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단
정보라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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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의 <처단>은 12.3 '불법 비상계엄이 만약 성공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상상으로 시작한 소설입니다. 사실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역사 속에 빗대어 볼 사건과 현상들이 많아서 익숙하기는 합니다. 그래서 상상력의 결과라기 보다 지극히 현실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이 이야기를 대놓고 썼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출간 시점도 절묘합니다. 바쁜 각자의 일상으로 충격이 희미해지는 시점인 지금 즈음이 적기인 것 같기는 합니다. 당시 국회의원 한 인간이 1년만 지나면 다 잊는다는 망언을 하지 않았던가요? 이 소설을 통해 만약 그날 계엄을 막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끔찍한 평행 현실을 마주하면서 절대 잊지 말고 바로잡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소설이 더욱 실감 나게 와닿는 이유는 소설 속 등장하는 인물들이 면면 때문입니다. 국가 공권력이 파괴되고 군 병력이 동원되어 개인과 사회를 무차별로 짓밟는 상황에서 작가가 주목하는 인물들은 동성 부부와 성소수자, 장애인, 노동자, 의료의 도움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환자와 보호자, 의사와 간호사 및 의료종사자, 귀화한 외국인과 국가적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 등입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국가에서 보호받고 배려 받으며 함께 살아가야 할 국민들입니다. 따지고 보면 누구나 소설 속 등장인물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으로 나아가기에 수많은 문제와 과제를 안고 있지만 그래도 점진적으로 조금씩 사회적 약자와 함께 살아내는 구조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습니다. 오랜 시간 인고와 노력으로 만들어진 체제를 일순간에 뒤흔드는 비상계엄은 이 모든 토대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게 됩니다.


처단은 이 엄혹한 현실을 담담하지만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 아무리 권력이 시킨다 해도 말단 군인들이 배운 것이 있는데 소설처럼 막무가내로 총질을 해댈까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해서 본능적으로 불편한 감정이 올라오기는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인간은 그래도 되는 상황이 주어지면 무섭게 냉혹해지는 일은 역사 속에 허다하게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반박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힘들게 이어온 우리의 일상은 안드로메다로 가 버리고 그저 생존을 위한 몸부림 만이 남는 아비규환이 펼쳐집니다. 포고문 내용을 순서대로 보여주면서 관련된 사례의 사건이 펼쳐집니다. 이 구성은 다시금 포고문의 내용을 되새기고 얼마나 어이없는 내용인지 확인하게 합니다. 포고문 어느 항목도 그냥 제멋대로 하겠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실제로 누구를 막론하고 대들거나 항의하거나 눈에 띄기만 해도 총질을 당하고 끌려가 고문을 받습니다. 인간을 수거하겠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쓰는 인간이 수장이 되는 세상이니 이는 오지 않았을 뿐, 올 뻔했던 엄연한 현실에 가까워 보입니다.



만약 정말 이런 상황이 되었다면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받은 개개의 군인들, 계엄군에 속한 그들은 명령이니 어쩔 수 없다며 인간 백정 같은 짓을 그냥 할 것인가? 그리고 우리 일반 시민들은 총탄의 탄압 아래 고개 숙인 채 도망만 다닐 것인가?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당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떻게든 세력을 모으고 조직적으로 자유를 찾으려는 노력을 실질적으로 해 나갔을 것 같습니다. <처단>은 모의 사고실험을 제공해 이런저런 질문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좋은 소설입니다.



