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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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극단적인 어려움이 닥쳤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모두가 평범하고 젠틀하며 온화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특히 형편에 여유가 있을 때는 더욱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적당히 베풀며 "좋은 사람"의 옷을 입고 다니게 됩니다. 그러나 일단 어떤 식으로건 위기나 위협이 닥치면 극적인 태도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가족이라는 테두리는 매우 견고하고 단단해 보입니다. 어떤 어려움에서도 서로를 지켜주는 튼튼한 우리와도 같은 안정감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더욱 그런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러나 의외로 깨지고 무너지기 쉬운 연약한 제도인 것도 사실입니다.

 

   이 소설 [제이컵을 위하여]에 등장하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앤디 바버"는 직업이 검사입니다. 적절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여유가 보장되는 직업군이라 하겠습니다. 그저 "우리 아빠"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아내인 로리는 그야말로 사교성 좋고 착하고 좋은 아내이자 엄마입니다. 그리고 아들 제이컵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외골수적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끔찍히도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 드러나고 묘사되는 면면을 살펴보아도 제이컵은 그리 매력적이거나 훌륭한 아이는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아이로 인해 평범함을 넘어 부러운 이 가정에 평화가 극단적으로 깨집니다. 깨어지고 헝클어지며 침몰하는 배와 같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부부의 노력은 눈물겹습니다. 하지만 가정을 지키는 노력은 안타깝게도 힘을 모으는 방향이 아니라 각자 입장과 기질과 형편에 따라 매우 상반된 태도로 일관합니다.

 

   앤디는 살인 피의자로 재판에 회부된 아들을 보며 무너져내리고 있는 아내 로리에게 가쿠타 미츠요의 [공중정원]에서 등장했던 남편, 그리고 할머니가 부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 숨겨왔던 자기 가족의 내력을 밝혀버립니다. '나는 고백했으니 당신이 받아들이라. 받아들이고 안받아들이고는 당신 선택이며,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 이런 느낌이 되겠죠. 그리고는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병적으로 강인하게 가족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반면 사교적이고 상냥하던 아내 로리는 받아들이기는 너무 힘든 상황앞에 스스로 내면이 무너지며 남편에게 원망의 화살을 끊임없이 날립니다. 당사자 제이콥은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매우 차분한 태도를 보입니다. 한 가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처한 가족 각 구성원의 반응과 태도가 제각각입니다. 과연 누가 옳은 걸까요? 누가 더 적절한 것일까요?  

 

 

#2. 세상에서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은 우리부모가 아닐까?

 

   놀랍게도 부모는 대부분 자기 자식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나보다 더 잘 알 사람이 어디있냐? 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건 대부분 초등학교 정도 이전에 한해서만 사실일 거 같습니다. 당신은 혹시 청년으로 자란 어느 시점에 당신의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는 이래저래한 아이야'라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란 경험이 없으십니까? 저는 대학시절 아버지가 제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이에게 설명하며 자신만만해 하던 모습이 정말 황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 말고 누구 다른 사람이야기하나?' 싶을 정도로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아주 유년기 시절 나의 단적인 모습으로 나를 단정지어버린 느낌이랄까? 그런 것이지요. 이런 성향은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믿음에 근거하는 것 같습니다. '내 아이는 이런 아이였으면, 내 아이는 이렇게 행동했으면..'하는 바램이 투영된 결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 비춰보면 직장일이 바빠 아이를 자주 보지 못하고 놀아 주거나 대화를 깊이 나누기 힘든 구조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몰 이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앤디는 아들 제이콥이 한없이 착한 아이라고 확신을 넘어 맹종합니다. '내 아이는 이렇다. 이래야 한다'라는 믿음. 앤디는 그저 '내 아들이니까 살인을 했을리 없다'라는 믿음을 끝까지 이어갑니다. 반면 아내 로리는 어린 시절부터 보였던 아이의 성향을 되새기며 점차 '우리 아이 짓일 가능성이 있다'쪽으로 기울어갑니다. 이런 간극이 점점 부부를 갈라놓습니다. 누구의 시각이 맞는 것일까요? 누가 아이 제이컵을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요? 여튼 세월이 흘러도 아이를 가장 오해하고 모르는 사람은 부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우리 일상을 깨며 극적으로 등장하는 삶의 잔인성을 마주하다.

