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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호메로스 지음, 이준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10월
평점 :
책 제목:오뒷세이아
지은이: 호메로스/ 이준석 옮김
제 목: 전능(全能)과 자유(自由),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지난달 8월 20일, 중국에서 PC와 PS5로 하는 게임 하나가 출시 되었다.
< WU KONG, BLACK MYTH: 悟空, 黑神话( 오공, 검은 신화)> 라는 중국 4대 기서중 하나인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을 모티브로 만든 액션 게임이다.
이게 지금 중국 대륙에서 대박이 났다고 관영 매체까지 호들갑을 떨길래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게임 동영상을 봤는데 '와, 미쳤다' 는 한 마디가 저절로 튀어나왔다. 게임이라기 보다 마치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았다. 출시하자 마자 동시 접속 100만명, 출시 3일만에 1000만장이 팔리고, 게임 개발비 10배 이상의 수익을 냈다는게 이해가 됐다. (제작 기간 6년에 총 개발비 4억 위안(한화 750억원) 투입,현재 수익은 9000억원 이상) 나는 이런 표면적 흥행 보다 <검은 신화> 게임에서 손오공에 대한 서사(敍事)부분에 가장 큰 흥미를 느꼈다.
돌원숭이로 태어나 72개 도술을 익혀 천계(天界)를 혼란에 빠뜨리고, 그 벌로 오행산에 갇혔다가 삼장법사를 도와 천축으로 가서 불경을 가져오는 서유기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새로 쓰고 있다.
즉, 기존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넘어선 새로운 신화(神話)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손오공의 천명 (天命)을 이어 받은 손오공의 후손, 천명자(天命者)가 게임의 주인공으로 손오공이 죽을때 흩어진 육근(六根: 불교에서 말하는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뜻) 를 뜻함)을 찾는 여정이 게임의 주요 내용이다.
가장 압권은 엔딩 부분이다. 손오공의 흩어진 육근을 모두 찾은 천명자가 손오공의 상징인 머리에 긴고아를 쓰게 된다면 또 다시 윤회를 하게 되는 설정이다.
천명(天命) 과 자유, <검은 신화, 오공>의 주제는 윤회를 거듭하는 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자유 의지로 윤회의 생을
벗어날 것인가
하는 철학적 해석을 하게 만든다.
윤회를 벗어나 대자유인이 된 다는 것, 아주 심오한 뜻을 담아낸 수작으로 느껴졌다.
때마침 읽기를 마친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오버랩 되면서
그리스 신화속의 주인공 오뒷세이의 모험 여정과 <검은 신화> 에서 오공이 자유를 위해 천명과 맞서는 장면이 서로 묘하게 겹쳐 보였다.
오뒷세우스가 귀향을 하는 과정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의 여정은 크게 집으로 돌아오기 전의 방랑과 귀향 후 복수하는 걸로 나눠 볼 수 있다.
먼저 집으로 돌아오기 까지, 그의 모든 여정은 신들로 부터 벗어나는 것이 목적이었다.
키르케나 칼륍소 같은 여신들의 유혹에서 벗어 나야 했고, 식인 종족 퀴클롭스의 폴뤼페모스의 저주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저주를 몸소 겪어야만 했다.
이 과정 중에 트로이 전쟁 시절 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한편 고향에서는 오뒷세우스가 2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안 돌아오고 (사실 못 돌아오고 있었는데...) 행방조차
알 수 없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뒷세우스는 죽은 걸로 치부해버린다.
오직 사랑하는 그의 아내 '페넬로페' 와 아버지 얼굴 조차 모르는 아들 '텔레 마코스' 만 오뒷세우스가 살아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패악스러운 구혼자들은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를 차지 하기위해 오뒷세우스 집에서 구혼(求婚)이란 명목으로 날마다 행패 짓거리를
일삼았다.
결국 아들 텔레 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아버지와는 또 다른 모험을 시도 한다.
사실 나는 이 오뒷세우스의 이야기의 찐 주인공은
지혜의 여신 '아테네' 가 아닌가 싶다.
오뒷세우스가 겪는 모든 여정과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아들 테레 마코스, 인내로 기다리는 아내 페넬로페에 이르기 까지 여신 아테네는
보이는 현실 세계와 보이지 않는 신의 세계까지 모두 주도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호메로스는 이러한 여신 아테네의 개입을 절묘하게 그려 냈다.
지나가는 행인의 모습으로, 아는 사람의 모습으로 혹은 누군가의 마음 속에 들어 간다 던지, 필요한 사람의 눈에만 띄는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신의 개입을 현실 세계에 적극적으로 표현했다.
호메로스에게 있어서 신이란 우리 현실속에 늘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 것 같다.
