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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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있는 사람 없어. 나하고 나 자신, 그리고 또 나뿐이지.」


30대 초중반에 읽었고, 40대 초반에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완연히 다르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반항기 어린 성장소설로만 생각했다. 세상을 향한 냉소와 어른들의 위선에 대해 퍼붓는 독설이 좋아서, 당시 나에게 큰 충격을 준 명작이었다. 10년 가까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읽은 지금은 그 충격이 덜하다. 대신 길잃은 방랑자의 고독을 느꼈다.


홀든 콜필드는 짧은 여행 시간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고,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을 경멸한다. 그런데 그 경멸하는 표현이, 왠지 밉지 않다. 과도하게 들리지 않고 오히려 공허하다. 중반부에서 그가 밝히길 무척 외로워서 그런 것이고(마치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에 고백하듯, 그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독한 외로움, 감정이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읽을 때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명작으로 읽힌다. 또 10년이 후 읽게 되면 나는 홀든의 부모 나이가 되어 있을 것이고, 다른 느낌이겠지만 역시 명작이라고 여기게 될 것이다.


정말로 이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아마도 가장 먼저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는지, 끔찍했던 어린 시절이 어땠는지, 우리 부모님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태어나기 전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와 같은 데이비드 코퍼필드 식의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이야기들에 대해서 알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지 않다. 우선 그런 일들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너무 지겹기 때문이고, 그렇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했다가는 부모님이 뇌출혈이라도 일으킬 것 같기 때문이다. - P9

만약 잘난 놈들 측에 끼어 있게 된다면 그때는 시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나도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측에 끼게 된다면, 잘난 놈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편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시합이 되겠는가? 아니. 그런 시합은 있을 수 없다. - P19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 P32

「오리들이 그곳에서 헤엄을 치고 있잖아요? 봄에 말이에요. 그럼 겨울이 되면 그 오리들은 어디로 가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 P113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구.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린다. - P154

「같이 있는 사람 없어. 나하고 나 자신, 그리고 또 나뿐이지.」 - P201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빌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 P229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 P247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글이다. (중략)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P248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 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후략)」 - P250

「그 밖에도 학교 교육이란 건 많은 도움을 주지. 학교 교육이라는 건, 어느 정도까지 받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지. 자기의 사고에 맞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돼. 나중에는 자기 사고의 일정한 크기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이용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거야.게다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들을 하나하나 시험해 보는 데 드는 시간도 절약해 주고 말이지. 결국 학교 교육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알게 해주고, 거기에 맞게 이용하게 해주는 거야」 - P251

난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한 걸 후회하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사람들이 보고 싶다는 것뿐. 이를테면, 스트라드레이터나 애클리 같은 녀석들까지도. 모리스 자식도 그립다. 정말 웃긴 일이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끝>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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