 

   우리 일상이란 것은 늘 평범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하고 별반 특성이 없는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탓에 일상은 우리에게 적절한 안정감과 평안함을 주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상성을 깨고 우리의 삶의 모양새를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것이 짧고 극적인 불행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좀더 극적이고 평범하지 않은 설정이지만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질병이 찾아온다거나, 직장을 잃는다거나, 아이가 심하게 아프다거나 하는 상황이 바로 그런 예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일상을 깨는 불행한 일이 닥치면 우리 인생자체에 대한 잔인성, 냉정하고 냉소적으로 반응하는 지인과 주변 인물들의 태도에서 오는 잔인성, 각종 SNS나 미디어를 통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를 마음껏 재단하는 익명의 잔인성 등에 마주 대하게 됩니다. 여기에 더해 가족 구성원 간에 서로를 탓하고 공격하는 이기적인 잔인성 또한 만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약자에게는 무서우리만큼 잔인합니다. 또한 무언가 약점이 드러난 사람에게 더욱 가열차게 잔인함을 드러냅니다. 누쿠이 도쿠로의 '미소짓는 사람'에서 처럼 사람들은 무언가 불확실하고 간단히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빨리 범인으로 몰아붙이고 공동의 처치를 해버리면 마음의 무거움을 덜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겪고 있던 그렇지 않던 이러한 다양한 삶의 잔인성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속에 극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런 잔인성의 피해자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불러 일으킵니다. 저는 죽는 날까지 이런 잔인한 현실에 정면으로 마주하게 될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4. 1Q84의 세계로 들어서면 되돌아 갈 길이 없다?

 

   우리의 삶을 뒤흔들었던 잔인한 일들이 해결되면 우리는 그 불행이 오기 전과 동일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그 무거운 짐이 빨리 없어지기만을 바랍니다. 그것만 해결되면 모든 일이 잘 될것만 같은 희망을 가져보게 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난 물질처럼 원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노력하면 할수록 각자 구성원의 마음이,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변해버린 현실의 한계가 강고한 벽처럼 막아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 두개의 달이 뜬 세상으로 건너가버린 것처럼 겉보기에 똑같은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불행을 경험하기 전과 그 이후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 것처럼 되돌릴 수 없는 경계가 되고 맙니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는 일단의 사건이 해결 된 이후 상처를 봉합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독자의 시선은 참으로 안타깝기만 합니다. 심지어 상처를 잊고자 떠난 여행지에서 또 한번 비슷한 불운과 조우하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읽는 이를 멘붕으로 빠뜨립니다. 이 쯤되면 이것이 불운인지 필연인지 어지럽기만 합니다. 이 상황을 대하는 부부의 태도는 다시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역시나 의연하게 아들을 옹호하고 믿으려는 믿음의 태도를 보이는(그가 실제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앤디와 원래의 의심을 확신으로 굳히며 더욱 극한 선택을 하게 되는 로리... 저는 누가 맞는지, 누가 옳은건지 아직까지도 결론을 못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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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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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잔잔하고 차분하지만 멈출 수 없는 긴장감이 넘치는 명작

 

   언젠가부터 TV를 통해 음악을 경연하는 프로그램이 오디션 프로그램과 함께 붐을 일으켜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마도 경연프로그램은 "나는 가수다"가, 오디션 프로그램은 "슈퍼스타K"가 시발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런 경연 프로그램과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나름의 코드가 있습니다. 오래된 명곡을 감각적으로 잘 편곡하고, 후렴구에 폭팔적인 부분을 추가해서 기-승-전-결 구조로 짜서 관객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두가지의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한가지는 "와, 저 곡을 저렇게 멋들어지게 편곡했구나, 감각적이고 현대적이다"하는 감탄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늘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다른 한가지는 '아.. 역시나 원곡이 최고로구나. 아무리 멋져도 원곡의 그 정취와 감성은 흉내내는 것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곡을 만들어서 크게 히트를 치려면 필수불가결한 두가지 요소를 가장 중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후크"와 "사비"인데, 반복되는 부분으로 쉽게 따라부르고 중독성 있게 해야하고, 후렴에서 빵 터트려서 '와우~' 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세계적으로 오랜시간 동안 사랑 받는 명곡들을 보면 의외로 잔잔하고 부드러운 곡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예전에 소개드린 '사이먼 & 가펑클'의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같은 곡이나 갠자스의 [더스트 인더 윈드] 같은 곡이라든가, 심지어 마이클 잭슨의 곡중에도 잔잔한 곡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조비의 [(You want to) Make a Memory]도 생각이 나네요