바쁜 일상으로 서서히 멀어져 가는 그날의 기억과 인식을 그 당시보다 더 높게 끌어올리는 자극제가 됩니다. 정보라 작가의 신간 <처단>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와 삶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좋은 계기를 제공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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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 - 사회 운동과 비즈니스가 교차하는 지점
야마구치 슈 지음, 최윤영 옮김 / 미래지향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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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고 흥미롭고 유익한 책입니다. '야마구치 슈'의 비즈니스 철학서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기존의 상식이 비상식이 되는 비즈니스의 미래를 예견하고 그 근거와 이미 시작된 변화의 조짐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이 책은 비즈니스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독자에게도 비즈니스 분야를 포함해 사회 전반적인 변화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자 야마구치 슈는 고객의 가치관에 맞춰 다른 기업보다 더 효율적인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 매출과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기존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주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큰 이익을 얻을 여지가 옅어지고 있다는 의미겠지요. 이런 흐름에서 새롭게 부상되고 있는 패러다임이 바로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입니다.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가장 큰 특징은 고객을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 계몽의 대상이 되고, 이해관계자는 함께 사회 운동을 담당하는 활동가로 본다는 점입니다. 또, 투자가, 고객, 거래처, 직원 등 이해관계자의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고찰해 지금까지와 다른 대안을 제시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실천적인 행동의 과정과 결과물이 기업의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사회 비판적이고 개혁적인 방향성은 대체로 보수적으로 보이던 기업 경영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이미 비즈니스 분야에서 변화는 시작되었고, 활발히 연구와 토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난 원인은 무엇인지, 어떤 환경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는지, 이미 성공한 사례는 얼마나 있는지 등을 소상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야마구치 슈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비즈니스의 미래>,<뉴타입의 시대> 등의 저서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지지를 받은 바 있는 검증된 저자입니다. 이분의 장점 역시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에서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새로운 용어로 이슈를 던지고, 용어의 의미부터 이 비즈니스과 관련 있는 관계자에 대해 소개하고, 기존 비즈니스 개념과 차이를 명확하게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했을 크리티컬 비즈니스 개념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사회 현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매우 구조화된 깔끔한 설명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습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패러다임 변화를 주장할 강력한 배경이 되는 실제 실천 성공 사례를 여러 가지 나열합니다. 폭스바겐사, 그라민 은행, 파타고니아, 페어폰, 테슬라, 더바디샵, 몬드라곤 협동조합, 이케아의 ThisAbles 프로젝트, 이탈리아 브루넬로 쿠치넬리 사례 등입니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고객의 만족 보다 사회 공공선의 실천과 소수 주장에 기반한 문제 개선 등의 관점에서 시작해 수익을 내고, 시장을 개척해 성공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비즈니스 분야에서 다수의 필요를 채우려는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한 것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생존 전략이 절실한 시대에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고, 당장 비즈니스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변화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익하고 시의적절합니다.



저자는 결론부에서 방대하게 연구하고 수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활동을 위해 염두에 두고 행동해 볼 수 있는 방법을 10가지나 제시합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 도전할 때 이 실전 과제의 제시는 방향을 설정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또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을 7가지나 제시하고 있습니다.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성숙하는데 필수적인 팔로워의 양성이라든가, 정보의 개방과 공유의 확산, 제품과 서비스 애용, 공감을 넘어 참여 확대, 교육, 네트워킹 등의 과제는 매우 적확하고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이 책을 완독하는 것만으로 비즈니스 종사자 거나 사회 운동을 하는 활동가이거나 또는 단순 소비자로써 <크리티컬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무엇이고, 어떻게 가능하며, 향후 어떤 방향으로 펼쳐질지, 여기에서 내가 해야 하거나 위치할 곳이 어디인지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앞으로 어디서든 "크리티컬 비즈니스"라는 용어를 들으면 생소한 것이 아니라 '아~~ 그거'라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겠지요. 당신이 누구이던 무엇을 하는 분이건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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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0-25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택이 아닌 필수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있고, 당장 비즈니스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변화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익하고 시의적절합니다‘는 이 부분이 내 머리 속에 쏘옥 들어옵니다.

 
어떤, 응원 - 새로운 일로 새 삶을 이어가는 인터뷰 에세이
은정아 지음 / KONG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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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아 작가의 <어떤, 응원>은 새로운 일을 선택하고 분투하는 열한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형식의 에세이입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들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하고 싶은 일을 해내고 싶어서 분투하는 여성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가 한번 들어선 길을 그저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길이 바른지, 내가 갈 목적지로 향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아니라면 돌아가거나 다른 길을 찾아 나서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갈림길에서 타인의 시선보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바램에 부합하는 지로 판단하는 분들입니다. 이런 태도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쉬운 선택을 두고 다른 길을 고민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갈등과 고통이 뒤따릅니다. <어떤, 응원>은 이들이 길을 찾기 위해, 찾은 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민해 내는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전해줍니다.


