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 - 주술사부타 AI 의사까지, 세계사의 지형을 바꾼 의학의 결정적 장면들!
서민 지음 / 생각정원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제니퍼 다우드나. 유전자가위 연구 성과를 인정 받았단다. '간만에 과학책이나 읽어볼까'해서 '크리스퍼가 온다'를 집어들었다. DNA가 나선형으로 이뤄진다...까지는 알겠는데, 조금 더 읽다가 접었다...

 

난 문송하다. 과학서적을 글자는 읽지만 내용이 뇌에까지 들어오지는 않는다. 과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이기적 유전자'도 '번역이 개판'이라는 핑계로 미루는 중.

 

나 같은 이들에게 이 책은 유용할 것이다. 과학학습만화의 성인용 버전이랄까. 일반인들이 좀처럼 접근하기 어려운 '의학'을 '역사'와 접목하여 '소설'과 에세이의 형식을 빌어 이야기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연대기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1~2부는 고대부터 17세기까지 의학자 중심의 발전사를, 3~4부는 19세기부터 현재까지 주요 주제별로 나누어 서술하고 있다.주요 주제란 콜레라, 천연두, 영상의학, 페니실린, 의학 윤리, 정신건강의학, 암, 장기이식, 게놈프로젝트를 말한다.

 

의학박사이기 때문에 개별 의학지식, 역사상 위대한 의사와 그의 업적을 서술하는 것은 당연해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일반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건 또 다른 문제. '크리스퍼...' 만 하더라도 '이걸 비전공자가 읽으라고 쓴 책인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건 딱 의학상식을 갖고자 하는 장삼이사들을 위한 책이다.

 

대단한 건 저자의 엄청난 독서량. 뒤에 장별로 참고한 책이나 자료를 나열했는데, 그보다도 행간에서 역사, 철학, 지리, 문학 등 인문학적 내공이 상당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불공정 행위이다. 문송한 나는 의학 지식이 1도 없는데. 농담이고, 이런 점 때문에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다.

 

노무현을 존경해서 그런지, 저자는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뉴턴 이래 과학은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첫 발견 그 자체보다 기록 또는 논문으로 남겨 후세에 영향을 준 것을 높게 평가한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이라는 약을 직접 개발한 것은 아니자만, 그 실마리가 된 푸른곰팡이를 발견하고, 그것을 논문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플레밍=페니실린'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타당하다고 본다. 또, '종두법'을 처음 실행한 것은 어느 농부였지만, 이를 인체에 실험하고 연구하여 논문으로 발표하여 세상에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종두법의 시조를 에드워드 제노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한의학 또는 전통의학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인터넷 등을 통해 의학-한의학 분쟁을 접하면, 의사들은 한의사는 영양사, 허준은 사기꾼, 한의학의 효험은 플라시보 효과로 폄하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이 임상실험을 거치지 않았기에 과학으로 인정하기에 부족한 것이지, 경험적으로 효험이 상당히 입증된 것으로 본다.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나라 의학사를 따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저자의 사고가 상당히 유연함을 보여준다.

 

한편, 저자는 의사로서, 의학집단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이 오바마가 부러워할 정도로 잘 정착된 것은 의료계의 희생이었다는 점을 역사적 맥락 설명하면서 강조한다. 정치권에서 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데, 특히 국가 투자하는 각종 보험을 '국가재정의 건전운영' 시각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윤희숙을, 저자가 어제 강연에서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제안한 것은 우연일까? 나의 부담이 얼마나 증가할 지는 다음 정권에서 볼 일이다.

 

오늘, 미국의 의약회사 '화이자'가 코로나19 백신을 거의 개발했고, 임상실험에서 90%의 효능을 보였다는 뉴스를 접했다. 재미있다.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가 '소'를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나왔고, 제너가 처음 사용했다는 점, 책에서 소개된 임상실험 절차를 코로나19 백신 개발 단계에 비교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비아그래 개발로 떼돈을 번 화이자가 구미의 까다로운 임상실험 규제를 피해 아프리카에서 실험을 하는 비도덕적 회사라는 점 등, 이 책을 읽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뉴스와 그 이면이 많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무지한 채로 세상을 보고 살았는지. 그 무지를 해소하기 위해 얼마나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지. 

.

.

.

.

.

.

.

.

.

(덧. 저자는 엊그제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자신을 좀 깠던 알라딘의 책 리뷰 일부를 캡쳐해 포스팅하면서, '솔직하긴 ㅋㅋㅋ'하고 멘트를 남겼다. 조금 미안해서, 읽고 있던 책들 제껴놓고 이 책을 결제해 읽었다. 깐 것 만큼 이 후기는 좀 빨았다. 이것도 캡처해서 올리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