 

   장황하게 음악에 대해서 말씀드린 이유는 일본 미스터리의 선구자 겪인 세이초옹의 첫 장편소설이라 할 수 있는 [점과 선] 역시나 올타임 명곡들처럼 잔잔하고 담백한 느낌의 명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와서 보면 무언가 좀 심심한 구석이 있고 화끈한 맛이 없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이 1957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으로 저보다 20년 형님인 작품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더 즐겁게 읽으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당시로서는 거의 시초인 사회파 추리소설이지만 지금에 와서는 워낙 다양하고 정교하게 발전을 해왔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어지고 긴장감이 끊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작품 [점과 선]은 대단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작이자 정수

 

   사실 사회파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라고 말을 하지만 제대로된 사회파 추리소설을 얼마나 읽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거 뭐, 그냥 그런거 같다는 거지 뭘 따져?"라고 해야할 만큼 딱히 읽어본 걸 꼽으라면 궁색해 집니다. 그러나 [점과 선]을 읽고나니까 제가 정말 사회파 미스터리가 잘 맞는다고 확신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본격 추리소설이나 하드보일드 등과 비교하면 나름 구분되는 포인트들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점은 작가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해석된 당시의 시대상과 인간들의 부조리와 모순, 애환들이 잘 녹아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통해서 독자인 제가 제 나름대로 작가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반응을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맞장구를 칠 때도 있고, 나와 무관한 일로 여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작가의 시각이 편협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점과 선]에 등장하는 배경은 "oo성 "으로 표현하고 있는 정부기관의 부정와 부패,  그리고 부정과 부패를 부추기는 업체들과의 유착관계가 핵심입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세이초옹이 말하고자 하는 문제가 드러납니다. 조직적인 부정과 부패가 제 3자를 통해 드러날 위기에 놓였을 때, 권력자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문제인데,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방식으로, 결국 힘없는 실무자가 희생되는 사회적 착취구조를 적나라하게 나타내 줍니다. 그리고 얼마나 철저하게 계획적으로 이러한 범죄가 일어나는지를 고발합니다. 이 때 어떻게든 성공하고픈 하위직 관리의 심리상태나 동기도 한 몫하게 됩니다.

 

   지금이야 과학수사가 발달해서 지문이나 머리카락, 또는 CCTV, 모든 이동수단에 따라붙는 전산자료 등으로 범죄자가 어쩔 수 없이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통해 범죄 사실을 밝히기가 수월하지만 그 당시는 그저 탐문하거나 증인의 증언 등에 의존해야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던지라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추리를 해 나가고 확인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역시나 사회파 답게 그 과정에 필연적으로 늘 따라오다니는 것이 "왜?"입니다. 범인은 왜? 피해자는 왜? 이 사람들은 왜? 늘 이런식의 이유가 따라붙게 되죠. 사회파에서 범죄동기와 이유는 매우 중요한 팩터입니다.  

 

 

#5. 수퍼 히어로가 없어서 매력적인 미스터리 

 