이런 분투기를 목도하는 일 자체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마음을 뒤흔듭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돌아보고 돌아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구체화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새로운 일을 지금 시작해도 괜찮다고 투탁입니다. 힘들지만 나도 분투하고 있는데, 당신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합니다.


이 책이 더 특별한 지점은 작가의 안목에 있습니다. 그저 평범한 일상으로 보일 수 있는 스토리에서 특별한 지점을 잘 뽑아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타인을 인터뷰한 내용을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녹여 내고 있습니다. 타인의 삶과 내 삶을 견주어 비교하고 교훈을 얻고 서로 느슨한 연대를 이루어 내는 과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책의 형식도 인터뷰이의 이야기와 저자의 관찰, 평가, 자기 고백적 고찰이 어우러져있습니다. 때문에 인터뷰 내용이 입체적이고 공감하기 좋습니다. 인터뷰 내용을 선이라는 도형에 빗대어 "선 긋기, 선 넘기, 선 상상하기, 선 잇기"로 나누어 구성한 것도 좋습니다.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지향하는 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줍니다.


책 속 이야기는 성공담이 아닙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장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내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마주칠 수밖에 없는 육아와 경력단절의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은 현실의 벽입니다. 이 벽에 부딪히고 다치고 쓰러지는 이야기가 가감 없이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 다양한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도 손쉬운 길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갈 길을 몰라 괴로워하거나 낙심한 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책 속 인물들이 작금의 어려운 현실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나가려 노력하는 분투기는 그렇기에 더 위로가 되고 의미가 큽니다.


유명 작가나 유명인이 등장하지 않는 인터뷰 형식의 에세이집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책이라는 것이 어차피 끝까지 읽어보지 않고서는 그 품질을 미리 짐작하기 어렵고 수많은 대체제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입니다. 같은 책도 독자의 시각이 투영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방식도 제각각입니다. 우리가 고전이나 베스트셀러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오랜 시간 검증되었거나 다수에 의해 선택된 것이 실패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 <어떤, 응원>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든 이 책을 읽으신 분이라면 활자를 통해 전달되는 따스함과 위로, 서로를 향한 격려와 응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은정아 작가의 솔직하면서도 응축된 삶의 에너지가 뜨겁습니다. 고운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그들의 삶의 경로와 결을 소개하는 모습 자체가 울림이 있습니다. 타인의 삶과 의지를 통로로 자신의 이야기를 녹여내는 자세가 귀하게 여겨집니다.


