교보문고 등을 통해 구입한 수잔 바우어의 『중세 이야기』2권, 알라딘중고에서 구입한『중세, 하늘을 디자인하다』가 그들. 모두 중고시장에 내놓긴 했지만, 안 팔리더라도 언젠가는 읽을거라는 생각은 한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야심차게 사긴 했지만 주제를 알고 사실상 포기한 상태, 20대 중반 충격을 주었던 박노자의 책들 2권을 알라딘중고 종로점에서 샀지만, 미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예측이 빗나간데다 최근 행보를 보면 이상하기 그지 없어, 되팔곳도 없으니 책장이 차면 그냥 버릴 듯하다. 한영우의『율곡 이이 평전』은 내놓긴 했지만 조선왕조사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생기면 최고 경세가의 생애를 언젠가는 읽을거란 생각은 하고 있다.




한때 열광했고, 지금도 전집이 나오기를 바라고 있는 시바 료타로의 책들. 창해의 전권을 새책으로 구입했었으나 팔아버렸던 아픈 과거가 있다.『료마가 간다』는 대학도서관과 서울도서관을 통해 두 번, 『신센구미 혈풍록』은 대출로만 한 번 읽었고, 『미야모토 무사시』는 아직껏 못 읽고 있다. 『타올라라 검』만 최근 다시 정독했다.




예술 관련 책은 4권 남아 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대학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고 절판된 책을 좋은 가격에 가까스로 구했지만 방치 중.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첫 슈베르트 평전인 『프란츠 슈베르트』도 사놓기만 했다. 두 작곡가 모두 최근 두꺼운 평전들이 발간되었으나 이거부터 읽으려고 구입을 미룬 상태다. 『연출가를 위한 핸드북』은 오페라를 이해하기 위해 주문했지만 한 번도 읽지 않아 괜히 샀다는 생각 뿐이다.




『논어』와 『홍루몽』은 중국 문화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나에게는 히말라야 같은 산이라 문제. 에밀 졸라의 『루공 마까르』 전권이 출간되도록 문학동네 세계문학을 응원하지만, 정작 사놓고 읽지 않는 책이 두 권, 오페라 때문에 야심차게 주문한 이탈리아 회화책은 영원히 하지 않을 숙제. 언제 샀는지도 모를 『소피의 세계』와 해문의 애거서 크리스티의 4편은 책장이 여러번 바뀌는 동안에도 꿋꿋이 버티고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너무도 사랑하여 한때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권 읽기를 꿈꿨지만 이윤기, 안정효 등 노번역가들의 역서는 읽기 힘들다. 이 네 권은 내놓긴 했어도 가능하면 읽어볼 생각이다.


리디북스에서 결제하고 방치한 책들은 중고로 되팔 수도 없어 문제가 더 심각한데, 금액으로는 거의 100만원에 이른다. 다음에 기회되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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