   다행히 세이초옹의 추리소설에는 초울트라 슈퍼 우주 히어로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제가 홈즈를 필두로 영웅 사기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물을 어지간해서는 읽지 않는 이유는 지나치게 초현실적인 캐릭터가 몰입과 공감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딴나라 세상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요? 어떤 말도 안되는 사건이 일어나도 '에이, 주인공이 알아서 다 풀어낼텐데 뭘..'하고 긴장하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이 소설 [점과 선]에는 그런 슈퍼 히어로가 전혀 없습니다. 혼자 힘드로 척척 헤쳐나가는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주인공이 처음부터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주조연 겪인 늙은 형사 도리카이가 먼저 등장해 사건 전체를 이어가는 범인의 트릭에 의문을 제기하고는 뒤이어 등장한 주인공 미하라에게 슬쩍 바통을 넘겨줍니다. 그렇게 등장한 주인공 미하라도 딱히 히어로는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게 성실하게 하나하나 조사를 해가다가 소소하게 하나씩 간과했던 사실을 발견하고 문제를 조금씩 조금씩 풀어갑니다. 그러다가 상사에게도 도움을 받고 다른 서에서도 협조를 받고 처음에 등장했던 주조연 도리카이에게 다시 조언을 얻고 이러저러해서 사건을 해결하고는 다시 두 사람이 손잡고 같이 등장해 독자에게 인사하고 퇴장하는 방식입니다.  

 

   그 흔한 등장인물간의 갈등도 없고 화목하고 협조적으로 트릭 파헤치기에만 몰두하는 직선적인 구조입니다. 그래서 단조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주인공의 성향은 독자에게 쉽게 동일화와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멍한 경우가 많은 저같은 사람이 미하라가 머리를 싸매는 모습에 공감하다가 '아' 하며 뭐라도 하나 알아채면 '그래 그게 뭔데? 뭔데? 뭐???' 이러면서 뭔 내용인지 궁금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조가 재미있네 없네 따질 형편이 못되는 것입니다.  

 

 

#4. 세이초의 작품에 늘 등장하는 철도,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세계

 

   세이초의 작품에는 늘 이동수단이 많이 등장합니다. 특히 철도가 중요한 요소이자 이야기에 등장하는 각각의 장소들을 공간적으로 이어주는 선과 같은 역할을 담당합니다. [점과 선]에서는 '4분간의 트릭'이라고 불리는 열차 시간표를 이용한 중요한 트릭이 등장합니다. 열차의 출발, 도착시간과 역들을 적절히 잘 이용해서 시 공간을 교차하는 핵심 세계를 형성합니다. 이 트릭을 풀어헤치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혼다 테스야의 '스트로베리 나이트'시리즈에서 점과 선에 관련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같은 10계 주임인 쿠사카와 레이코는 서로 다른 성향으로 수사를 합니다. 여주인공 레이코의 경우는 감으로 범죄자의 심리를 예측하는 감이 아주 뛰어납니다. 그러나 쿠사카의 경우는 철저하게 사실에 근거해 불확실성을 줄여나가며 사건의 핵심에 다가갑니다. 쿠사카는 늘 감을 앞세운 레이코의 추즉을 들으면 늘 한결같이 지적합니다. "레이코, 그건 너의 예단일 뿐이야. 사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점과 같은 단서들에 불과해. 그 단서들을 이어주는 선을 찾아내기 전까지는 추측은 위험하다." 쿠사카의 말처럼 각 장소, 시간, 또는 이동수단 등에 부여된 각각의 점과 같은 사소한 단서들의 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서 관련있는 단서들끼리 정확히 이어야만 선으로 이루어진 실체가 닭인지 돼지인지 코끼리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세이초의 첫번째 장편 [점과 선]을 읽어가다보면 각각의 점들의 관계를 파악하고 유추하는 과정중에 실수와 혼란을 겪으면서도 꾸역꾸역 선으로 연결해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시선으로 이 과정을 즐기며 이야기속에 서서히 드러나는 이해관계와 인간의 본질에 관한 문제들을 자연스레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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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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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70세 노인의 내면을 표현했지만, 작가 김영하가 떠나지 않는 소설

 

   평소에는 잘 읽지 않는 소위 핫 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갑자기 이책을 집어든 이유는 며칠전 아내와 함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나름 감동한 데다가 위대한 개츠비의 책 내용이 궁금한 마음에 그 책을 번역한 김영하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위대한 개츠비 에피소드를 들은 터라 작가 김영하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는데, 정작 김영하 작가의 책은 한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책 [살인자의 기억법]은 잘 읽힌다는 평이 아주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실망스럽다는 평도 꽤나 있었던거 같습니다. 일단 저에게는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 주인공이 70대 노인이며 전직 킬러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점, 기억장애, 기억퇴행 현상으로 파생되는 문제로 인한 주인공의 내면고백,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었다는 점이 훌륭했습니다.  

