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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 - 외롭고 슬프고 고단한 그대에게
류근 지음 / 곰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1. "조낸"과 "시바"가 난무하는 찌질코스프레,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
이거 참, 난감합니다. 몇페이지를 넘기지도 못하고 '이 양반.. 정체가 뭐야?'라고 하며 저자 약력을 보니 중앙대 문창과.. 박사과정. 92년에 신춘문예 당선, 2010년 [상처적 체질]이라는 시집으로 화제,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작가.. 언듯봐도 참으로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분이 거의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류환 같은 동바(동네바보)처럼 왠지 찌질해보이는 멘트들을 마구 쏟아놓습니다. 서평책이 아니었으면 두세 페이지 읽고 던졌을 책입니다. 50페이지에 도달했을때 '내가 과연 이 책을 계속 읽어야하나'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거뭐... 안읽고 읽었다고 리뷰를 쓰는 것은 체질적으로 불가능한지라 득도의 심정으로 읽었습니다. 책의 반환점인 150페이지를 넘겨서야 이 작가의 찌질 코스프레 코드에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습니다.
이런 거죠. '시인님 같은 내공 30갑자 이상 소유한 은둔의 초고수가, 그것도 얼마전에 본인의 내공을 이미 널리 알리시어 고수의 면모를 밝히신 바 있는 천재께서 왜?.. 굳이 찌질찌질 술쟁이, 가난뱅이 코스프레를 안써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읽어줄텐데 이런 기법을 쓴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통 모르겠네..' 아, 진짜, 이 분의 일상 산문을 쭈욱 읽어가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 참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가식이 없다, 통렬하다, 속이 시원하다. 등등의 평을 쏟아낼 것이 뻔히 보이는 이 시점에 왜 나는 짜증이 나는 것일까?', '나는 지나치게 재미없고 보수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등등. 글을 읽는 내내 저를 불편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것입니다.
#2. 일상과 산문과 시가 뒤죽박죽 갈지자 보행을 하는 편집의 난감함이여...
이런 류의 책에 대해 그다지 선호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좀 더 단순화 하면 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썼던 글을 그대로 옮겨 활자화된 단행본 책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 반감이 좀 있다고나 할까요? 저자가 책으로 내기 위해 페이스북에 글을 쓰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쓰임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페이스북의 글이란 일련의 주제를 가지고 순서를 생각해서 한꼭지 한꼭지 적어가는 글일 수가 없습니다. 그때 그때의 이슈나 일상, 단상 등을 거침없이 쓰는 형태입니다. 그것을 그대로 활자화 해서 인쇄된 단행본으로 만들었을때 그것을 놓고 완성도랄까? 적절함이랄까? 이런걸 생각하다보면 이건 뭐 난잡하다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당황스럽게도) 이런 식의 편집에 대해서 '좋다', '읽기 편하다' 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그것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 젊은 분들이 SNS를 통해 세상과, 사람들(그 대상이 실제하는 사람이건 소프크웨어 객체의 생애주기에 등장하는 가상의 디지언트건 상관없이)과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보니 진지함은 불편하고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것을 편안해 한다는 것이지요.
읽기에 편안한 것이 좋은 것인지 어떤지를 논하기에 앞서 저에게 이 편안한 것이 매우 불편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저자가 누구가 되었건 간에 활자화된 책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상황 자체가 불편했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 이 책에 표기된 비속어, 문법 파괴 등의 표현은 원문을 쓸 당시의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을 살리기 위해 저자와의 협의 아래 최소한의 범위에서 의도적으로 허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책의 본문을 보기도 전에 이 문장 하나로 심사가 뒤틀렸습니다.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이라니 이 무슨 개 풀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무식한 나는 파토스가 뭔지 모른단 말이다.' 이런거죠. '거참, 시작도 하기전에 어려운말 하고 있네. 그런거 전달해서 비속어, 문법 파괴를 하고 싶었으면 책을 왜 내나? 페이스북 주소를 알려주고 거기가서 원문의 격렬한 파토스와 문맥을 고려해서 읽으시라고 공지를 쓰면되지' 하고 까칠과 삐딱의 경계에서 까닥까닥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의 작가님은 아무래도 이미 자신이 자신의 언어로 표현했던 것들에 대해서 수정을 가하는 행위를 하기 싫으셨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감정과 정서가 그대로 전달되기를 바라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저는 표현 매체가 바뀌면 좀더 매체에 맞게 정제된 표현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3. 시인은 시인이다. 시인은 시인이야...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중반을 넘어서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 분이 참 시인은 시인이구나 하는 것입니다. 산문의 형식은 비록 불편했을지라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자기부정과 자기풍자를 통해 세상의 모순에 대해서 넌지시 비틀고 있었습니다. 정말 좋았던 것은 이 책의 중간 중간에 수록된 "시" 들이었습니다. 특정 시를 인용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다 훌륭했습니다. 시랑 친하지 않아 몹쓸 감성인 제가 읽어도 공감이 가고 좋았는데 이 시들을 통해서 저자의 깊은 감수성을 어느정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기 PR의 시대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없는 것도 만들어내고 언론을 통해 왜곡된 정보를 흘리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없고 "나"만 존재하는 듯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스스로를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며 술 퍼마신 이야기, 일상의 찌질한 이야기등을 쏟아내며 가진 것 없이 상처받는 사람들을 우회적으로 위로하는 내공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가르침이 난무하는 시대에 위로받아야 할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며 오히려 저자를 위로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도록 만들어 줍니다. 상대방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만으로 본인의 마음이 자연히 치료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이 책은 저자의 깊은 내공이 심오하게 담긴 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낮게 표현함으로써 난잡하고 혼란한 세파로부터 섬세하고 상처받기 쉬운 저자의 영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앞집 때문에 전망 가린다고, 뒷집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고, 옆집 때문에 차 댈 데 없다고, 윗집 때문에 집값 떨어진다고... 조낸 불만과 질시와 분노에 찌들어 있던 이웃들이여. 알겠는가. 시방 큰 바람 큰 비 오니 그들이 당신들을 막아서주고 있지 않느냐. 가려주고 있지 않느냐. 서로가 서로를 꽉 붙들어 지상에 발붙이게 하고 있지 않느냐. 서로 기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서로 좀 알아보라. 서로 좀 안아주라. 우리 모두 이 막막하고 눈물겨운 세상 함께 건너가는 동지들이다. 태풍 지나고 나면 모두 모여 술 한잔하자. 시바!" p181
술을 사랑하고 시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는 시인 류근님의 인생이 담긴 책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