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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70세 노인의 내면을 표현했지만, 작가 김영하가 떠나지 않는 소설
평소에는 잘 읽지 않는 소위 핫 한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갑자기 이책을 집어든 이유는 며칠전 아내와 함께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고 나름 감동한 데다가 위대한 개츠비의 책 내용이 궁금한 마음에 그 책을 번역한 김영하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에서 위대한 개츠비 에피소드를 들은 터라 작가 김영하 자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는데, 정작 김영하 작가의 책은 한권도 읽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색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책 [살인자의 기억법]은 잘 읽힌다는 평이 아주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실망스럽다는 평도 꽤나 있었던거 같습니다. 일단 저에게는 이야기의 설정 자체가 신선하고 재밌었습니다. 주인공이 70대 노인이며 전직 킬러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점, 기억장애, 기억퇴행 현상으로 파생되는 문제로 인한 주인공의 내면고백,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무거운 주제를 담아내었다는 점이 훌륭했습니다.
1인칭이다보니 주인공의 서술에 따라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공감하는 형식으로 책을 읽으려고 무진 노력을 했습니다. 주인공의 캐릭터상 특징이 전반에 걸쳐 잘 설명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주인공에 대한 몰입보다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저자인 김영하 작가입니다. 매 장면이나 독백을 대할 때마다 '70세 노인의 심리상태를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실감나게 표현했을까? 이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쥐어짜내었을까? 아니면 그저 설렁설렁 이까짓꺼 하면서 쉽게 써나갔을가?' 이런 생각들 말이죠. 다 읽은 후에도 계속해서 '저자는 무엇 때문에 이 이야기를 생각하고 써나갔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리속을 맴돌았습니다. 술술 잘 읽었지만 쉽지 않은 소설이었습니다.
#2. 시대의 흐름을 잘 캐치한 이야기 서술방식
이 소설의 서술방식이랄까? 편집이랄까? 여튼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한국 고유의 여백의 미를 잘 살렸다고 해야하려나? 한페이지를 설렁설렁 부분부분 사용하는 기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인칭 시점의 일기 혹은 메모 같은 기록방법으로 진행하는 시도 자체가 신선했습니다. 아날로그 타입으로 생각하자면 메모지, 포스트잇에 적힌 메모들을 한땀 한땀 옮겨적은 듯한 느낌입니다. 디지털 타입으로 생각하자면 SNS, 이를테면 트위터나 페북, 미투데이, 미니홈피 등등에 기록한 짧은 이야기들을 옮겨 적어놓은 듯한 인상입니다. 역시나 이런 정도의 호흡으로 읽어나가는 것은 SNS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것이지요. 아주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방식입니다.
대단할 거 없다면 없는 방식이지만 대부분의 소설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법이니 어쨌거나 서술기법이 독특하고 신선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자는 단순히 새로운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부합하는 적절한 기법을 지혜롭게 개발하는 스타일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책을 즐겨읽는 독서가들에게 이 방식이 과연 호응을 얻을 것인가 인데, 글쎄요. 뭐라 딱부러지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안먹히면 뭐 그냥 쓰던데로 또 쓰면 되는 것이니까요^^
#3. 무거운 주제, 심각한 이야기, 동의는 하지만 재미없는 이야기의 한계
기억을 잃어가는 주인공 김병수의 처절한 모습을 통해 한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균열과 붕괴를 밀도 있게 잘 묘사하는 이 소설은 다소 무겁고 심각한 주제 의식을 간간히 등장하는 유머코드와 버무려 나름 세심하게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결말부에서 그 동안의 진행을 뒤흔들만큼 반전 내지는 혼란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금세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기 위한 치밀한 사전 장치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읽는 자의 재미입니다. 읽는 행위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다 읽고나서도 먹먹한 무언가가 남거나 머리속이 뻥터지거나 충격에 휩싸인다면 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읽는 동안 매우 재미지고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이야기 자체의 메세지 보다는 오히려 메시지를 담는 형식, 풀어내는 방법, 작가의 의도 등이 더 부각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것이 단점인지 장점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읽을 때의 즐거움이라는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꽤나 남는 소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살인자의 기억법]이기 때문에 많이 읽혔다기 보다는 [김영하]가 썼기 때문에 이정도로 읽힌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이런 소설도 썼어? 이런 느낌인 것이죠.
#4. 제발 해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씁시다. 본인의 지성자랑 한마당이 아니지 말입니다.
점점 저를 까칠하게 하는 것들이 속출합니다. 이 소설을 그저 저의 페이스대로 잘 읽었습니다. 제가 딱히 지성인은 아니지 않겠습니다. 태생이 공돌이다보니 한계가 분명합니다. 김영하 작가의 깊은 고뇌의 산물인 이 작품을 그 의도까지 적확하게 파악하는게 만만치 않겠지요. 그러나 전문 문학평론가의 해설 부분에서 또 한번 (개) 짜증이 났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부분은 [해설]이란 타이틀 보다는 [누가누가 잘읽었나 자랑하기]란 타이틀이 적당할 거 같습니다. 해설이 소설보다 더 어렵고 난해합니다. 이 해설이 작가의 의도와 정확히 부합하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럼 이 소설을 접하는 대부분의 독자가 비슷하게 이해하겠냐고 또 한번 묻고 싶습니다. 해설을 이런 식으로 지성자랑 한마당으로 써놓으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자기만의 독서가 아니라 교과서 읽고 자습서 해설로 공부하기 꼴이 되어버립니다. 그들만의 리그에 모두를 끼워 맞추지 맙시다. 이 책에 실린 해설보다 적어도 백배는 더 일상언어로 쉽게 쓰여져야 합니다. 아니면 [전문가 평론]이라고 타이틀을 달아서 출간하시기 바랍니다.
매우 많이 아주 짜증스러웠습니다. 이것은 대체로 저의 열등감에서 기인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리지만 과연 이 땅에 그 해설을 보고 열등감에 빠져들지 않을 독자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소설보다 해설이 더 난해한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