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경계 -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동서고금의 통합적 접근
켄 윌버 지음, 김철수 옮김 / 정신세계사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  무경계 ( No Boundary)

켄 윌버 지음/김철수 옮김

 

 

 

그리스 델포이 신전 기둥 벽에 세겨졌다는 글귀이자 아테네 거리에서 소크라테스가 진리를 구하는 당시의 그리스 청년들에게 툭툭 던졌다는 말, '너 자신을 알라' .

이때 '너 자신을 알라' 고 전해 들은 대화 상대는 문득 자신을 돌아보았을 것이다 .

그리고는 '나' 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 선불교의 화두중에 가장 대표 되는 공안, '이 뭐꼬?' 가 있다.

한자나 중국어로는 '시심마(是什么 쓰션머)' 즉 '이것은 무엇인가?' 라는 뜻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라는 화두가 선방에 계시는 경상도 스님들의 사투리로 '이 뭐꼬' 로 굳어져 버렸다.

지금 현재, 여기에서 보고 듣고 말하고 있는 이것은 무슨 작용인가?

무엇이 있어 나를 이끌고 다니는가?  무엇이 나를 이끄는가? 이게 과연 무엇인가?

이는 곧 '나는 누구인가?' 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 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영원한 화두이자 풀어야 할 숙제 처럼 느껴진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수 많은 철학적 논쟁과 종교와 영적인 차원, 그리고 오늘날 과학에 이르기 까지 '나' 란 존재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선뜻 내놓기가 어렵다.

어쩌면 지구상의 인간이 80억명이라면 80억개의 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주관적이기도 해서 만약에 보편적이고 타당한 대답을 원한다면 우리의 철학, 종교, 과학은 아마도 서로 일치된 견해를 내놓기가 어려워 보인다.

 

철학은 나에 대하여 존재와 실존을 연결하여 설명 할 것이고, 종교는 나와 신성을 연결해서 설명 할 것이고, 과학은 생명의 기원과 유전자를 연결해서 설명할 것이다.

 

 

 

이 책 <무경계> 에서 켄 윌버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명제에 대한 동서양 철학, 심리학, 종교와 영성에 까지 이르는 광대한 분야를 하나로 귀결시키는 통합을 시도한다.

 

그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의식의 영역과 그에 상응하는 심리학의 각 분야를 스펙트럼화 시켜 명제에 대한 답을 자신만의 통찰으로 내보이는 작업을 한 것이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모든 답은 정확히 '나인 것(self)'과 '내가 아닌 것(not-self)' 사이에 경계선(Boundary)을 긋는 기본적인 절차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나/ 나 아님' 의 경계는 '나의 피부 경계선' 으로 나누어 진다고 한다.

이런 표현은 생소하지만 '나'는 내 피부 경계선 안에 해당되는것이고 '나 아님'은 내 피부 밖이라는 표현은 참신하다.

또한 경계는 선()을 의미하고 선은 구분과 분별을 뜻하며 이는 확장시키면 곧 전선(戰線) 과도 같아 경계는 '나/ 나아님' 의 투쟁의 상징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란 정체성은 내가 어디에 그 경계선을 긋느냐에 따라 달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정체성은 하나가 아니며 수준에 따라 각기 다른 유형으로 나뉘어진다.

그게 바로 정신 의식의 스펙트럼이자 이 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내용이다.

나/ 나 아님에서 출발한 의식은 '에고' 또는 '자아상'을 정체성으로 하는 페르소나와 그림자로 나뉘게 된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란 뜻의 '외부로 드러난 인격'을 말한다.  '나' 가 페르소나의 일부를 자신과 동일시 하면 나머지 '나가 아님' 은 그림자로 나뉘게 된다.

 

작가는 이러한 수준을 페르소나 수준이라 정했는데 페르소나 수준에서는 나 아님을 상징하는 그림자는 페르소나와 대립이 되는 관계로 나와 저항을 하며 경계를 긋는다는 것이다.  즉 저항은 경계를 상징한다.

 

이러한 저항은 페르소나, 자아수준, 켄타우로스 수준 까지 이어지는데 그림자, 몸, 환경 ,초개아 순으로 계속 존재하며 각각의 다른 수준에서 저항을 수용 하게 되면 경계는 무너지고, 즉 저항이었던 경계가 없어지면 계속해서 의식의 스펙트럼은 확장을 하게 된다.