저는 오랫동안 지켜보고 응원해온 공출판사의 공가희 사장님 때문에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분의 삶의 궤적과 열정과 태도를 존중하고 인정합니다. 이 분이 책으로 출간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책의 내용은 의심의 여지 없이 훌륭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책까지는 저의 믿음에 넘치도록 부합한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11명의 인터뷰이와 이들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엮어낸 작가님, 그리고 이 글이 세상에 생명력을 얻도록 출간해낸 사장님의 노력이 더 빛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수많은 책이 있지만 한 번 재미로 읽고 마는 책도 있고, 배움을 위한 책도 있으며 오랫동안 인생 책으로 사랑받아온 책들도 있습니다. 적어도 <어떤, 응원>이 누군가에게 인생 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읽는 내내 마음에 잔잔한 울림과 감동, 서로를 향한 응원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는 기억으로 남아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이 책의 리뷰를 이다지도 감정적으로 일방적인 응원의 마음으로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능하면 이 책이 당신에게도 가닿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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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 일본 요괴
조영주 지음, 윤남윤 그림 / KONG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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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주 작가와 윤남윤 화가의 콜라보로 탄생한 <조선 궁궐 일본 요괴>는 저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입니다. 첫 장면을 읽자마자 '엇 익숙한 전개 뭔지? 데자뷔 인가?'하고 하나의 소설을 떠올리고 말았습니다. 꽤 오래전에 읽었던 리디북스 전용 소설이 기억났습니다. 그때 제목은 <갓파의 머리 접시>라는 직관적인 제목이었는데, 표지 그림 역시 얘들 동화 같은 직관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때는 소설 내용이 정말 좋고 재미있는데 접근성이 없고, 많은 분들이 선택하기에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랬던 이 친구가 전신 성형을 심하게 하고 환골탈태한 상태로 다시 나타났던 것입니다. 국내 최대...는 아니지만 국내 최고에 속하는 "공 출판사"에서 시술을 받은 이 친구는 개명까지 해서 나타났습니다. <조선 궁궐 일본 요괴>는 기존 제목보다 훨씬 좋습니다. 갓파라는 단어 자체가 일본 요괴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생소할 수 있고, 일본 요괴명이 소설 제목에 떡하니 나오면 선택하기가 쪼옴... 쯥..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루 뭉실하게 일본 요괴로 퉁 친 것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입니다. 여기에 장강명 작가가 작명한 제목이라는 스토리까지 한 스푼 더하면 관심이 확 올라가는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제목과 표지, 내지 디자인만 바꾼 거라면 효과가 미미할 수도 있는데, <조선 궁궐 일본 요괴>는 책 자체에 대한 스토리텔링과 홍보 포인트도 좋습니다. 이번 도서전을 필두로 애서가, 독서인들에게 베리베리 매우 핫한 무제 출판사 배우 박정민 씨의 관심으로 유튜브 영상에도 소개되고 출판계 마당발, 문어발 발발이 인맥을 자랑하는 공 출판사 공 대표와 이 함께 찍은 사진도 퍼지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픽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도파민에 찌든 요즘 시대에 어렵고 긴 글은 필패 요소입니다. 대중적인 흥행을 따질 때 그렇다는 이야기고 물론 지금도 어렵고 길고 난해한 책을 선호하는 독서인들도 있지요. 그러나 비율로 보면 소수입니다. 그런 지나친 지성은 어디다 써먹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나의 뇌 활동을 챗GPT에게 양보하는 시대가 아닙니까? 그런 책의 필요 여부와 무관하게 전반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상당량의 지성을 필요로 하는 책으로는 어렵습니다.  



<조선 궁궐 일본 요괴>는 제목도 쉽고 무난 무난하며 누구나 한 번 집어 들고 호로록 읽어보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책입니다. 부담 없지만 뭔가 호기심을 일으키며 마치 쇼츠를 넘겨 보듯 스윽 보고 싶어지는 정도의 흥미 유발에 적당합니다. 거기에 <갓파의 접시 머리>에서는 상상의 여지가 없는 표지였지만 이 책은 보는 순간 소장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적인 민화와 동화 스타일의 표지 디자인이 '일단 집어봐~~'라고 우리를 충동질합니다. 게다가 심지어 더욱이 표지에 요괴가 없어!!! '도대체 일본 요괴는 어디에 사는 누구란 말인가?' 본능적으로 궁금해진단 말입니다. 



책 내용은 간단하지만 의외로 읽다 보면 재미도 있고, 감동도 있는데 교훈까지 있습니다. 사실 대중 소설에서 교훈은 상당한 위험 요소인데, 베테랑 조영주 작가는 그딴 위험에 빠지지 않습니다. 아주 슴슴하고 미미하게 느낄랑 말랑한 수준으로 수위 조절이 좋습니다. 요건 작가 개인의 특성이기도 하고 타고난 감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 포인트가 뭔가 어른 소설인가 아이들 동화인가의 경계선에서 양쪽을 다 포용할 수 있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 P.S