 

   1인칭이다보니 주인공의 서술에 따라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형식으로 책을 읽으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주인공의 캐릭터상 특징이 전반에 걸쳐 잘 설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주인공에 대한 몰입보다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저자인 김영하 작가입니다. 매 장면이나 독백을 대할 때마다 '70세 노인의 심리상태를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실감나게 표현했을까?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내었을까? 아니면 그저 설렁설렁 이까짓꺼 하면서 쉽게 써나갔을가?' 이런 생각들 말이죠. 다 읽은 후에도 계속해서 '저자는 무엇 때문에  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써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술술 잘 읽었지만 쉽지 않은 소설이었습니다.    

 


#2. 시대의 흐름을 잘 캐치한 이야기 서술방식 

 

   이 소설의 서술방식이랄까? 편집이랄까? 여튼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한국 고유의 여백의 미를 잘 살렸다고 해야하려나? 한페이지를 설렁설렁 부분부분 사용하는 기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인칭 시점의 일기 혹은 메모 같은 기록방법으로 진행하는 시도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아날로그 타입으로 생각하자면 메모지, 포스트잇에 적힌 메모들을 한땀 한땀 옮겨적은 듯한 느낌입니다. 디지털 타입으로 생각하자면 SNS, 이를테면 트위터나 페북, 미투데이, 미니홈피 등등에 기록한 짧은 이야기들을 옮겨 적어놓은 듯한 인상입니다. 역시나 이런 정도의 호흡으로 읽어나가는 것은 SNS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것이지요. 아주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방식입니다.  

 

   대단할 거 없다면 없는 방식이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니 어쨌거나 서술기법이 독특하고 신선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부합하는 적절한 기법을 지혜롭게 개발하는 스타일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책을 즐겨읽는 독서가들에게 이 방식이 과연 호응을 얻을 것인가 인데, 글쎄요. 뭐라 딱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안먹히면 뭐 그냥 쓰던데로 또 쓰면 되는 것이니까요^^  

 

 

#3. 무거운 주제, 심각한 이야기, 동의는 하지만 재미없는 이야기의 한계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 김병수의 처절한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균열과 붕괴를 밀도 있게 잘 묘사하는 이 소설은 다소 무겁고 심각한 주제 의식을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코드와 버무려 나름 세심하게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결말부에서 그 동안의 진행을 뒤흔들만큼 반전 내지는 혼란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금세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치밀한 사전 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읽는 자의 재미입니다. 읽는 행위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다 읽고나서도 먹먹한 무언가가 남거나 머리속이 뻥터지거나 충격에 휩싸인다면 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읽는 동안 매우 재미지고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 자체의 메세지 보다는 오히려 메시지를 담는 형식, 풀어내는 방법, 작가의 의도 등이 더 부각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것이 단점인지 장점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읽을 때의 즐거움이라는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꽤나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살인자의 기억법]이기 때문에 많이 읽혔다기 보다는 [김영하]가 썼기 때문에 이정도로 읽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이런 소설도 썼어? 이런 느낌인 것이죠.  

 

 

#4. 제발 해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씁시다. 본인의 지성자랑 한마당이 아니지 말입니다.

 

   점점 저를 까칠하게 하는 것들이 속출합니다. 이 소설을 그저 저의 페이스대로 잘 읽었습니다. 제가 딱히 지성인은 아니지 않겠습니다. 태생이 공돌이다보니 한계가 분명합니다. 김영하 작가의 깊은 고뇌의 산물인 이 작품을 그 의도까지 적확하게 파악하는게 만만치 않겠지요. 그러나 전문 문학평론가의 해설 부분에서 또 한번 (개) 짜증이 났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부분은 [해설]이란 타이틀 보다는 [누가누가 잘읽었나 자랑하기]란 타이틀이 적당할 거 같습니다. 해설이 소설보다 더 어렵고 난해합니다. 이 해설이 작가의 의도와 정확히 부합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럼 이 소설을 접하는 대부분의 독자가 비슷하게 이해하겠냐고 또 한번 묻고 싶습니다. 해설을 이런 식으로 지성자랑 한마당으로 써놓으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만의 독서가 아니라 교과서 읽고 자습서 해설로 공부하기 꼴이 되어버립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모두를 끼워 맞추지 맙시다. 이 책에 실린 해설보다 적어도 백배는 더 일상언어로 쉽게 쓰여져야 합니다. 아니면 [전문가 평론]이라고 타이틀을 달아서 출간하시기 바랍니다.  