작가가 고안한 의식의 스펙트럼 도표를 보면 보다 쉽게 이해가 되는데 결국 작가는 인간의 의식 수준마다 각기 다른 경계가 있고 이는 곧 저항을 뜻하며 이러한 경계가 결국은 없어지게 될 때 의식은 확장한다는 것이 요지가 된다.

 

 

 

 

도표를 보면 위에서 출발하여 아래로 향하는 하향으로 표시를 했는데 이는 각 수준 의식의 대립이 무너질 수록 작가는 더 깊어지는 것이라 본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의식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점점 내려 가는 하향으로 표시를 한 것 같다.

 

켄 윌버는 이러한 경계를 실제하는 것으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것이라 봤다.

선과 악, 성공과 실패, 삶과 죽음, 쾌락과 고통, 가치와 상실, 자기와 타인, 사랑과 증오, 낮과 밤에 이르기 까지 모든 한쌍의 대극은 긍정과 부정으로 나뉘게 되는데 부정적인 면을 근절 시켜야만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떠한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건에 대한 양극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대극은 암묵적인 동일성을 공유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양극은 결코 분리할 수 없으며 상호 의존적이 되는 것이며 결국 이런 경계는 사실은 없다는것, 결국 선불교적 표현으로는 둘이 아니라는 것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주체와 객체, 시간과 공간 또한 서로 잘 짜여진 통합체 이자 하나의 연속체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물리학의 실제에 대한 대극의 일치와도 상통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켄 윌버는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경계는 결국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것이다.

결국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의식의 스펙트럼의 수준에 따라 답은 수준별로 다르게 답할수 있으며 그 수준이 깊어짐에 따라 결국은 '합일의식' 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는 철학적이며 영적인 수준에서 접하게 되는 현자들의 모순 처럼 보이는 수많은 답들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는 곧 수준별에 따른 답이 되므로 그런 모순되어 보이는 답들이 사실은 틀리지 않다는 작가의 의견에 공감을 할 수있게 된다.

 

우리는 시간의 존재를 넘어 오직 '스쳐가는 현재( 눙크 플루엔스)' 에서 '영원한 현재( 눙크 스탄스)' 로 확장되는 순간이 될 때 결국엔 합일의식의 본질, 무경계에 도달하며 여기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되리라 내다봤다.

 

이러한 작가의 통찰은 작가가 불과 23세(1977년)때 발표한< 의식의 스펙트럼> 이라는 책을 통해 이루어 졌는데 약관의 나이에 동서양을 넘나들며 학술적으로 자신만의 통합적 사상을 전개 했다는데 놀라운 면이 있다.

 

켄 윌버,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의 영성 철학가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류 의식의 발달과 진화에 대한 통합이론의 사상가 였다.

책에는 작가의 사상을 형성한 수많은 심리학과 의학, 정신 계발 서적들에 대한 추천이 있다. 

그런데 추천한 책들은 60~70년대 책들이라 이미 절판 되었거나 아마도 현대 심리학과 의학의 발전, 정신 분야의 진화에 따라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부분도 분명 존재 하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작가가 책에서의 내세운 내용이  50년이란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도 수정된게 없을 정도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켄 윌버는 그 당시 이미 세상과 인류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이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냉정한 시각으로 본다면 작가의 동서양을 아우르는 학술적인 통합적 통찰은 경탄을 하지만 깨달음에 대한 부분은 본인의 체험이 아닌 알음알이로 깨달음을 이론화 시킨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떠오른다.

 

물론 깨달음은 각자의 영역이다.

켄 윌버의 의식의 스펙트럼 처럼 깨달음의 영역도 분명 스펙트럼 처럼 존재하리라 생각된다.

아마도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언급하면 '십지보살'이니 '여래지' 를 언급하면서 단계별, 수준별로  깨달음을 철저하게 분류를 하고 있다.

아직은 그의 사상에 대한 다른 책을 읽어 보지 못했지만 이미 확보한 <통합불교>, <모든 것의 역사>를 계속해서 좀 더 읽어 본후 판단해야 겠다.

 

다만 그가 지금으로 부터 반세기전에 70년대에 이런 사상을 내세운것은 분명 놀랄만한 업적인 것임에는 확실하다.

그래서 켄 윌보가70년대에 이 책을 쓴 배경에 대해 생각을 해봤다.

 

미국의 60년대 후반에서70년대는 그러한 의미에서는 독특한 시대인것 같다.

69년도 미국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하며 인간의 작은 발자국을 남기지만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하게 되는 시기를 맞이한 시점이다.