어쩌면 올림푸스산에 사는 고대 그리스의 신들은 우리 인간들의 잠재된 무의식을 신이라는 모습으로 형상화
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의 무의식은 육체를 조정한다. 내가 인식하는 것은 사실 무의식의 표면화다.
그래서 신화 속의 신은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 그리고 인간이 활동하는 모든 영역을 관여하고 갈등을 중재하며 함께 공존할 수 있었다고 본다.
신과 인간의 공존은 결코 신화가 아닌 것이다. 바로 현실속에서 공존하는 것이 된다.
무의식이 바로 신이고 그걸 의지화 시키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 볼 수 있다.
신화 속의 신들은 마법적인 전능자는 아니었다. 그들도 바라는 바를 한번에 성취시키거나 한 순간에 뚝딱해서 만들어 내지 못했다. 늘 인간이 직접 경험과 체험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곁에서 도와 주거나
또는 방해했다.
신화 속의 신은 그 누구도 될 수 있고, 반대로 그 누구도 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오뒷세우스는 포세이돈의 아들 폴뤼페모스에게서 빠져 나올 때 자신을 '노바디', 즉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은 무엇이든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신들의 유혹과 시련을 '노바디' 가 된 오뒷세우스는 지혜롭게 빠져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운명을 따라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운명을 극복해야 한다고 하기도 한다.
어느것이 맞는지는 나는 잘 모르겠다. 인간은 그래서 방황하는 것이라.
그에 비해 우리는 신은 자유로울 꺼라 생각 한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은 그게 자유일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자신의 영역에만 매달린다.
풍요의 신은 풍요를, 바람의 신은 바람을, 바다의 신은 바다에, 지혜의 신은 지혜에, 전쟁의 신은 전쟁에 등등 모두 한 가지 영역에만 권능을 지녔다.
자신의 영역에서는 인간보다 말 할 수 없이 전능하지만 그 외의 영역은 관여가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전지전능(全知全能)하다면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전지전능과 자유는 같지 않다.
손오공이 72가지 둔갑술로 천계를 묵싸발로 만드는 난리를 치는 경지에 이르렀어도 여래에 의해 오행산에 500년이나 갇혔다.
신으로 숭배되는 지닌 그리스 신들 조차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전능을 넘어선 자유를 향한 의지에 대해 신의 권능은 미치지 못하는게 아닐까?
<검은 신화> 오공이 윤회를 벗어나려고 투쟁 하는 것과 오뒷세우스가 죽음을 무릎쓰고서라도 집으로 돌아 가려는 의지와 무엇이 다른가?
나를 규정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은 하나의 깨달음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호메로스를 진정 존경했던 <그리스인 조르바> 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 는 자신의 묘비 명에 이렇게 새겨 넣은것이 아닌가 감히 추측해 본다.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진정으로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무엇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유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그들은 결국 자유가 되었다.
그 어떤 신의 전지전능도 결국 인간의 자유를 향한 의지는 꺽지 못했다.
동양과 서양은 아주 오래전 부터 자유를 위한 투쟁 신화를 써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자유를 향한 마음은 계속 추구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인간의 참된 본성이 아닐까?
호메로스의 속뜻은 그렇게 독자들도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도록 창의적으로 그 의미를 공유하려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다. 그 의미를 캐내는 수고를 하면 호메로스의 속뜻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P8
그녀는 그의 기백에 힘과 용기를 넣어 주었고, 이전보다 더더욱 아버지를 떠올리도록 하였다. 한편, 그는 심중에서 이를 알아차리고 기백으로 경악하였으니, 그가 신이라는 직감이 들었던 것이다. - P32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 대신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중략.... 이제 우리는 그가 아버지의 귀향을 위해 어떻게 tele(멀리서) + machos(싸우는 이)가 될지 가만히 지켜볼 차례이다. - P59
그녀는 이렇게 기도하며 동시에 스스로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시작했다. - P64
모든 이방인과 거지들은 제우스에게서 오는 것이니, 보잘것없는 베풂이라 할지라도 사랑스러운 법이야. - P160
알키노오스의 궁전을 지키던, 황금과 은으로 맏는 개들과 달리 아르고스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뒷세우스는 물론이고 페넬로페, 라에르테스도 신의 도움으로 젊어지기도 하고 아름다워지기도 한다. 아르고스는 이 시에서 유일하게 실제 시간의 흐름을 가르켜주는 존재이다. - P428
제우스께 태어난, 라에르테스의 아들아, 허다한 계책에 밝은 오뒷세우스야. 그만두어라. 크로노스의 아드님, 두루 살피시는 제우스께서 네게 노여워하시지 않도록 모두가 겪는 전투, 그 다툼을 멈춰어라 - P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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