 

   매우 많이 아주 짜증스러웠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저의 열등감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지만 과연 이 땅에 그 해설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들지 않을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소설보다 해설이 더 난해한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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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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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조낸"과 "시바"가 난무하는 찌질코스프레,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이거 참, 난감합니다. 몇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이 양반.. 정체가 뭐야?'라고 하며 저자 약력을 보니 중앙대 문창과.. 박사과정. 92년에 신춘문예 당선, 2010년 [상처적 체질]이라는 시집으로 화제,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작가.. 언듯봐도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분이 거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류환 같은 동바(동네바보)처럼 왠지 찌질해보이는 멘트들을 마구 쏟아놓습니다. 서평책이 아니었으면 두세 페이지 읽고 던졌을 책입니다. 50페이지에 도달했을때 '내가 과연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거뭐... 안읽고 읽었다고 리뷰를 쓰는 것은 체질적으로 불가능한지라 득도의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책의 반환점인 150페이지를 넘겨서야 이 작가의 찌질 코스프레 코드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이런 거죠. '시인님 같은 내공 30갑자 이상 소유한 은둔의 초고수가, 그것도 얼마전에 본인의 내공을 이미 널리 알리시어 고수의 면모를 밝히신 바 있는 천재께서 왜?.. 굳이 찌질찌질 술쟁이, 가난뱅이 코스프레를 안써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읽어줄텐데 이런 기법을 쓴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통 모르겠네..' 아, 진짜, 이 분의 일상 산문을 쭈욱 읽어가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 참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가식이 없다, 통렬하다, 속이 시원하다. 등등의 평을 쏟아낼 것이 뻔히 보이는 이 시점에 왜 나는 짜증이 나는 것일까?', '나는 지나치게 재미없고 보수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등등. 글을 읽는 내내 저를 불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것입니다.  

 

 

#2. 일상과 산문과 시가 뒤죽박죽 갈지자 보행을 하는 편집의 난감함이여...

 

   이런 류의 책에 대해 그다지 선호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좀 더 단순화 하면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썼던 글을 그대로 옮겨 활자화된 단행본 책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반감이 좀 있다고나 할까요? 저자가 책으로 내기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쓰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쓰임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페이스북의 글이란 일련의 주제를 가지고 순서를 생각해서 한꼭지 한꼭지 적어가는 글일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때의 이슈나 일상, 단상 등을 거침없이 쓰는 형태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활자화 해서 인쇄된 단행본으로 만들었을때 그것을 놓고 완성도랄까? 적절함이랄까? 이런걸 생각하다보면 이건 뭐 난잡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당황스럽게도) 이런 식의 편집에 대해서 '좋다', '읽기 편하다' 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 젊은 분들이 SNS를 통해 세상과, 사람들(그 대상이 실제하는 사람이건 소프크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에 등장하는 가상의 디지언트건 상관없이)과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보니 진지함은 불편하고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것을 편안해 한다는 것이지요.  

 