하지만 이시기 미국은 베트남에서 명분도 없는 전쟁에 대한 당시 젊은이들의 반전의식과 정신적인 방황은 반항으로 이어져 히피즘 문화가 최고저에 이르렀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처럼 미국은 2차 대전이후 세계의 초강대국 반열에 들어섰고 전세계를 마음먹은대로 움직일수 있는 물질문명이 가장 발달한 국가 였었다.

그런데 반대 급부로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공황을 맞이한 시기 이기도 했다.

히피즘의 자유와 반전사상은 70년대 넘어 오면서 약물의 남용및 사상은 급진 과격적 성향으로 변질이 되어 버리고 그에 따른 비판과 재제를 맞이 하게 되었다.

 

결국 이시기의 히피즘의 정신적인 방황은 동양적인 요가나 불교 사상에서 극복하고자 한 시도가 보이기 시작 했다.

즉 방황의 시기 동양의 사상은 서구 물질문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바라봤다는 것이다.

때마침 영화계에는 '브루스 리(이소룡)'의 등장으로 서양인의 동양인과 문화에 대한 경계가 점차 옅어지는 시점의 출발이 된 게 아닐까 싶다.

 

또한 이시기 불교가 종교가 아닌 명상의 한 분야로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선불교는 60년대 부터 시작해서 샤쿠 소우엔('나스메 소세키' 의 선 스승) , 스즈키 다이세쓰(선을 일본식 발음 '젠Zen'이란 명칭을 사용) , 스즈키 순류('스티븐 잡스'의 선 스승) 로 이어지는 선사들이 미국에 알려 지면서 '젠(Zen)' 의 열풍을 이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때 이어진 일본의 젠불교는 하나의 문화로 미국내 대중적으로 자리 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는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숭산 스님께서 도미(渡美)를 했는데 이때 일본의 젠불교는 우리나라 선()불교가 들어서는 교량 역할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무경게>에 소개된 선사상은 스즈키 순류의 <선심초심>을 많이 참조했다고 켄 윌버는 밝히고 있다.

(다만 참조한 일본 선불교가 전체 선불교를 대표 하는것 같아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면이 있다. 아직 중생심이 남아 있으니 이것 조차 둘로 보는 것이라... )

 

결국 70년대 시기는 물질문명의 한계와 동양 정신문명의 대안의 전환기라 볼 수 있을듯 하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켄 윌버의 사상을 이해하면  약간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건 지극히 내 생각이다. (아무 하등의 관계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오늘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 현상이라고 본다.

정치, 경제, 환경 분야등 모든면에서 양극화로 분열하고 나뉘고 있다.

하지만 통합이란 본질적인 열망도 양극화라는 틀 가운데 본래 함께 하고 있는듯 하다.

이미 수많은 학문의 경계도 무너지고, 계층 세대간의 벽도 무너지고, 수많은 고정 관념의 경계도 동시 다발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분열과 통합은 결국 둘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하나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파도가 아무리 많이 쳐도 결국 바닷물에 불과 한것이다.

그 바탕은 한 바다 였다.

 

 

 

 

이책 <무경계>에서 제시한 통합이란 관점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성찰과 함께 현대 사회의 양극화라는 문제점을 해결 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둘이 아니다.

본래 경계는 없다.

No Boundary.

 

성장이란 기본적으로 자신의 지평(地坪)을 확대하고 확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 P45

창세기에 따르면, 아담에게 부여된 첫 번째 과제는 자연계에 속하는 동식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었다...중략...
그는 다양한 동물 집단 사이에 마음속에서 ‘경계를 긋는‘ 일을 배워야만 했다....중략...
마음속에서 구분 짓고,도식화한 것은 바로 아담이었다. 아담은 최초의 위대한 지도 제작자였다. 아담이 경계를 그려냈다. - P49

경계란 본래 환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 P66

당신이 가진 유일한 도구가 망치일 경우, 모든 것은 못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당신은 실제로 경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계를 만들어 낼 뿐이다. - P86

‘초월적 나‘를 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무슨 수를 써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신의 눈은 자신의 눈 자체를 볼 수 있겠는가?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다만 자신의 기억, 마음, 몸, 감정, 사고와의 잘못된 동일시를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깨는 일뿐이다. - P228

본증묘수(本證妙修)는, 진정한 영적 수행이란 ‘깨달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부터‘ 샘솟아 나오는 것임을 뜻한다.수행이 합일의식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수행은 처음부터 사실상 언제나 합일의식이다. - P2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