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노트> 무조건 좋게 결정지어서 맡겨 놓기
날짜:2025년2월27일
오늘의정진: 學人不了用修 학인불료용수행 /배우는 사람은 마치질 못해서 수행을 하나니
- 100일 정진, 64일차
어제 증도가(證道歌) 예순 세번 째 구절은
<捨妄心取眞理사망심취진리 / 망령된 마음을 버리고 진리를 취함이여
取捨之心成巧僞취사지심성교위 /버리고 취하는 마음이 교묘한 거짓을
이룬다.> 였다.
취사(取捨) 즉, 버리고 취함은 수행자가 조심해야 할 선택 행위이다.
처음 마음공부를 시작하는 신참자라면 수행과 관련하여 버리고 취할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공부가 되었다면 자신의 공부를 이끌었던 취사심(取捨心) 마저 놓아 버려야 한다.
강을 건넜다면 뗏목을 다시 들고 다닐 필요가 없듯이, 취사심도 가질 필요가 없어진다.
자신이 가야 할 목적지를 잊지 않는다면 어떻게 가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저 길 없는 길을 발 없는 발로 가야 할 뿐이다.
오늘은 예순 네 번 째 구절
學人不了用修行/(배울 학, 사람 인, 아닐 불, 마칠
료, 쓸 용, 닦을 수, 행할
행)
학인불료용수행 / 배우는 사람은 마치질
못해서 수행을 하나니
眞成認賊將爲子/ (참 진, 이룰 성,
인정할 인, 도둑 적, 장수 장, 할 위, 아들 자 )
진성인적장위자 / 참으로 도둑의 아들이 됨을 인정하는 꼴이다.
절학(絶學)의 경지, 즉 배움이 끊어진 경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더 닦아야 하는가?
아직 배움을 마치지 못 한 사람은 수행 이랍시고 뭔 가를 더 배워야
한다고 부산을 떤다.
도둑의 아들이란, 아직
덜닦인 수행자를 뜻한다.
다 닦이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도둑의 아들이란 말인가?
그렇다.
듣는 어감이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수행을 마치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모두 도둑의 아들들이다.
어쩌면 나는 한평생 마음공부를 하더라도 도둑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벗어나지 못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수행의 완성, 배움이
끊어진 절학의 경지는 너무나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은 계속 되어 져야 한다.
우리의 업식(業識)은 수많은 생을 거쳐오면서 쌓여 왔으므로 그걸 모두 닦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 가듯이, 우리의 마음도 결국엔 깨달음의 바다에 이를 것이다.
도둑의 아들에서 부처의 아들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도둑의 아들은 본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본래 불성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본래 가진 불성을 밝히는 것, 그것이 수행의 시작이자 끝이다.
<일일 소견>
누가 도둑의 아들이라 불러도, 걸리지 말아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부처의 아들이다' 라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때, 이제 심지(心地)가 굳어질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