   읽기에 편안한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떤지를 논하기에 앞서 저에게 이 편안한 것이 매우 불편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자가 누구가 되었건 간에 활자화된 책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상황 자체가 불편했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 이 책에 표기된 비속어, 문법 파괴 등의 표현은 원문을 쓸 당시의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을 살리기 위해 저자와의 협의 아래 최소한의 범위에서 의도적으로 허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책의 본문을 보기도 전에 이 문장 하나로 심사가 뒤틀렸습니다.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이라니 이 무슨 개 풀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무식한 나는 파토스가 뭔지 모른단 말이다.' 이런거죠. '거참, 시작도 하기전에 어려운말 하고 있네. 그런거 전달해서 비속어, 문법 파괴를 하고 싶었으면 책을 왜 내나? 페이스북 주소를 알려주고 거기가서 원문의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을 고려해서 읽으시라고 공지를 쓰면되지' 하고 까칠과 삐딱의 경계에서 까닥까닥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님은 아무래도 이미 자신이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던 것들에 대해서 수정을 가하는 행위를 하기 싫으셨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감정과 정서가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라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저는 표현 매체가 바뀌면 좀더 매체에 맞게 정제된 표현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3. 시인은 시인이다. 시인은 시인이야...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분이 참 시인은 시인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산문의 형식은 비록 불편했을지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자기부정과 자기풍자를 통해 세상의 모순에 대해서 넌지시 비틀고 있었습니다. 정말 좋았던 것은 이 책의 중간 중간에 수록된 "시" 들이었습니다. 특정 시를 인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다 훌륭했습니다. 시랑 친하지 않아 몹쓸 감성인 제가 읽어도 공감이 가고 좋았는데 이 시들을 통해서 저자의 깊은 감수성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기 PR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언론을 통해 왜곡된 정보를 흘리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없고 "나"만 존재하는 듯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스스로를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며 술 퍼마신 이야기, 일상의 찌질한 이야기등을 쏟아내며 가진 것 없이 상처받는 사람들을 우회적으로 위로하는 내공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가르침이 난무하는 시대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며 오히려 저자를 위로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줍니다. 상대방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만으로 본인의 마음이 자연히 치료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 책은 저자의 깊은 내공이 심오하게 담긴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낮게 표현함으로써 난잡하고 혼란한 세파로부터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저자의 영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앞집 때문에 전망 가린다고, 뒷집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고, 옆집 때문에 차 댈 데 없다고, 윗집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고... 조낸 불만과 질시와 분노에 찌들어 있던 이웃들이여. 알겠는가. 시방 큰 바람 큰 비 오니 그들이 당신들을 막아서주고 있지 않느냐. 가려주고 있지 않느냐. 서로가 서로를 꽉 붙들어 지상에 발붙이게 하고 있지 않느냐. 서로 기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서로 좀 알아보라. 서로 좀 안아주라. 우리 모두 이 막막하고 눈물겨운 세상 함께 건너가는 동지들이다. 태풍 지나고 나면 모두 모여 술 한잔하자. 시바!" p181

 

    술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시인 류근님의 인생이 담긴 책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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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ㅣ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1. 어려운 개념과 용어를 아무렇지도 일상언어인냥 던져주는 대가의 센스.

 

   저는 이 책에서 나오는 철학적 고찰들을 진지하게 풀어놓을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습니다. 이런 책의 리뷰를 통해 뭔가 철학적이고 지적인 풍모를 풍기고자 하는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느낀 점은 이렇습니다. "괜히 리뷰한다고 어줍잖게 깝치지 말자. 절반정도 읽을 때까지 이거이 뭔 소리인공? 하고 멍하지 않았던가?" 사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초반에는 헤매이는 저지만 이 책은 좀더 심해서 딱 절반까지도 꽤나 헤매었던거 같습니다. 그렇기에 왠지 읽다가 중간에 성질내며 집어던져 버리면 나면 저의 지적수준을 비관하며 깊은 자괴감에 빠질 듯하야(그래봐야 몇분 안되겠지만) 악착같이 끊어 끊어 읽었던 것입니다.  

 

   테드 창이 일단 다들 대단하다고 하시니 저도 그런갑다 했습니다. 읽어보니 이양반 상당히 다양한 각도에서 거시적인 시각을 탑재하고 있고, 섬세한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글속에 담은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 독자? 나 SF 작가! 이정도는 알고 있지?' 하는 식의 패기가 이 작품의 시작부터 느껴집니다. 그냥 생판 처음듣는 용어들이 난무하는데 이거 모른다고 하면 바보되는 느낌으로다가 막 던져줍니다. 그런데 거부감이 크게 들지 않습니다. 이지점에서 이 양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온통 생소한 용어에 생소한 개념인데도 불구하고 편안하게 담담하게 설명을 계속해 나가면서 위화감을 자연스럽게 없애줍니다. SF를 많이 읽으셨거나 평소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어쩌면 저의 이런 표현 자체를 이해 못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게 뭐가 어려워?' 이러실지도.. ㅋㅋ 여튼 중요한건 어려운걸 어렵지 않게(솔직히 그래도 어렵더라 뭐..) 설명해 주시는 창 형님의 능력(설마 동생은 아니것지...아.. 다행히 나보다 열살이나 많다...)이 대단하더라는 겁니다.   