흠... 이거 뭐 까기는 뭐하고 언급을 안 하기도 애매해서 한마디 하자면, 갓파에 대해 알면 알수록 거꾸로 해도 윤남윤, 바로 해도 윤남윤님의 갓파 일러스트는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갓파는 못생김이 기본 옵션인데, 지나치게 미남 미남 합니다. 심지어 머리에 접시도 생략했어요. 이 정도면 그림이 구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와중에 그림이 좋으니까 뭐 어때?라는 생각이 드는 제 자신도 싫어집니다. 인간적으로 좀 엔간히 합시다. 오래 고민해서 그리셨다는 것으로 봐서 갓파를 몰라서 이렇게 그린 건 아닐 테고,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이셨을 텐데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아 물론 진짜 갓파스럽게 그렸으면 과연 매력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또 비판을 하기도 어렵긴 합니다. 누구도 어글리 한 주인공을 좋아하지는 않으니까, 어차피 픽션이고 상상의 영역이니 안될 건 없지만 갓파의 우수에 찬 눈을 대할 때마다 혀를 차게 되었단 말입니다. 갓파는 소갈머리 없는 어글리 대머리 아저씨 스타일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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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손님들 마티니클럽 2
테스 게리첸 지음, 박지민 옮김 / 미래지향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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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게리첸은 미래지향에서 "스파이 코스트"를 출간하면서 작가의 저력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 작가입니다. 마티니 클럽으로 명명된 CIA 출신 어르신들의 모임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짜릿한 즐거움을 주었는데, 이 양반들이 그대로 등장해 반가웠습니다.


큰 틀에서 줄거리는 장르소설에서 익숙한 전개라 할 수 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실종 사고가 발생합니다. 단순 실종인지 범죄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땅떵이가 워낙 넓은 미국이라 가능한 설정입니다. 우리나라였으면 CCTV로 금방 해결될 일이겠지만 어메리카는 산골짝이나 호수에 사람이 실종되면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몸으로 때우는 탐문, 탐방 등 인간들의 전문성에 기반한 조사가 필수입니다. 그렇기에 경험이 풍부한 마티니 클럽의 활약이 가능합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경찰 서장 대행 조 티보듀와 압도적 경험과 연륜으로 한 발짝 앞서 나가며 그녀를 돕는 마티니 클럽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최고의 재미를 선사합니다. 역시나 결말에서 드러나는 범인을 맞추는 데는 대 실패했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의 서술 방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챕터마다 서술자가 바뀌는 방식입니다. 이런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넓은 관점에서 사건이나 등장인물을 조망하게 돕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용에 집중하기 어렵고 헷갈리게 만들 위험이 있습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막 설명해도 될 일을 다양한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은 보통은 모험입니다만, 워낙 베테랑 작가라 전혀 어색함 없이 잘 해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마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고 이는 소설의 내용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특정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이 요원한 상태에서 문제를 파헤칠수록 과거의 사건이 덩굴처럼 줄줄이 드러나는데 이 때문에 사건이 복잡해지고 궁금증과 호기심이 더욱 커집니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사람들조차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찾아내기 어려워 혼란해 합니다. 이 상황에서 복잡한 설정을 복잡하게 풀어내면서도 지루함 없이 끝까지 싸잡아 끌고 나가는 저자의 능력이 대단합니다. 나이도 많으신데 뚝심 있게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느껴지는 소설입니다.


작가의 의도겠습니다만, "여름 손님들"에 와서는 마티니 클럽의 활약이 조금 덜 합니다. 실수도 있고, 신체적 한계로 인한 어려움도 묘사됩니다. 오히려 성장한 조 티보듀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커졌습니다. 무게 중심이 조 티보듀에게 많이 옮겨 간 느낌입니다. 균형이 잘 잡혀서 좋기도 하고 1편의 주인공들의 활약이 줄어서 아쉽기도 한 대목입니다. 그럼에도 동일한 등장인물들의 활약과 유기적인 관계 변화가 보기 좋게 연결되어 시리즈를 즐기는 기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름 손님들"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시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망각 속에 사라져 그런 걸 수도 있겠습니다. 뭐든 더 재미있어졌다는 것은 좋은 거니까요. 도시와 시골 마을의 격차가 큰 미국식 문화와 상황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이 매력적입니다. 더운 여름에 어울리는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테스 게리첸의 신간 "여름 손님들"을 추천드립니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여름철 별미 같은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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