 

 

#2. 소프트웨어 객채의 생애주기라...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시절들이 떠오르더군요. 정말 그 옛날 피씨통신의 막강 파워에 깜작 놀랐던 기억, 프리챌의 뜬금없이 성급한 유료화로 카페를 이동하며 여기저기 전전하던 기억, 언제부터인가 유령화된 싸이월드 내 미니홈피, 트위터가 신기해서 막 팔로워 늘려서 4000명인가 만들어놓고선 어지러운 타임라인에 염증을 느끼고 오프라인 친목과 병행한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소통하다가 지나친 정치색에 질려 뜸해졌던 일들. 이런 것들은 그 소프트웨어의 주기라기 보단 한 개인의 유저로서의 변화에 지나지 않지만 어찌되었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플랫폼이 변하고 유행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가끔 가상의 객체에 심한 애정을 투사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제 형의 이야기를 하자면 제가 군대를 제대하고 고향집에 있을 무렵 집에 있던 형이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상 캐릭터를 키우겠다는 엄청난 집념으로 하루 4시간 수면을 유지하며(그렇게 공부했으면 당신을 서울대졸업장을 땄겠지...) 밥조차 허겁지겁 먹으며 그 사이에 저에게 칼 휘두르는 키를 클릭해달라는 애절한 부탁을... 하.. 정말 문화충격이라고나 할까? 무언가에 그리 깊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는 저로서는 정말 이해불가!!! 그거 키워서 어디다 취직이라도 시킬건가? 하며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피씨방에서 새벽까지 오락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한심하다고 혀를 찼었는데 내 친형도 이럴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충격이 컸었죠.  

 

   아마도 점점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는 이미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와 애정을 거기에 투자했기 때문일겁니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여 주인공 애나도 역시 이 작품에서의 표현인 "디지언트"에게 애정을 주고 오랜 시간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플랫폼 이식을 통해 디지언트의 정지를 피하고 지속시키기 위해 실생활 속의 자신이 희생할 각오까지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대하면서 가상 세계속의 소프트웨어 객체에 지나지 않는 디지언트가 현실세계의 관계들 -이를테면 가족- 보다 중요해 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합니다. (아, 골치아픈 이야기는 이정도만... 각자 읽어보시길. 창작노트도 있고 작품해설도 있으니 제가 굳이 떠들 필요가 없고 읽어보시면 된다는^^) 

 

 

#3. 그러나 재미는 글쎄...SF는 내 취향이 아니던가...

 

   저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지점이었습니다. 그렇게 상을 많이타고 SF계의 진리라고 하는 테드 창의 작품인 이 책은 읽을수록 심오하면서도 광대하고, 핵심을 찌르며 디테일까지 잘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닥 재미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재미가 없지는 않으나 그렇게 찬사를 보낼만큼 또 엄청 재미있지는 않더라는 것이죠. 누군가 저에게 당신이 SF를 잘 몰라서 재미가 없는거라고 말하더라고 반박할 수는 없지만 그런 관점이라면 SF를 잘 아는 사람만 읽어야하는 책으로 제한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런 식의 접근도 적절하지는 않은거 같습니다.  

 

   제 생각에 대중 독자에게 주어지는 책이라는 것이 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나고 그 속에 담긴 철학이 심오해도 교과서가 아닌 이상에야 무조껀 재미가 있어야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까칠한 저는 유명세나 작품의 가치 때문에 재미없는 소설을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독서를 하는 태도는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게 의미가 없지만 저에게 있어서 재미없는 소설을 테드 창이기 때문에 또 읽으라고 한다면 저는 좀 망설일거 같습니다. 오로지 잘난 척을 하거나 누가 말을 꺼낼 때 끼어들어 아는척을 하기 위해서만 이 양반의 책을 읽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다른 작품을 읽어보고 싶습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저의 이 안타까움을 다른 작품은 해소시켜 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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